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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차의 처음은 18세기 초에 표트르대제가 최초의 계획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조성하면서 측근과 신하들에게 부지를 나눠준 데서 유래한다. 그래서 다차의 어원은 ‘주다’의 ‘다르’와 ‘선물’인 ‘빠다록’으로 ‘선물한 땅’이라는 뜻이다.
다차는 관료들의 여름별장으로 자리 잡으며 당대 지식인들의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또한, 다차를 보유하는 것 자체가 왕실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명예와 부를 상징했다. 19세기에는 인기 있는 페를로프카 마을의 다차를 임대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하고 3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출처: https://www.doopedia.co.kr/travel/viewContent.do?idx=180805000047166 |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에는 생활고 극복을 위한 생존수단이 되면서 일반인들도 오두막을 빌려 다차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이에 흐루쇼프가 집권하고 나서는 까다로웠던 다차 보유 과정을 생략하고 다차 보유를 합법화하는 한편 다차를 무료로 보급하면서 텃밭 가꾸기는 다차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인들은 주식을 다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다차의 크기에는 엄격한 제한이 따랐는데 거주 공간은 60㎡를 넘길 수 없었고 1층으로만 지어야 했다. 이에 다락방을 만드는 것이 유행하였다. 지금은 규제가 완화되어 대형주택도 짓고 기능도 노동과 수확에서 휴식으로 변화되고 있지만, 지금도 다차를 짓고 꾸미는데 업자를 동원하거나 물건을 새로 사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가져다 놓는다거나 필요한 것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쓰면서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는 것이다. 오히려 돈을 들여 인테리어 하는 비싼 다차를 서민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러시아에서 다차는 귀족들의 휴양지였다가 공연 및 문화교류의 장이었다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한 식량 생산지의 역할을 하면서 시대적 상황에 맞춰 변화해 왔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확진자를 억제하기 위한 피난처의 기능까지 더해졌다. 이제 다차는 주말농장을 넘어 러시아인의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1Z0EF5NXZ7
월간조선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207100035
콩나물신문 http://www.kong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510
이경희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22.03.2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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