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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농민들 왕감자 캐는 날; 감자, 감자, 왕감자 정말 정말 좋아요충북 단양 유문철 자닮 연구원 (단양한결농원), 품목: 수도작∙밭작물, 재배면적: 6500평, 경력: 유기재배 12년
하루하루가 지나고 지나니 어김없이 심은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옛말 그대로 감자 심은 데 감자가 난다. 초등학교 5학년 한결이가 유치원부터 8년째 다니고 있는 적성면에 단 하나 뿐인 아주 작은 산골학교인 대가초등학교 초등학생 21명과 병설유치원 어린이 5명, 그리고 농민의 자식이자 스스로도 농민으로 여기는 유승봉 교장 선생님과 교직원들이 모두 감자밭에 모였다.
 
지난 네 해째 학생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농민교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단양군농민회 농민들과 단양군 행복교육지구 마을학교 사업을 하고 있다. 벼, 콩, 사과, 민들레, 감자 농사를 짓는데 감자를 가장 먼저 심고 가장 먼저 거둔다. 적성면 대가리 큰 뜰을 뜻하는 거사평에 3학년 성용이와 1학년 성덕이 아빠인 운영이 형님네 밭에 지난 3월 28일 마을에 있는 대가초등학교 어린이들과 교직원들과 함께 감자를 심었더랬다. 거의 백일 만에 감자를 캐려고 다시 모인 거다.
 
지난해에는 혁신학교인 행복씨앗학교로 선정된 대가초등학교 어린이와 교직원, 대가리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감자 캐기 잔치를 벌여 감자 캐자마자 가마솥에 장작불 때서 감자를 삶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폭염주의보가 나오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으로 인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파업 중이라 잔치를 할 분위기도 아니어서 차분히 감자 캐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감자 두둑 비닐을 걷어내는 유승봉 대가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충북형 혁신한교인 행복씨앗학교 사업을 유치해 농사 수업을 비롯해 열린 학교 교육을 실천하는 유승봉 교장선생님이 감자밭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감자 수확 준비를 하고 있다.
 
유승봉 교장 선생님이 가장 먼저 나오셔서 감자밭 비닐을 걷어내시고는 아이들이 감자밭에 오기를 기다렸다. 흙속에 감자알이 잘 굵었는지 궁금하여 호미를 들고 흙을 슬슬 파보니, "어라, 가뭄에도 감자가 굵직굵직 하네". 교장 선생님이 함박웃음을 웃는다.
 
아침 9시, 감자밭에 모두 모였다.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다 모이고 교직원과 농민교사 두 명 모두 합쳐도 마흔 명이 안된다. 그래도 마흔 명 가까이 밭에서 함께 일하는 건 사람 없는 시골에선 정말 흔치 않은 모습이다. 시골마을에는 대부분 칠팔십 노인들이 사는데 거사평 감자밭에는 다섯 살 어린이부터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육십대까지 젊은 (?) 농민들이 모였으니 기적같은 일이다.
 
신출내기 유치원 1학년 어린이들과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들 몇 분외에는 지난해 감자 농사를 지어보았다. 대부분 '경력 농민'들이다. 농민의 자식으로 스스로 농민이라 자부하는 유승봉 교장 선생의 감자 캐는 요령 설명을 들은 다음 호미 하나씩 들고 감자 두둑을 슬슬 긁어보았다. 이야, 신기하게도 왕감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성질 급한 아이들은 호미를 집어 던지고 손으로 감자를 발굴한다. 차분한 어린이들은 보물찾기 하듯이 조심조심 감자를 찾아낸다.
 
유승봉 교장 선생님은 감자 농사 처음 지어본 후배 교사들에게 감자 캐는 요령을 가르쳐 준다. 모든 농사가 그렇듯이 감자 농사는 기운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감자 캘 때 호미질은 살살 하는 거다. 호미를 마구 놀리면 흙 속 어디에 있는지 모를 감자를 호미로 마구 찍어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이 감자들은 학교로 가져가 학교급식에 쓰기도 하지만 매포읍 장날에 나가 어린이들이 팔아서 기부금 낼 예정이기 때문에 상처 나지 않도록 캐내야 한다.
 
백 평 감자밭에서 마흔 명 남짓 신나게 감자를 캐니 한 시간 만에 다 캐냈다. 감자밭 주인인 운영이 형님 둘째 아들 1학년 성덕이는 자기가 감자를 많이 캤다고 자랑을 하며 왕감자들을 골라 품에 안아올린다. "한결이 아빠, 이거 봐요. 제가 다 캔 거예요. 백 개나 캤어요. 감자가 더 커요? 제 얼굴이 더 커요?" 자기 얼굴 만한 감자 두 개를 들고 자랑을 한다.
 
감자를 모두 모아 보았다. 운영이 형님이 "흠, 대충 봐서도 500kg은 되겄네. 작은 씨감자를 심어 걱정 했는데 나도 놀랄 만큼 감자 농사 잘 되었구만"하며 흡족해 한다. 아들들과 학생들이 학교에서 먹을 것이기도 하고, 장에 나가 팔아 좋은 데 쓸 귀한 감자라서 일은 좀 고되더라도 제초제와 화학비료 쓰지 않고 유기농 농사를 지었고, 감자가 여물 시기인 초여름 가뭄에도 굵은 왕감자들이 많이 나왔다.
 
10시 넘어가니 중천에 떠오른 태양이 굵은 바늘처럼 살갗을 찌른다. 폭염주의보가 예보되어 교장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더위 먹을까봐 안절부절 하신다. 비록 잔치는 못했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신명나는 노래 한가락은 뽑아야지. 마무리로 아이들이 지난해 감자 캘 때 신나게 불러대던 대홍단 감자송을 한결이와 6학년 개구쟁이 형들이 함께 불렀다. "감자, 감자, 왕감자, 정말 정말 조아요오옹~".
 
이 노래는 북한 동요다. 한결이와 어린이들이 유튜브에서 배웠다 한다. 참 좋은 노래다. 마침 감자 캐기 전날, 판문점을 방문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나와 군사분계선을 서로 넘나들며 평화를 약속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사람이 오가고, 노래가 오가고, 농민과 농산물이 오가다 보면 군사분계선은 희미해지다 결국 사라질 것이다. 이 아이들은 전쟁 없는 나라에서,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에서 살 날이 곧 오겠지.
 
밝고 맑은 시골 어린이 농민들이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들이 있는지 알 턱이 없겠지만 바로 지금 여기서 감자를 심고 거두고, 벼를 심고 거두는 그 행위가 바로 평화이자 가장 고귀한 인간의 노동임을 알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바로 그런 깨달음을 위해 농민 교사들이 농사 수업을 하고 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닌, 생명을 품고 키우는 흙에서 공동 노동을 통해 스스로 몸에 기억을 담아 평생의 자산으로 삼는 것은 요즘 같이 농사와 농민, 농촌을 천시하는 세상에서 시골 아이들에게 더없이 중요한 교육이다.
 
 

유문철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9.07.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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