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과거에는 노동이나 자본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만, 오늘날에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부의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빌 게이츠는 지식 하나로 세계 역사상 최고의 부자가 되지 않았는가 그리고 과거에는 원료와 노동이 필요해서 수확체감의 법칙(원료나 노동을 계속 더 많이 투입해도 투입량의 비율만큼 생산이 더 늘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경제학의 가정)이 지배하였지만, 이제는 지식만 있으면 되니까 수확체증의 법칙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55만원에 판매되는 윈도XP 한 카피를 추가로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5천원도 안 될 것이다. 100배가 넘는 수익률, 이것은 아편보다도 더 수지가 맞는 장사이다. 이와 같이 지식산업의 비중이 커지고, 지식노동자의 수가 늘어나고, 지식의 양과 깊이가 늘어나고, 세계화 경향을 통하여 지식이 지구 전체로 확산되면 마침내 노동은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일까
지식은 노동의 종말을 예고하는가
그러나 지식에 대한 이러한 환상적인 전망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우선 지식은 하드웨어 형태이든 소프트웨어 형태이든 웨트웨어(두뇌 속에 존재하는 지식) 형태이든 모두 인간 노동의 산물이거나 인간의 노동을 통해 발휘되는 것이다.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학습이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과정이 바로 노동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식과 노동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지식노동과 보통노동 사이의 대립이다.
지식이 일반 수확체증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화폐형태의 부인데, 수확체증이 반드시 화폐형태의 부를 증가시킨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은 지난해 있었던 반도체 가격의 폭락을 생각해보면 된다. 반도체 생산에서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수확체증현상이 분명히 지속되었지만 가격이 폭락함으로써 많은 반도체 회사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지식기반 경제에서 가장 근원적인 모순은 지식은 독점을 할 때에만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 화폐적인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윈도의 지식(소스 코드)을 공개했다면 그만큼 부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식은 자꾸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식의 확산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지식노동이 누릴 수 있는 화폐적 이득은 보통노동과의 격차가 클수록 커진다. 20대 80이라고 불리는 부의 불평등 현상이 점점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지식노동의 화폐적 이득은 보통노동의 규모가 커질수록 커진다. 아프리카 사람들도 에이즈 약에 대하여 로열티를 내게 되면 제약회사의 이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선진국들이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제도를 만들어서 세계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가치를 만드는 지식노동
지식이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노동과 보통노동의 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의 가치가 사라지고 지식가치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식노동이 보통노동에 비하여 불평등하게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지식노동이 획득한 화폐적 부도 궁극적으로 보통노동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데 쓰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소비의 궁극적인 의미이다. 지식노동자가 많은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제3세계의 노동착취공장(sweat shop)에서 보통노동자가 만든 운동화를 더 많이 산다든지, 외국에서 이주해온 보통노동자에게 청소를 더 많이 시키는 것뿐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7.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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