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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의 비행, 신비 풀린다<위대한 비상>에 나타난 장거리 이동의 비밀… 무리지어 에너지 절약하고 충돌 피해
“철새들의 이동은 삶을 위한 비행이다. 철새들은 자신들에게 살기 적당한 온도와 습도,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그들 스스로가 살아갈 장소를 선택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코스모스>에서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를 섬세하게 보여줬던 자크 페랭 감독은 신작 <위대한 비상>에서 새들의 비행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행자’라는 철새들의 비행은 평화로운 호숫가에 있던 한 무리의 기러기떼가 하늘로 힘껏 날아오르며 시작된다. 중간 정착지에서 태어난 새끼들도 짧은 기간에 비행술을 습득해 여행 대열에 합류한다. 철새들의 여정은 생존의 몸부림인 동시에 대자연의 오디세이다. 철새들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위대한 비상>에 숨어 있는 자연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보자.

경비행기 곁에서 대형을 이뤄 비행하는 철새들. 자연에서 자란 새들이라면 경비행기의 카메라 세례에서 도망치려 발버둥쳤을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비상>의 주인공인 35종의 철새들은 경비행기를 마치 동료로 여기는 듯하다. 인간의 손길에 따른 ‘각인(Imprinting)효과’로 비행술을 습득한 까닭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동물심리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회색 기러기 새끼들이 태어난 직후 눈앞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어미로 머릿속에 새겨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린 동물들은 처음으로 눈과 귀, 촉각으로 경험하게 된 대상에 신뢰감을 느끼면서 부모로 생각하고 따라다니게 되는 것이다. 각인효과는 거위나 오리 같은 가금류를 비롯한 조류에 특히 많이 나타난다. 최근에는 포유류와 어류, 곤충류에도 각인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위대한 비상>의 주인공들은 어떤 식으로 비행술을 습득했을까. 제작진은 우선 영화에 출연할 새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1천여개의 알을 모았다. 이미 철새로서의 습성을 완전히 체득한 성숙한 새들과 촬영팀이 동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생물학자와 조류학자 40여명으로 이뤄진 ‘철새들의 유모’들은 알을 부화시켜 길렀다. 이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새의 색깔로 이뤄진 일종의 수도사 복장으로 새끼새들의 어미 노릇을 했다. 그렇게 해서 새끼새들과 침밀감을 형성한 다음에는 물가에서 본격적인 비행실습에 들어간다. 초기에는 보트를 개조해 만든 경비행기를 이용해 프로펠러를 작동한다. 그 다음에는 경비행기가 이륙을 시도해 새들이 따라서 날아오도록 유도하는 훈련을 반복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캐스팅된 철새들이 인공적 어미들의 가르침에 따라 극지대의 빙하에서 아프리카의 모래사막 등지까지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새들의 각인효과는 비행술을 전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새들의 개체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국제조류보호회의(ICBP)가 지정한 보호종에 속하는 유럽 기러기가 차츰 되살아나고 있다. 이 기러기는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서식하며 알을 낳아 부화한 뒤 겨울은 독일과 프랑스 등지에서 보낸다. 이 기러기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 연구자들은 어미새가 알을 낳으면 재빨리 수거해 인큐베이터로 옮겨 부화를 유도한다. 이때 어미는 자신의 새끼가 사라진 것을 알아채고 다시 수정을 시도해 알을 낳아 자연상태에서 부화하게 된다. 하나의 알을 부화하고 키우는 동안에 두개의 알을 낳도록 ‘보충산란’을 유도하는 셈이다. 그런 식의 각인효과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자란 새들은 항공기로 월동지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자연적으로 자라서 이동한 새들과 함께 겨울을 보낸 뒤 서식지로 귀환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멸종 위기에 있던 황새의 개체 수를 늘렸다.

철새들이 아무리 비행훈련을 받는다 해도 장거리 여행을 무리 없이 실행하는 것은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자크 페랭 감독의 말처럼 누구도 새들에게 여행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수천년 전부터 지켜온 오랜 숙명을 단 한번도 거스르지 않았다. 철새들이 본능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계절임을 알게 해주는 것은 바로 날씨의 변화다. 이들은 기온의 변하면서 낮길이가 달라지면 생리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이동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낀 철새들은 동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 뒤 무리를 이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새들은 하루에 200km에서 600km의 거리를 이동한다. 여행 중에는 숱한 애로와 난관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새들은 도중에 무리에서 벗어나 낯선 지역에 고립되기도 하고, 폭풍우에 휩쓸려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우리나라를 떠난 제비의 절반가량만이 동남아시아에 도착한다.

대부분의 장거리 여행 철새들은 무리 가운데 경험이 많은 새를 앞세워 V자형의 대형을 이룬다. 이 대형은 바람의 저항을 가장 적게 받으며, 비행 중에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도 한다. <위대한 비상>의 제작에 참여한 프랑스 국립과학원 생물학연구소 헨리 바이메르스키치 연구원은 “새들이 혼자 날아가는 것에 비해 함께 날아가는 것이 항공역학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면서 서로가 같은 속력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새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무리를 지어 날면 주변에 소용돌이와 같은 강한 상승기류가 생성된다. 커다란 덩치로 높이 나는 독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는 높이 올라갈 때 날갯짓보다는 상승기류를 이용한다. 만일 새들이 제멋대로 비행을 한다면 강한 하강기류가 새들의 날개 위를 짓누르게 된다. 물론 철새들은 비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여름철에 저장해둔다. 이동거리에 맞게 지방분을 축적해 비행 연료로 삼는 것이다.

<위대한 비상> 제작진은 철새들이 충돌 없이 날 수 있는 이유를 밝혀내기도 했다. 새의 깃털 위에 전자감지기를 부착해 날갯짓하는 횟수를 기록하고 새의 피부 속에 전자장치를 삽입에 무선으로 통신하도록 했다. 기록을 분석한 결과 무리를 지어서 날아가는 것이 이동거리를 증가시키며 서로의 의사소통에 효율적이라고 한다. 철새들이 대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어떤 새가 진로를 벗어나면 주변의 새가 곧바로 이탈각도를 줄이도록 유도해 원래 의도한 방향으로 진로를 바로잡게 된다. 한 마리의 실수를 흡수·수정하면서 위치를 찾는 셈이다. 새들이 완벽한 대형을 유지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아가는 방법을 유체역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인간의 교통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이제라도 ‘이민 종족’의 숙명을 간직한 채 ‘위대한 비상’을 시도하는 새들에게 대자연의 감동을 느끼고 싶지 않은가.

출처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7.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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