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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기에 물을 가득히 넣고 퐁퐁 500g을 풀어 나무에 줍니다. 비가 온 다음날 보세요, 나무들이, 밭 전체가 반짝반짝합니다.”
지난 2월14일, 과수 무농약토론회에 참가, 사례 발표를 한 권기현 씨(충남 홍성)의 말이다. 참가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퐁퐁- 이른바 천연 계면활성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농민들 사이에 흔히 살충제 대용으로 쓰여져왔다. 권씨는 제주도 여행 중 한 감귤 농장에서 퐁퐁을 활용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진딧물도 잡히고 농장도 깨끗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권씨는 배나무의 흑성과 적성을 막는데 커피와 식용유 등을 쓰기도 한다고.
이 날 토론회에는 기상천외한 온갖 천연자재들이 다 등장했다. 간장, 된장, 김치국물부터 커피, 식용유 ,태운 돌멩이에 은이온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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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약토론회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www.naturei.net)이 주최하는 친환경 농사 이야기 한마당이다. 전국의 초보농사꾼부터 고수까지 한자리에 둘러 앉아 자신의 논과 밭에서 직접 사용해본 천연자재의 성공과 실패, 농사 노하우 그리고 유통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자리이다.
경남 하동에 위치한 자연농업문화센터에서 열린 올해 과수 무농약토론회는 전남 담양의 최덕순 씨를 비롯 70여 명의 농민이 참가, 2월14일부터 16일까지 2박3일간 열띤 토론을 펼쳤다. 작목별로는 배 23명, 단감 16명, 사과 8명, 복숭아 5명, 포도 4명, 매실 3명, 녹차 2명, 참다래 2명 등이다. 이밖에 수원농업과학기술원 직원과 한국유기농시민연대 직원들이 참석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관심사 중 가장 큰 부분은 충과 균을 어떻게 다스리냐는 것이었다.
전남 나주에서 배농사의 일인자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박노진 씨는 “배나무에는 병이 27종, 해충이 306가지나 됩니다. 노린재 하나만 들어가 봐도 350종이나 돼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서 “해충 중 나방이 가장 두렵죠. 자리공도 했고, 소리쟁이도 했고, 녹차잎도 했으며, 어성초도 했어요. 배나무의 가장 큰 병인 흑성은 개화 직전 꽃이 한두 개 피기 전 유황합제를 뿌렸어요. 지난해 7,8월 응애가 생겨 인산칼슘(한방누룩균과 목초액 칼슘)을 계속 했더니 확산이 멈추더군요”라고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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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농민들은 관행에서 저농약 또는 무농약, 전환기유기농으로 바꾼 이후 수확량이 관행에 비해 50%까지 떨어지는 충격을 감내해야 했다. 이들은 몸도 편하고 효과도 단시간에 볼 수 있는 제초제를 마다하고 마음고생은 물론 주변의 조롱 섞인 시선까지 감내하며 무농약을 고집하는 뚝심을 보여주기도 한다.
충북 영동 황간면에 들어가 전환기유기농으로 2,000평 포도농사를 짓는 이영현 최아선 씨 부부는 포도잎을 바늘로 찔러놓은 것 같은 갈반병으로 고생했다. 인증을 내준 공무원마저 그들 부부에게 한 해 인증을 포기하고 약을 쓰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씨가 끝까지 무농약을 고집해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쑥 천혜녹즙을 걸러낸 데다 소주를 부어 그것으로 균과 충을 잡는다는 이씨는 “포도가 8,9월에 익어야 하는데 7월에 잎이 다 떨어졌어요. 그런데 2차 적심 후 땅으로 늘어뜨린 부초(옆순)가 빨아들인 영양분이 포도로 가는 겁니다.”라고 자연의 놀라운 적응력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판로에 대해서도 비슷한 생각과 고민들을 하고 있었다. 경남 하동에서 매실과 단감, 감식초를 하는 방호정 씨는 인터넷으로 단골 고객들을 확보하고 그들을 통해 해마다 매출액을 높이고 있다. 방씨의 홈페이지에 가입한 3천 명의 회원 중 재구매를 하는 숫자는 약 800명 선, 그 가운데 단골고객이 100~200명 선이다. 이들은 농장 한 번 구경하지 않고 꾸준히 구매한다고.
“2000년부터 인터넷으로 1년에 1,200만 원, 2년 차에 2천만 원, 작년에는 많은 수익을 올렸어요. 올해는 2억을 예상합니다.”
방씨는 상품으로 내놓기 어려운 감을 가공해 감식초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히려 효자 노릇을 했다. 방씨는 “앞으로 까지고 뒤로 남는 장사”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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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부안에서 배농사를 짓는 최동춘 씨는 도시소비자들에게 배나무를 분양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판로를 해결하고 있다. 한그루 25만 원부터 32만 원까지 분양해 농사 시작하기 전에 이미 4,5천만 원이 들어온다고. 분양 안된 나무에서 나오는 배들도 고객들이 다 팔아준다.
최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 홈페이지의 회원들을 가족처럼 대한다. 단골 회원 30~40명은 이틀에 한 번꼴로 최씨의 홈피에 들어온다. 최씨는 배꽃이 피면 이들을 농장으로 초청해 하루 저녁 황토방을 빌려 재우고, 나무에 각자 이름을 적어 걸어놓게 하는 등 농장 체험을 갖도록 한다.
경남 하동에서 단감농사를 짓는 유재관 씨. 그의 단감은 과즙이 많고, 당도가 높아 맛 좋기로 유명하다. 그는 “사 먹는 사람은 많고 생산은 나 혼자다, 내가 사달라고 소비자를 찾아가지 말고 찾아오게 하자, 그리고 난 농사짓는 데만 전념하고...그게 유통이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어들 역시 맛 있는 과일을 생산하는 농민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 사람들과 거래를 해야 판로 걱정에서 해방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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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은 농사 비법과 함께 자기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자재나 기구를 소개했다. 경남 산청에서 배농사를 짓는 정부환 씨는 은이온수의 효험을 전했다. 정씨는 은이온수가 사람 몸의 균에 잘 듣는다는 점에 착안해 작물에게도 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은이온수를 500ml에 2만5천 원에 파는 제조 회사가 있지만 자신은 단돈 1천 원이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정제수에다 은봉 2개를 꽂고 전기장치를 해놓으면 한두 시간 후 은이 녹아나와 은이온수가 만들어집니다. 은이온수에 충이나 균이 닿으면 살 수가 없어요.”
정씨는 한 대 45만 원 하는 은이온수 장치를 재고를 가진 업자와 접촉해 7만 원에 구입했다는 말까지 했다.
방호정 씨는 농업용 약수를 650L를 만들어 적재적소에 쓴다고 밝혔다. 바닷물 50%, 물 50%, 각종 암석과 토착미생물, 다양한 풀을 집어넣어 기포 발생을 시켜 청초액비를 만든다. 이 약수를 작물 재배부터 수확 때까지 사용한다. 방씨는 액비를 따로 100L 씩 받아서 밭의 형태에 따라 부족한 영양소를 추가해 엽면살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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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무농약토론회에는 예년에 비해 참가농민의 수가 적었지만 농사의 고수들이 많이 참석해 수준 높은 토론회가 됐다는 후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충북 영동에서 29년 째 복숭아농사를 짓는 김정규 씨(63세)의 밭은 나무 이파리 수만큼 열매가 열려 환상 그 자체라고 한다. 5천 평에서 15kg 600박스를 수확한다고 한다.
“토양관리를 남보다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8년 동안 비료를 하나도 안했어요. 수확은 무척 많이 합니다. 토착미생물을 고두밥으로 채취하는 것도 이제는 꾀가 나 안해요. 그냥 대나무, 참나무 밭의 부엽토를 걷어내 그놈을 자루에 담아 집사람하고 가져와 씁니다. 섞어띄움비는 비 올 것 같으면 뿌립니다. 초봄에 뿌리고 4,5월에 비 오고 나면 땅이 하얗게 됩니다. 큰가지를 전정한 후 그 자리의 상처 부위를 본드로 코팅해줘요. 그러면 10년 가도 썪지 않아요. 서리가 올 것 같으면 석회보르도액을 줍니다. 불가사리 그거 복숭아 따기 열흘 전, 이주 전인가 엽면시비를 합니다. 최고의 칼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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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업을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점에 착안, 정부의 지원금을 타내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한 농민은 “나는 작년에 1억4천만 원을 지원 받았고, 올해 벌써 4천만 원을 따냈어요. 돈은 있는데 사업 계획서 쓸 게 없어서 못 탈 정도입니다. 뭉치세요.”라고 말했다.
경남 고성에서 참다래농사를 짓는 김찬모 씨는 고성의 참대래 농사를 짓는 이들로 작목반을 구성해 생산과 유통을 대규모화 및 단일화하고 있다. 작목반원 가운데 자연농업 회원들이 따로 있다고 한다. 이들끼리 자연농업 연찬도 참석해 정신 교육도 받고, 자재도 공동으로 구입해 쓰고 있다.
“주정의 경우,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구입하니까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재를 만드는 데 쓴다는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으니 와서 보겠다고요. 현장을 보고는 그런 것들로 생산하는 다래라면 믿을 만하다면서 우리 다래를 사먹겠다는 말까지 했어요”
김씨는 “바이어들은 편한 거를 원합니다. 대량의 물건이 가능한 생산자를 찾아요. 우리 창고에는 1500박스가 언제든지 나갈 준비가 돼 있습니다. 여기서 나가면 작목반을 만드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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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사의 메카 자연농업에 대한 예찬도 빠지지 않았다. 충남 예산에서 배농사를 짓는 박기활 씨는 자연농업을 알기 전까지는 ‘흑성’ ‘적성’ 같은 병들이 두려웠다고 한다. 그는 건강한 사람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단순한 논리를 나무에 적용했다. 즉, 자연농업으로 나무의 체질 개선을 하면 병이 안 온다는 말이다.
“냉해 피해로 다른 농가의 꽃이 얼어 죽어도 우리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나무를 건강하게 키웠기 때문이지요”라고 했다. 그는 자연농업을 한 후 농사에 재미도 들렸다.
박씨의 과일은 유통업자들이 웃돈을 더 얹어주면서 찾기까지 한다고. 배가 알이 크고, 맛과 색깔, 향이 좋다는 얘기다. 박씨는 그 비결에 대해 “바다에 가서 게, 대하 껍질 구해다 볶아서 칼슘을 집중적으로 주었다”고 했다.
“봄에는 나무가 강해야 하니까 인산칼슘 위주로 하고, 그 다음에는 유연성이 중요하니까 천연칼슘(계란칼슘)을 줍니다. 교대기에 인산칼슘을 다시 주고, 교대기 이후에는 게칼슘을, 수확기에는 새우칼슘을 주었어요.”
전국에 확산돼 있는 자연농업 회원들끼리는 이같은 토론회 자리를 통해 서로 필요한 자재를 저렴하게, 또는 무상으로 주고 받기도 한다. 박기활 씨는 “삼나무통, 삼나무 막대기를 어디서 구합니까, 제주도 회원 분에게 배 좀 보내고 했더니 많은 양을 보내주었어요”라며 웃었다.
김정규 씨도 “이번 토론회 참석해 울산에서 배농사 짓는 회원으로부터 불가사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며 흐뭇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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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부의 친환경 농업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우리나라의 농약 피해는 모두 정부의 탓이다. 정부가 70,80년대 화학비료를 쓰라고 몰아치는 바람에 논과 땅이 다 망가진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충남 공주에서 배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우리나라에 친환경농산물 경매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영농법인도 없고 농협공판장도 안 해요. 진흥청도 농민들에게 기술 교육 시킨 거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농민은 “일부 대학 교수들은 지원금을 받아 챙기고 연구 논문은 농민들로부터 데이터를 받아내 제출하는 식”이라면서 정부의 영농연구비 지원 정책의 허술한 점을 공격했다. 그는 “기술 지도 직에 있는 사람들이 8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있다가 그냥 갑니다. 그러니 뭘 알겠어요. 교육을 보내라고 안내장이 와도 귀찮으니까 우리에게 연락도 안 해 줘요”라고 농업 관련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나태함을 힐책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수원 농업과학기술원의 한 직원은 위의 비판과 관련해 “우리도 이제 시작입니다. 쿠바도 갔다 왔고 그곳의 기술도 도입하려고 해요. 1,2년 안에 되는 것도 아니고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십시오”라고 답변했다.
지난 주 일반작물 무농약토론회에도 참석했던 이 직원은 “천연자재를 이용해 풀을 다스리고 각종 충과 균을 억제하는 방법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것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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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약토론회는 2박3일간 한 시간의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농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사례 발표를 경청하고 질문을 하는 등 열띤 성의를 보였다.
첫날인 2월14일, 자기소개를 마친 참가 농민들은 비료 제조업자들로부터 석회보르도액 제조 방법과 골분 액비 만드는 법을 시연과 함께 들었다. 이튿날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10명 이상의 농민들이 단상에 올라가 사례 발표를 하는 등 빡빡하게 진행됐다. 마지막 날 역시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토론을 벌였다.
충북 영동에서 온 여인성 씨는 한국철도공사에 다니는 한편 포도농사를 짓는 젊은 농부이다. 바쁜 짬을 내 무농약 토론회에 참가한 그는 “많은 것을 배웠어요. 특히 작물에 병이 생기는 원인과 관련, 특정 균이 과도한 상태로 인식하고 다양한 토착미생물을 퍼트려 특정 균의 세력을 막는다는 접근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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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농사의 최고 경지에 올랐다는 말을 듣는 김정규 씨는 실제로 농사 기술로 따지자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김씨는 사흘 내내 한 시간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그는 “배우는데 끝이 어디 있습니까. 자꾸 쉽게 가려는 자신을 담금질하기 위한 거지요. 다른 이들이 열심히 농사짓는 걸 보고 자극도 받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조영상 대표는 “대부분 교육은 농민들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농민과 농민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 기술의 미래는 밝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피부로 느껴 뿌듯합니다.”라며 만족해했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은 과수 무농약토론회에 앞서 지난 2월8,9일 1박2일간 일반작물 무농약토론회를 가진 바 있다.
오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02.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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