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휴, 뭔 일은요. 농식품부에서 살충제 달걀 출하 정지 발표하고 이 난리죠. 어째 자꾸 이런 일이 난데요. 연초에도 AI (조류독감) 때문에 미국산 달걀까지 수입하며 그 난리를 쳤잖아요. 이번에 살충제 달걀이라고 온 방송이며 신문이며 이야기하니 달걀 농사꾼들이 다 죄인 되었어요. 닭을 배 밭에 풀어 키우는 저야 살충제가 달걀에서 나올 일이 없으니 주문문의 전화 받느라 덩달아 이 고생입니다. 마음이 좋질 않아요.”
해방의 기쁨을 경축하는 8월 15일 자정에 난데없이 TV 방송에 전국 달걀 출하금지 속보 자막이 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에 따르면 14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 산란계 농가 달걀에서 금지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이 검출되었고 또 다른 농가 달걀에서는 비펜트린 살충제가 기준치를 초과했다. 15~17일에 걸친 1239농가 전수 조사 결과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농가는 모두 49곳이었고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 농가는 31곳이었다. 농가 12곳이 닭에 사용이 금지된 피프로닐 살충제를 썼다. 37개 농가는 사용 가능 성분인 비펜트린을 썼는데 허용 기준치를 초과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달걀은 전체 공급물량의 4%였다. 이 긴급했던 상황의 한가운데에 있던 김경호 농부는 갑작스런 초대형 태풍을 어떻게 겪어냈을까?
“15일 아침 7시 농관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나주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어요. 11시에 수거해 가겠다고요. 달걀을 수거한 농관원에서 16일 아침에 적합하다는 검사결과서를 받았는데요. 광복절인 15일은 다행히 휴일이라 출하에 지장이 없었죠. 전 늘 하던 대로 아침에 닭장 문 열어서 닭들이 배 밭에 나가 뛰어놀게 했고요. 그런데 주문문의와 검사결과서를 달라는 거래처 전화 받느라 전쟁을 치렀습니다. 검사결과서는 고정거래처인 학교급식센터, 생협, 직거래 소비자들에게 보내 주었구요. 폭염 뒤끝이라 산란률이 떨어져 물량이 없어서 못주거나 미루고 있어요. 닭이 기계가 아니니 주문 들어온다고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달걀 찍어낼 수는 없잖아요.”
“그야, 당연히 닭을 좁은 닭장 안에 밀식사육하기 때문이죠. 생명체인 닭을 A4 용지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 가둬 놓고 꼼짝도 못하게 하고 달걀만 죽어라 낳게 하잖아요. 좁은 공간에 과밀하게 가둬놓으니 닭이와 진드기 같은 벌레들이 엄청나게 번식하고, 벌레를 잡으려니 살충제를 닭에게 뿌리게 되는 거고, 그러다 보니 닭의 몸에 흡수된 살충제가 달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 살충제가 허용 기준치를 초과하거나 금지 살충제가 검출되었다는 거잖아요? 풀어놓지 않고 비좁은 감옥 같은 케이지에 가두어 키우는 닭에 달걀에서 살충제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다만 허용기준치 이하로 생산유통되고 있다는 뜻이죠.
닭은 원래 풀밭에서 뛰어다니며 풀 뜯어먹고, 두발로 흙을 파헤쳐 벌레 잡아먹고 사는 동물이거든요. 풀 없애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닭 풀어놓으면 하도 파헤쳐서 풀이 남아나지 않아요. 우리 배 밭 보세요. 닭 풀어놓은 데는 풀이 하나도 없어요. 풀 관리를 닭이 다 해요. 풀도 풀이지만 닭을 풀어 키우면 진드기 같은 문제가 생길 수가 없어요. 닭이 본성대로 살도록 풀어서 키워야 해요. 꼭 풀밭이 아니라도 흙이라도 밟고 살게 해주면 되거든요. 당연히 살충제가 필요 없죠. 좁은 케이지에 닭을 가두는 순간 살충제 사용은 필수입니다.”
“닭을 축사나 방목장에서 풀어 키우는 1%도 안되는 극소수 농가 외에는 거의 대부분 달걀 농가들이 케이지 밀식사육을 하고 있습니다. 무항생제 인증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현실을 반영된 거죠. 하지만 이는 친환경 축산물 제도의 큰 허점입니다. 친환경농산물은 화학농약을 허용해서 논란이 되어왔던 저농약 인증제도를 2016년에 폐지했거든요. 저농약농산물 인증제도는 제초제 이외의 화학농약 사용을 허용하는 맹점이 있었어요. 제초제를 금지한 저농약농산물 인증제도의 축산물 버전이 무항생제 인증제도라고 볼 수 있죠. 무항생제 인증을 받고 살충제를 쓰는 농가들을 늘 담벼락 위를 걷는 심정이었을 겁니다. 자칫하면 기준치를 넘을 수 있으니까요.”
달걀에서 허용기준치를 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담당 정부기관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이다. 1998년 환경농업육성법이 시행되고 농관원에서 친환경인증 농가의 관리감독을 전담하다가 신규인증과 갱신, 사후관리 업무를 민간인증기관에 이관해 왔다. 지난해부터 신규인증과 갱신 업무를 민간인증기관이 전담하고 있다. 사후관리 업무도 농관원과 민간인증기관이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관원이 전담하던 시절에 비해 민간인증기관를 인증과 갱신, 사후관리를 맡게 되면서 부실 인증과 갱신, 사후관리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최근에는 농관원 퇴직자들이 민간인증기관에 재취업한 것이 부실한 친환경 농가 관리의 주요 문제점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무항생제 인증을 농관원에서 받았어요. 농관원의 요청으로 2013년에 민간인증기관으로 옮겼어요. 민간인증기관에서 인증관리를 받는 것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요. 공공기관보다 민간기업에서 그동안 여러 잡음과 문제가 벌어진 걸 보면 인증과 관리 업무를 맡는 것이 그리 탐탁하지는 않아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먹을거리인 농수축산물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생각은 하지요.
하지만 민간인증제도 자체가 부실 관리의 핵심은 아니죠. 우리나라 친환경농업육성법이 미국 제도를 모델로 했고 미국 역시 민간인증기관이 관리를 하거든요. 최근 보도를 보니 농관원 퇴직자가 민간인증기관에 재취업한 걸 문제 삼고 있는데요. 농관원에서 인증관리 업무를 보던 공무원이 전문성을 살려 인증관리 업무를 계속하는 것 좋을 수도 있지요. 친환경 농민들은 민간인증기관을 스스로 선택하니까요. 다만 인증관리업무가 민간인증기관의 수입원이니까 업무를 허술하게 해서 인증 건수를 많이 받으려는 유혹은 있을 수 있죠. 이를 관리감독하는 것이 농관원의 업무고요. 민간인증기관을 관리감독하는 농관원이 일을 제대로 하면 부실인증관리 문제는 없어진다고 봅니다.”
“3천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어요. 닭장 240평은 행복한 닭들이 사는 집이구요. 유기농 배 과수원 3천평은 우리 닭들이 뛰어놀고 사랑 나누는 놀이터입니다. 배 밭에 있는 풀과 벌레만으로는 닭의 먹이가 충분하지 않아 깻묵, 쌀겨, 밀기울, 두부비지, 싸래기, 황토와 EM를 섞어 먹이로 줍니다. 또한 Non GMO 사료를 업체에서 구입해 사료로 쓰고 있어요. 제가 가톨릭농민회원인데요. 가농에서는 GMO를 반대하거든요. 일반 사료에는 GMO를 원료로 쓰고 있는 것 같아 사서 쓰는 사료도 신경 쓰고 있습니다.”
살충제 달걀 파문으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친환경 무항생제 인증 달걀은 친환경농업육성법의 기준에 따라 친환경 인증마크를 달고 시중에서 판매된다. 현재 전체 달걀 생산 농가의 63%가 무항생제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살충제를 허용하는 무항생제 축산물?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저는 무항생제 인증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방사를 하는 동물복지 자유방목 인증 농가입니다. 살충제를 쓸 일이 없죠. 무항생제 인증은 관행 양계에 비해 진일보했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무항생제 인증제도를 만들 당시 살충제가 필수인 케이지 밀식을 허용한 것이 이번 살충제 달걀 파문을 초래했어요. 현재 사료에는 항생제 혼입이 금지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일반 농가들이 손쉽게 무항생제 인증을 받는 길이 열렸습니다. 전체 산란계 농장 중 60%가 넘는 농가들이 무항생제 인증을 받고 있는 수치가 이를 방증합니다.
친환경농축산물이면 원칙적으로 화학살충제를 써서는 안되죠. 그런데 케이지 밀식사육은 살충제를 필수로 하니 현실과 제도에 모순이 생기는 겁니다. 인증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으니 농가들보다 정부의 책임이 훨씬 큽니다. 지금 민간인증심사기관의 부실 관리가 지탄을 받고 있는데요. 무항생제 인증에 케이지 밀식사육을 금지하거나 또는 화학살충제를 금지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저도 한때는 유기축산 달걀을 생산했습니다. 유기축산 달걀은 법규상 살충제를 사용해서도, 검출되어서도 안됩니다. 모든 달걀 농가들이 유기축산을 했으면 달걀에서 살충제가 검출될 일이 없겠죠. 유기축산을 하려면 닭을 풀어 키워야 하고 유기인증 사료를 써야 해요. 그런데 유기인증 닭 사료가 워낙 비싸요. 현재 유기농사료는 1Kg에 877원, 일반사료는 345원입니다. 양계는 사료값이 생산원가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거든요. 한때는 유기농 달걀을 생산하던 농가들이 꽤 많았는데요. 지금은 전국에 12 농가 뿐입니다. 전체 농가의 0.1%죠. 농가들이 유기농 달걀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전체 농가의 유기농 사료에 의존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기농 달걀 값은 700원대로 똑같거든요.
가격도 가격이지만 유기농의 원리에 맞는 경축순환농법, 즉 농사지은 부산물로 가축을 기르는 농법을 지향하거든요. 그래서 유기축산을 포기하고 제 농사 부산물과 이웃에서 농약 쓰지 않은 깻묵, 밀기울, 쌀겨, 두부비지를 구해다 직접 사료를 만들게 된 거죠. 무항생제 인증이지만 제 기준으로는 현재 유기축산 인증규정보다 더 원칙에 맞는 유기축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별 생산자와 소비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농민과 소비자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제도와 법이 정비되어야죠. 소비자가 살충제가 없는 달걀을 먹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친환경농산물처럼 친환경농업육성법에 달걀 화학농약 불검출 조항을 넣으면 됩니다. 이러면 밀식사육의 길이 막힙니다. 이 상태에서 현재와 같은 달걀 수요를 유지하려면 산란 닭 방목지와 축사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야 합니다. 육계와 돼지까지 따지면 축사와 방목지 필요한 방목지 면적이 상상을 초월하겠지요.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아르헨티나만큼 넓지 않잖아요.
절충할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합니다. 현재 화학농약을 금지하는 친환경농산물은 천연물질을 사용한 살충제와 살균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EPA 즉 미국환경청에서 규정한 유기농 허용 원료물질이란 것이 있어요. 국제 유기농 기준이기도 합니다. 이 원료들을 사용해서 친환경농자재 업체들이 만들기도 하고 농민들이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 친환경 농약을 개발해 만드는 방법을 농민들에게 공개하는 자닮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이 단체에서 이미 4년 전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닭이를 방제하는 해법을 찾기도 했습니다. 원칙적으로 방목을 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될 수는 없으니 우선 급한 대로 법령과 제도를 정비해서 친환경 축산농가에서도 화학살충제 대신 친환경살충제를 쓰도록 하는 것도 유용한 단기대책입니다. 유기농/무농약 친환경농산물처럼요.”
수입농산물이 범람하고 국산 농축산물을 가격이 제자리이거나 폭락하는 현실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농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흙과 동식물을 최대한 쥐어짠다. 대형농기계와 비닐하우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는 농촌의 일상 풍경이다. 이번 살충제 달걀 문제도 더 깊은 근본으로 들어가면 국가의 농업정책의 문제에 이르게 된다. 반복되는 AI와 구제역, 쌀값과 주요농산물 폭락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제 제가 회원으로 있는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성명서에서도 밝혔듯이 농수축산물의 안전성은 식량주권 또는 농산물주권이라는 큰 틀에서 봐야 합니다. 농산물은 공산품처럼 원하는 대로 찍어낼 수도 없고 외국에서 아무 때나 수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 농민들이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법으로 보장받는 것처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저생산비를 보장받고 안전하고 생명권을 보장하는 농수축산물을 생산하는 제도적 방법을 하루빨리 세워야 합니다.
농업과 농지는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공공재의 성격이 강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가톨릭농민회 광주전남지역 상징인 백남기 농민께서는 늘 “생명과 평화의 농사꾼이 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난해 백남기 농민 장례식 때 상여꾼이었어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저는 늘 그 분이 온몸으로 가르쳐 주신 농사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저처럼 닭의 행복과 달걀의 건강을 일구는 농민이 비록 1%로도 안되지만 제가 이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는 모두 함께 가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전 힘들더라도 늘 활짝 웃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보고 ‘행복한 농사꾼’이래요.”
유문철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7.08.2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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