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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도부터 정 농회 를 통하여 환경농업에 입문한 길광섭 씨는 이후 자연농업 연찬을 받으며 지역에서 자연농업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오고 있다.
현재는 북한강 유역을 기반으로 하는 화천, 양구, 춘천, 홍천 4개 지역에서 환경농업을 실천하는 농가들의 모임인 ‘북한강 유기농업 운동연합’의 대표직를 맡고 있으며 북한강 유역의 환경운동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16년간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온 길씨의 말을 정리하여 싣는다.
- 끊임없는 어려움들, 그리고 세월
한때는 화천, 계성리 지역의 자연농업이 전국 어느 곳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습니다만 이제 몇 농가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지역이 이렇듯 다른 지역도 비슷한 현상입니다. 그만큼 자연농업을 올곧게 실천해 간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질 않습니다. 언제나 농업은 경제적인 문제가 주이기 때문에 자연농업을 통하여 가계에 도움이 되질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누구나 견디기 어렵게 되지요. 저의 경우 ’93년에 결혼을 한 이후 3년간 연속으로 연간 조수익이 500만 원을 넘질 못했습니다.
‘자연이 좋아’시골로 시집을 온 아내가 너무도 아무렇치도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견디어 주어서 지금의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결혼 전 아내에게 자연농업 연찬을 받게 하고 예비수련을 단단히 시켰기에 이토록 순탄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경제적 관점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저희와 같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 경작면적 1600평에 조수익 1,700만 원이면 참 힘겹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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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품목 유기재배 인증 받아
생산기술이 뛰어나서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았다기보다는 당연한 것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증을 신청했습니다. ’88년 이후부터 화학비료는 전혀 쓰질 않고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현재 비가림 오이와 노지 호박을 주작으로 하고 있는데 반듯하게 내놓을 만큼 농사를 잘 짓고 있다는 생각은 못합니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잎이 깨끗하고 고른 농사는 생각하기도 어렵고 더욱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제때에 영양공급을 원활히 해 줄 수가 없어서 재배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한 가지 위안인 것은 소비자들이 맛에 대해 확실한 신뢰를 보내 준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생산하는 오이와 호박, 그리고 계절 야채들은 전량 서울의 소비자 단체들에게 공급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물량이 다소 모자라는 상태이지요. 소비자 단체로 생산물을 공급하게 되어서 그나마 최소한의 수입이 보장되어 이렇게 살아갑니다. 이는 그간 노력해 온 것에 대한 ‘사회적 화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무농약, 무비료로 가는 길
쉬운 길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기에 점진적인 개선을 해 나가면서 무농약, 무비료를 실현해 나간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런 가운데 생산기술의 노하우를 체득해 나가는 것이 오히려 빠른 지름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작물은 몰라도 과채류의 경우는 농약잔류성분 지속기간 이내에 소비자들이 먹을 확률이 높으니까 정말 자연·소비자들을 위한 농사를 결심한다면 애초부터 무비료·무농약으로 출발점을 삼아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저농약 재배를 하는 사람들은 계속 그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대한 심리적 의존과 미련이 새로운 농법으로의 길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지요. 일단 선택을 하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수십 년의 농사경험 속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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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를 무농약으로 재배한다고?
저는 6년에 걸쳐서 노지와 하우스 에서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노지보다는 하우스 재배가 훨씬 어려웠는데 오이를 무농약으로 재배한다고 하면 믿겨지지 않는 듯, 아니 ‘저놈 미친 놈인가 보군’하듯 쳐다봅니다. 전국적으로 날고 기는 농가도 오이의 무농약 재배는 불가능하다고 판정을 내렸다는 얘기들이죠.
농약을 줄여 나간다는 식의 접근을 하면 농약을 끊을 수 없고 농약을 안 쓰겠다고 단안을 내리면 정말 농약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법이지요.
- 질소질 거름 만들기의 힘겨움
호박이나 감자 등은 많은 질소질 거름이 없어도 농사가 되는데 오이의 경우는 다릅니다. 지속적으로 수확이 이어지기 때문에 질소분 거름의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한데, 그래서 농작물 잔사, 톱밥돈분 등으로 사용해 보았지만 이것들은 분해기간이 길어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골몰하는 것이 액비화해서 관주로 영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유기재배 오이이기 때문에 화학비료는 전혀 안 되니 자연적인 재료만으로 질소질을 충분히 공급해 줄 수 있는 액비를 만들어 내는 일이죠. 생선아미노산을 사용해 보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을 느낍니다. 오이의 유기재배 선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힘겹게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이 외에 다른 작물에서 출중한 실력이 있는 자연농업 농가들의 사례에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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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할 수 없는 고추 역병의 확산
20년 연속으로 200평 남짓 고추농사를 짓고 있습니다만 역병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인근 다른 농가들은 올해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가 고추농사를 위해서 하는 일이란 토착미생물 살짝 뿌려 주고 어쩌다 한방영양제와 천혜녹즙을 엽면시비하는 것인데 이런 간단한 노력이면 역병은 걱정이 없거든요.
전국적으로 고추뿐만 아니고 거의 전과채류에 역병이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만 전문기관에서는 별 대책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왜 대책이 없지요 농약, 화학비료 덜 쓰고 자연농업식 처리를 해도 극복할 수 있는 간단한 일들을 그들은 너무도 어렵게 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전문연구기관 사람들에게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여야 한다는,
미생물을 이용해야 한다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은 농업현장에서 팽팽돌아가는 기술적인 진보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문제점을 해결하려면 지엽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고 보다 본질적인 것, 근원적인 것에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신앙적인 방법이 농업에도 통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근원이 깊어질수록 방법은 단순해지고 기술은 비약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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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클레인인 위력
유럽에서 발표했다는 자료를 신문을 통해서 보았는데 이 자료는 대형트랙터가 밭을 갈 때 지하 7m 깊이 이내에 사는 토양소동물이 압사당한다 것을 설명합니다. 설마했습니다만 농사를 지으면서 실감을 했습니다.
포클레인이 서너 번 지나간 자리에 아무리 로타리를 치고 농사를 진다고 해도 2~3년이 지나야 정상적이 농사가 됩니다. 요즘 한 번 만든 두덕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자연농업 농가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이들과 같이 해 볼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농업을 하면 할수록 방법은 단순해지고 노동력이 적게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그 마력(魔力)에 빨려들어 가는 것이죠. 적게 움직이고 좋아진다. 참 역설적인 말이지만 자연은 그런 것 같습니다.
- 귀농 희망자를 위한 제언
귀농을 계획하는 분들께서 간혹 자문을 구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 귀농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더욱 구체적으로 자식 교육과 집에 대한 집착을 포기해야 함을 말합니다. 도시사람들은 물론 시골사람들까지도 자식을 대학 보내는 것과 도시에 번듯한 집을 갖는 것을 생애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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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대학까지 보내는 것이 부모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고등 학교만을 나왔습니다만 새로운 앎을 위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제도권 교육을 통하지 않고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움이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농촌사회가 급변해 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농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변해야만 진정한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밤하늘의 별을 보다
3대째 이 곳에서 살아왔습니만 주변의 자연에 별 관심이 없고 그저 당연한 듯 살았었나 봅니다. 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자연농업 연찬을 받고 한참 고무되어 집에 돌아와 첫날을 맞이하던 밤,하늘에 별이 수많음을 처음 느꼈던 것입니다. 저는 이 아름다운 곳, 흙내음 짙고, 실개천에 조랑거리는 물소리 끊이지 않는 이 곳이 좋습니다.
간혹 바위에 올라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수 많은 생명의 흐름이 가슴 속으로 깊이 패여 들어와 그들과 함께 나도 함께 고동치고 있다는 생명의 일체감(一體感)을 느끼곤 합니다. 이쯤이면 준도사(準道士)라고요 경제적인 목적 실현의 수단만으로 농업을 삼지 않으면 당연한 일입니다.
조영상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11.2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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