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미원면 운암리에 9년 전 귀농하여 350평 자급 농사를 짓는 한편 충북 자연학습원에서 환경전문강사 일을 하며 반농반도 삶을 사는 이순기 농민에게는 직업이 하나 더 있다. 시골 마을에서 실권자(?)인 이장을 8년째 맡고 있다. 귀농 1년 차에 마을에서 벌어진 환경오염업체와 투쟁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은 업체 편을 드는 이장을 쫒아내고 갓 귀농한 젊은이 (40대 후반은 시골에선 앳된 청년이다)에게 이장을 맡겼다. 올해 삼선에 성공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이 신임하는 마을 일꾼이다.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운암리 주민 150 여명 대부분은 고령 농민이다. 젊은 이장은 온갖 궂은일들을 전임 이장과 달리 주민 입장에서 해결하면서 주민과 한 가족처럼 살았다.
지난해 말 마을에 큰 분란이 일어났다. 지난해 여름 큰 수해가 난 마을 입구 미원천 수해 복구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마을 진입로 일부를 소유한 토지주가 마을 주민 전체에게 통행료를 요구하며 길을 막아 버렸다. 학교 옆에 있는 이 도로 대부분은 백여 년 전부터 마을길이었고 수십 년 전 마을에 학교가 생길 때 마을 사람들이 희사한 땅이다. 분란을 일으킨 토지주 선대는 희사 대신 교육청에 사용승락서를 주었다. 교육청은 토지주에게 사용료로 연 29만원을 주고 있다. 토지주는 지난해 말 갑자기 주민들에게 교육청처럼 도로를 통행하는 모든 주민이 연 29만원을 내지 않고는 통행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 마을 원주민인 토지 소유주가 갑작스런 몽니를 부리자 마을 사람들은 평소처럼 이장이 원만하게 해결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순기 이장님은 토지 소유주에게 도로를 막지 말고 일단 수해복구 공사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애걸까지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우회하는 비좁은 마을길로 주민들과 공사차량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뿔이 난 마을 주민이 그 길마저 차량이 다닐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마을 분란이 커지다 보니 가족처럼 지내던 이순기 이장님은 토지주 편에 선 일부 주민들에게 외지인 취급까지 받게 되었다.
이순기 이장님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시청 담당 직원들과 경찰도 두 손 놓고 방치하다 보니 분란이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결국 보다 못한 마을 주민이 토지 소유주를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토지 소유주 편을 들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은 검찰에 가서야 해결이 되었다. 담당 검사는 토지 소유주가 도로교통법 일반교통방해죄라고 결론 내렸다. 선대 토지주가 교육청에 제출한 사용승낙서가 있는데다 무엇보다 토지 소유권을 이유로 관행적으로 수십 년 사용된 마을길을 막고 통행료를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검사는 약식기소 벌금형 대신 정식재판에 회부하기로 했다. 벌금형으로 끝날 수도 있었는데 토지주를 재판에 회부한 이유는 토지 소유주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지주가 죄를 면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회유하여 허위 진정서를 제출한 한 점이 담당 검사를 분노하게 했다.
시골에서는 토지 분쟁이 심심찮게 일어나 극단적 갈등 상황에 이를 때가 많다. 마을 주민 사이에서도, 마을에 이사 온 외지인과 마을 주민 사이에서도 토지 분쟁이 벌어진다. 농민들은 토지에 대한 집착이 많다 보니 그러려니 하는데 공유지 개념이 약한 도시에서 귀농귀촌한 주민과 마을 원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도로 분쟁은 종종 어처구니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순기 이장님을 괴롭게 한 이번 사건은 원주민이 마을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행패를 부린 특이한 사례다. 분쟁 과정에서 토지주와 토지주 편에선 일부 주민들에게 외지인 취급을 받고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며 큰 상처를 입었다는 이순기 이장님은 임기 2년이나 남은 이장직을 올해로 그만 두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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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철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8.06.23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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