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www.jadam.kr 2005-06-02 [ 손병홍 ] 3000천평 녹차 밭 전환기 유기농 인증을 받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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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농업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25년간 선경 그룹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2000년에 고향 하동에 귀농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다시 내려오겠다는 생각이 현실이 된 것이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아 놓은 돈으로 15년 전에 땅을 샀습니다. 앞으로 녹차가 전망이 있을 거라는 아버님의 권유로 농원을 조성하였고, 지난 10년간 아버지께서 이 농장을 관리하셨습니다. 아버님의 선택이 옳았지요. 무엇보다 다른 작물보다 녹차 재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귀농하기 전 10년 동안 농번기에 주말마다 농원에 내려와서 녹차 밭에서 녹차 잎 채취에서부터 솥에서 덖고 손으로 비벼 말려서 끝으로 맛내는 과정을 습득한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2005년 4월에 하동군에서 처음으로 녹차 전환기 유기농 인증을 받았습니다. 귀농 5년 만에 이룬 쾌거입니다. 이렇게 빨리 전환기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관행농업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녹차 재배를 무농약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자연농업 교육을 받고 이거다 싶더군요. 녹차는 뜨거운 물에 우려낸 깊은 맛과 향을 즐기는 농산물이기에,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다수확의 욕심을 버리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다른 사람보다 독특하게 재배하고자 자연농업을 시작한 것이죠. 자연농업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이 어렵게 느끼는데, 저는 농업에 대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배운 대로만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연농업 방식대로 녹차를 재배하였고, 오늘에 와서 전환기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귀농 후 가장 힘든 일은 풀과의 전쟁귀농하고 나서 1년 동안은 참 농사짓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유년시절을 하동에서 보냈지만, 하동읍에서 가게를 했기 때문에 괭이 한 번 안 잡아보았지요. 손발 부르트게 텃밭에 매달렸어도 고향에 돌아온 기쁨이 커서였는지 힘든 줄 모른 채 하루하루 즐거웠습니다. 고구마를 첫 수확하던 날, 아내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더군요. 삭막하고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귀농에 대한 후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신비함도 오래가지 않더군요. 풀과의 전쟁을 치루면서 새벽에 2~3시간씩 일하다보니 처음엔 오른팔이 아파서 밥을 못 먹을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엔 몸살이 나서 일주일 정도 눕게 되더군요. 그 때 농사는 요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적응이 되었지만, 그래도 한꺼번에 일을 많이 하지는 못합니다.
녹차 밭에 풀이 있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우리 녹차 밭에서 풀씨가 날라 온다거나 풀이 많아 보기가 싫다거나 일은 안하고 놀러만 다닌다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아내가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풀을 너무 의식하게 되면 안 됩니다. ‘풀은 풀이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하고 풀을 베면 그 자체가 거름이 되니, 생각나는 대로 제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농업을 실천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떳떳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안되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이 말은 맞지 않습니다.영진다원의 안주인 백숙희님은 귀농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귀농하면 공기 좋은 곳에 별장 지어놓고 편안하게 살게 해 주겠다고 남편이 권유했지만, 귀농하기 전에 1년을 싸웠습니다. 악양에 내려와서도 얼마 동안 밤에 창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창문을 열어 두면 깜깜한 시골이 온 몸으로 전해져 그 적막함이 싫었습니다.
귀농 초기에 또 하나의 어려움은 마을에 살고 계시는 분들과 동화되는 과정입니다. 남자들이 모르는 여자들만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금은 좋아졌지만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도시에 살다가 ‘안 되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라는 말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 도시에서 사는 아들이 아이를 낳았습니다. 1주일 정도 서울에 갔다 왔는데, 귀농한지 5년이 지나서인지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고 탁한 공기를 마시며 지내기가 힘들었습니다. 너무 답답했습니다. 시골로 다시 내려오니 너무 좋더군요. 아! 이것이 시골에 사는 맛이구나. 많이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전국 녹차 만들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다. 제10회 하동야생차 문화축제 전국 전통 녹차 만들기 경연대회에 ‘악양 작목회’로 출전하여 대상(국회 의장상)을 수상했습니다. 악양 작목회(영진다원 백숙희, 구산다원 방춘희, 박미자,박점자) 4명이 한조가 되여 녹차 밭에서 녹차 잎 채취에서부터 솥에서 덖고 손으로 비벼 말려서 3회를 반복하고 끝으로 맛내기까지 한 후 덖음차로 시음하여 종합 평가한 결과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많이 옵니다. 대상을 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귀농하여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내었다는 것이 큰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귀농한 후의 재미입니다.
차나무는 병충해의 피해가 거의 없습니다. 농사에 서툴다 보니 다양한 자재들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많이 먹으면 비만이 와서 여러 잔병들이 걸리는 것과 같이 작물도 풍족하게 영양을 공급하면 진딧물 등의 충이 달려듭니다. 그래서 일부러 녹차나무를 강하게 키웁니다.
쌀겨, 깻묵을 발효시켜서 뿌려주고 볏짚을 깔아주어 토양관리를 합니다. 3월에서 9월까지 한방 영양제와 바닷물을 15일 간격으로 뿌려 줍니다. 토양관리가 약한 것 같지만, 전정한 잔가지들을 그대로 바닥에 깔아주어 거름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진딧물이 있어도 무시를 해버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없어져 버립니다. 녹차 밭 옆에 닭을 사육하는데, 처음 키울 때는 사료만 먹였더니 살이 찌면서 자연사하는 닭들이 많았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사료 양을 줄이면서 방목을 시켰더니 기름기가 없고 자연사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나 녹차나무나 닭이나 같은 이치로 접근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서툰 농사꾼입니다.
 | ⓒ www.jadam.kr 2005-06-02 [ 손병홍 ] 자재를 많이 만들지는 않는다. 자연농업 회원들과 물물교환 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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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체험마을에 선정.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농원으로.... 하동군에서 녹차체험마을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녹차 만드는 과정을 같이 할 수 있는 시설도 새로 지었습니다. 농원 옆에 맑은 계곡물이 항상 흐르고 있고, 토종닭도 100마리를 녹차 밭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누구나 영진농원에 와서 녹차 잎을 직접 따서 녹차를 만들어 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것입니다. 지금도 오랜 시간 믿음을 갖고 단골이 되어준 이웃 친지들과 여름에 같이 보내고 있습니다.
많이 생산하여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관행농업을 몰랐기 때문에 자연농업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내가 먹을 농산물을 양심적으로 키우고 양보다는 질로 승부를 하는 서툰 농사꾼의 초심으로 녹차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영진다원의 대나무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지 찾아와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 www.jadam.kr 2005-06-02 [ 손병홍 ] 녹차 밭에 토종닭을 방목하고 있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대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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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취재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자기를 서툰 농사꾼이라 칭하는 손용기님의 변치 않는 초심이 바로 귀농 5년 후 전환기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손용기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 이번 취재를 마친다.
 | ⓒ www.jadam.kr 2005-06-02 [ 손병홍 ] 귀농을 결심할 당시에는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서로 합심하여 농장을 관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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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바로가기 : 영진다원 http://www.chanong.co.kr 손병홍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06.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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