벼 농사를 잘 지었고 한결이네 대가초등학교 유기농 벼베기와 벼타작 수업까지 잘 마쳤다. 이제 윗동네 전임 이장님이 콤바인 몰고와서 천 평 황금들녘에서 나락을 베어 털어 주기만 하면 되는데 이장님이 올해 우리 논 벼 안 털어준단다. 농사 아무리 잘 지으면 뭣하나? 제 때 거두지 못하면 한 해 농사 말짱 도루묵이다. 이걸 아는 윗마을 쌀전업농 이장이 올해는 기어이 어깃장을 놓는다.
우리 논 윗논인 우리 마을 이장네 논 두다랑이 베고는 그냥 가버렸다. 올해는 왜 안 털어주냐니까 우리집 윗다랑이 논이 질어서 기계 고장날까봐 안되겠단다. 깊은 수렁도 아니고 여러해 베었으면서도 올해는 까탈을 부린다. 몸이 아프다 어쩐다 하며 농업기술센터에서 콤바인 빌려다가 직접 베라더라. '그걸 몰라서 벼 베어 달라고 읍소하나?' 욱 하고 치미는 걸 눌러 가라앉힌다. 성질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을 이장네 벼 베는 거 지켜보고 집에까지 따라가서 호소했다. 요지부동. 아무리 부탁해도 들은 채를 하지 않길래 포기하고는 센터 나와 콤바인 예약했다. 센터에서는 예약 대기자가 많아 다음주 월요일 오후에나 콤바인 가져다 준단다. 유기농 벼농사 애써 지어놓고 콤바인 빌리러 읍내 나온 심사가 사납다.
요즘 논농사는 완전 기계화가 되어있다. 트랙터로 논 갈고 써레질하고, 이앙기로 모 심고, 콤바인으로 벼 베어 나락 턴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까지 쓰면 한 사람이 수 천평, 수 만평, 수십만평 벼농사 지을 수 있다.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은 마법같은 기계다. 트랙터로 논 갈면 황소는 장에 내다 팔아버린다. 이앙기 쓰면 사람 모아 손모 심는 건 넌더리가 난다. 벼를 베고, 나락 털고, 볏짚 써는 일까지 한번에 다 하는 콤바인을 한번이라도 쓰고 나면 낫질해서 탈곡기에 벼 털고, 작두로 볏짚 써는 건 생각하기도 싫어진다.
마을마다 기적의 농기계 3종 세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 쌀전업농으로 값비싼 대형농기계를 비롯해 각종 정부지원을 독차지했다. 정부가 미국과 맞설 대농 육성하겠다며 값비싼 농기계와 시설을 집중지원했다. 이른바 쌀전업농이다. 정부 보조를 많이 받다보니 정부정책에는 매우 굴종한다. 쌀값이 폭락해도, 쌀값 우선지급급을 도로 빼앗아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또는 농사 포기하는 논을 더 많이 임대해서 수만평, 수십만평 농사지어 나만 살면 그만이라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기계 없는 농민들은 논 농사를 기계에 완전히 의존하기 때문에 기계 가진 사람 눈치 보지 않을 수 없다. 귀한 콤바인으로 벼를 베려면 트랙터도, 이앙기도 콤바인 가진 사람을 불러야 한다. 논은 저 사람이 갈고, 모는 이 사람이 심고, 벼는 그 사람이 심는 일은 거의 없다. 내 기계 안 부른 농민 논을 콤바인 가진 사람은 잘 안 털어준다.
난 논이 천평 뿐인데도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트랙터는 6년 전 융자로 4천만원짜리 새 트랙터 샀다. 이앙기는 아주 낡은 보행이앙기다. 1년에 하루 쓰는데 모 심을 때마다 고장난다. 다섯해전 밀을 베려고 급하게 산 170만원짜리 중고 콤바인은 논에 들어갈 때마다 말썽이 나서 쓰지 않고 있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비록 고물이지만 이앙기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모를 심는 것까지는 해왔는데 고물 콤바인은 영 상태가 안좋아 윗마을 전 이장께 늘 아쉬운 소리를 해왔던 거다. 윗마을 전 이장이 논이 질다며 올해 한결이네 논을 안베어 주기로 작심했다. 윗다랑이는 원래 물고 나가는 쪽이 좀 질다. 아랫다랑이는 아이들이 뛰어놀 정도로 야물다. 평소 농기계 3종세트를 윗마을 이장에게 의존하지 않는 한결아빠가 마뜩치 않지만 같은 농사꾼으로서 인지상정으로 볼 때 벼베기를 딱 거절하는 건 쉽지 않은데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쌀전업농인 윗동네 이장이 왜 이리 독한 마음을 먹었을까? 쌀값 폭락으로 마을에 해마다 논이 많이 줄어들었다. 비록 산골이지만 농어촌공사 저수지도 있고 논은 대부분 경지정리되어 있다. 내가 농사지은 지난 10년 동안 논은 해마다 오미자밭, 마늘밭, 고추밭, 콩밭, 수수밭, 사과밭, 아로니아밭으로 바뀌어 갔다.
단양군 적성면에 하나 뿐인 학교인 대가초등학교 어린이 유기농 벼 재배교육 4회자, 벼 수확과 타작수업 |
콤바인 가진 윗동네 전 이장은 콤바인 굴리는 소득이 줄어들다 못해 손익분기 임계점을 넘기 시작한 거다. 콤바인 굴려 현찰을 쓸어담던 호시절은 가고 몇 다랑이 안남은 벼 베자니 자칫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비가 더 나온다. 당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제는 콤바인 자체가 애물단지다. 이앙기도 마찬가지.
쌀값, 논 면적, 농민 숫자는 모두 수십년째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 정도가 아니라 임계점을 넘었다. 쌀값은 생산비를 밑돌 정도다. 정부는 이 모든 현상이 수요에 비한 쌀 생산 과잉 때문이라며 논을 없애고 있는 논에 쌀이 아닌 다른 걸 심고, 대농과 기업농에게 농지를 몰아주어 미국의 대농과 경쟁하겠단다. 미친 소리다. 쌀 수요가 줄어드는 이유는 해방 이후 미국 원조밀부터 기획된 미국밀에 의존한 서구식 식사가 핵심원인이다. 여기에 수입곡물, 그것도 대부분 유전자조작 GMO 사료작물로 공장식 축산으로 키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달걀, 우유가 쌀 소비를 크게 줄였다. 하나 더. 밥상을 보라. 대다수 반찬은 수입농산물이다. 이 모든 것들이 쌀 소비를 줄어들게 한다.
1847년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으로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미국으로 이민 떠날 때 아일랜드의 식민본국 대영제국이 무슨 일을 했던가? 아일랜드인이 굶어죽던 말던 아일랜드 밀을 본국으로 빼돌렸다. 어디 일본 뿐인가? 35년 동안 한반도를 착취한 일제는 토지를 빼앗고 한해 생산량의 6할이 넘는 쌀을 일본으로 공출했고 조센징들은 굶어죽던 만주로 떠나던 상관하지 않았다. 아일랜드나 일제하 한반도의 비극이 이 땅에 다시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나? 미제국주의는 달러만 주면 언제까지나 값싼 밀과 쌀, 콩과 옥수수, 오렌지와 바나나를 이 땅에 쏟아부어 줄까? 그 초록 종이 그린백은 언제까지나 마법의 종이일 수 있을까?
벼 수확철에 이웃 농민의 벼 베기를 거절한 내 논 벼 베기를 거절한 쌀전업농 윗동네 이장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서운하다. 서운함은 겉마음이고 연민과 분노는 속마음이다. 이 농민의 절망과 독한 마음을 불러온 건 미국의 식민지인 남한의 식량정책, 농업정책의 파탄이 원인이다. 더 깊은 원인은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고 무기와 식량을 제멋대로 팔아먹는 미제국주의다. 애물단지 콤바인 가지고 속썩는 윗 동네 이장은 정부가 선물한 값비싼 콤바인이 애물단지가 된 진짜 원인을 알까?
유문철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7.10.2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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