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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보다 강한 월은마을 사람들손톱이 닳아 없어지도록 풀 뽑아요

www.jadam.kr 2005-09-21 [ 오현주 ]
월은마을 주민들이 참취나물 밭에서 일하다 잠시 쉬고 있다.

전남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월은마을은 주암호를 끼고 조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을 자랑하는 이 마을은 수백년 전

조상들이 해온 그대로 손으로 풀을 뽑으며 도라지, 더덕, 참취나물을

키우고 있다. 그래서인가 월은마을의 산채나물들은 전국에서도

그 맛과 향이 으뜸이라고 한다.

월은마을 사람들에게서 듣는 무공해 친환경농사 얘기.
지난 9월 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월은마을 이장 이경재 씨(43세)를

전남 순천 송광면사무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월은마을 친환경영농회 홈페이지 제작 건 때문이었다.

이씨는 영농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기자는 경남 하동에서 전남 순천 가는 길이 초행이라 이씨에게 중간 중간

전화를 넣어 가는 길을 확인했다.

하동 구례 간 19번 국도를 타고가다 구례읍 들어가기 직전에서 좌회전해

순천 가는 17번 국도로 갈아탔다. 평일에 이들 국도들은 한산하다.

지리산 섬진강 등 주변 풍광이 뛰어나 전국에서 손꼽히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라고 한다.

송치터널을 빠져나와 선암사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해 들어가자

순천운전학원이 나왔다. 차를 세우고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씨는 “호남고속도로 타고가다 송광사 표지판 보이면 그리로 나오면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기자는 고속도로를 버리고 일부러 국도를 택했다.

차들의 살인적인 질주 때문에 고속도로는 들어가기가 늘 께름칙하다.

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22번 국도는 부분적으로 새 포장을 해 달리는

기분이 마치 새신을 신은 듯 산뜻했다.

대부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지 국도는 버려진 듯 퇴색했다.

길 양쪽으로 산과 계곡, 물, 잘 정리된 논들이 보였다.

벼들은 아직 퍼런 상태였다. 좁고 가파른 길을 한참을 오르락내리락하던 중

오른편으로 호수의 끝자락이 나타났다. 주암호였다.

철새 도래지로 가끔 TV에 비쳐지던 호수...

실제 보니 청풍호보다 훨씬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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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은마을은 주암호 오염을 우려해 친환경농사를 짓는다.

차를 세우고 느긋하게 주암호 풍경을 즐기려고 들어간 자그마한 휴게소에서

뜻밖의 장면을 만났다. 주차장 한쪽 소나무 아래 표고버섯 종자를 심은

참나무들이 멋스럽게 서있었다.

휴게소를 나와 천천히 달리다가 왼편으로 송광사 방향의 27번 국도로 갈아탔다.

10여분 쯤 달리자 흙먼지가 풀풀 이는 복잡한 거리가 나타났다. 송광면이었다.

면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던 이씨의 차로 갈아타고

월은마을로 향했다. 2분 정도 가다가 엔세대슈퍼 앞에서 좌회전 해 비탈길을

오르자 바로 마을이었다. 전남 순천시 송광면 장안리 월은마을.

커다란 감나무 아래서 아주머니 너댓 명이 마른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이경재 씨가 홈페이지에 올릴 사진도 찍고 친환경 농사법을 취재하러 왔다고

기자를 소개하자 한 아주머니가 대뜸 말했다.

“친환경 때문에 늙은이 죽겠어. 풀 뽑느라고 손가락이 오그라질라고 해.”

월은 주민들은 손톱을 자르지 않는다고 한다. 손톱을 짧게 자르면 아파서

밭에서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한 아주머니는 “밭을 일굴 때 손이 산또구(호미) 역할을 해 손가락이

데상그레지고, 하도 쪼그리고 앉아 무릎 관절이 아프고 그러지요.”

데상그레진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 말도 모르냐며 답답해 했다.

주민들의 손을 보니 남녀 불문하고 하나 같이 마디가 굵고 거칠며

굽어 있었다. 먹물이 배인 듯 손톱 밑과 주름 사이에 까만 흙때가 끼어있었다.

손톱이 땅에 닳고 닳아 무디고 깨져 있었다.

수십 년 땅과 씨름한 이력이 손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이 손으로 자식을 낳아 키우고 이 손으로 자식을 대학 보내고,

남편 삼시세끼 해먹이고, 밭에 나가 하루 왼종일 땅을 파고 풀을 뽑고...

그렇게 해온 손이었다.

순간 숙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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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씨앗을 보여주고 있다. 풀 뽑느라고 손톱이 닳았다.

친환경 말 나오기 오래 전부터 친환경 농사지었다
월은마을. 참취나물 밤 도라지 더덕 둥글래 등 산채로 유명한 마을이다.

해발 200m의 조계산 자락에서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먹고 자라

여느 지역의 나물하고 맛이 다르다고 한다.

취나물은 향이 강하고, 더덕과 도라지는 살집이 튼실하다는 것이다.

산에서 나오는 작물로 말하자면 전국에서 이 마을을 따라갈 곳이 드물다고.

한 주민이 “우리 마을이 테레비에도 나왔어. 이금희아나운서도 왔어요.

방송국 사람들이 와서 촬영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랐지요”라고 말했다.

오염되지 않은 오지마을을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입맛에 딱 맞는

곳일지도 모른다.

월은마을은 고려 말 무신난을 피해 들어온 최씨들이 설촌했다고 전해진다.

지형이 오물조물하고 깊숙해 난을 피해 숨어 지낼 만하다.

오염되지 않은 주암호가 펼쳐져 있고 가까이에 낙안읍성이 있다.

삼보사찰 중 하나인 송광사, 태고종 본산 선암사가 있으며,

조계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광주와 벌교 그리고 억새와 갈대, 갯벌로

아름다운 순천만이 지근거리에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산세가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이 드는

지역을 만난다. 그런 곳마다 어김없이 고인돌이 누워있는데

순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천에는 고인돌이 많다.

주암댐으로 수몰되는 고인돌들을 모아다 한 곳에 전시해놓고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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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은마을 전경. 조계산이 바라보인다.

월은이란 마을 이름은 달이 숨어있다는 뜻이다.

마을 전체 27가구이고 주민은 34명이다.

원래는 60명이 넘었으나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마을 출신으로 유명인이 있느냐고 묻자 주민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별로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국회의원이 나왔냐고 하자 그런 거 없다고 대답한다.

기자가 다시 “좋은 대학은 어디를 들어갔나요?”하고 웃으며 물었더니

서울의 대학 이름을 하나 들먹였다.

마을을 가늠하려고 최고 대학이 어디냐, 국회의원이 나왔느냐고 묻는

기자도 한심했다. 그런 우문에 저항감 느끼지 않고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이 순수하기만 했다.

월은마을은 남들이 유기농이니 친환경이 하는 말을 꺼내기 오래 전부터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그래서 이들에게 친환경이란 말은 새삼스럽게까지

들릴 지도 모른다.

월은마을의 경작지는 6만여 평. 산등성이, 계곡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도라지밭이 3만평, 참취나물이 2만4천 평, 더덕이 6천 평 규모이다.

도라지 밭에는 보라색꽃들이 점점이 피어있었다.

이경재 씨(43세)가 도라지밭의 풀들을 가리키며

“3월에 파종하면 한 달 후 싹이 나와요.

그렇지만 이미 풀들이 더 자라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집에 있을 수가 없어요. 하루종일 밭에 나가 풀을 뽑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월은사람들의 풀과의 전쟁은 9월까지 계속된다.

그 싸움에서 지면 살아남을 수가 없단다.

이경재 씨는 마을에서 친환경농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조상들이 막연히 해오던 농사 방법을 과학적인 친환경 농법으로 발전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우리 마을은 지리적으로 관행보다는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제초제를 전연 쓰지 않았습니다.

인증제도 때문에 기존의 농사법을 체계화하는 것에 불과해요.

밤은 인증을 받았고 도라지 더덕은 인증 신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요즘 검사 기관에 인증 신청이 쇄도해 늦어진다고 해요.

순천은 비가 많이 옵니다.

우리 마을은 사질토라서 물이 잘 빠지고 땅속에 토착미생물이 풍부합니다.”

우리 마을은 빚 없고, 다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삽니다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성격 그대로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이씨는

월은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녔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가

큰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됐다.

이씨의 귀향 이유 중 하나가 어머니의 병구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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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귀향한 이경재 씨 부부. 이씨는 이장이자 영농회 회장이다.

막내인 이씨는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의무감은 없었지만 다른 형제들을 대신해

7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셨다.

이씨도 그렇지만 불평 없이 남편의 뜻을 좇아 시골에 들어와 시어머니

병수발을 든 이씨 부인의 성품이 더 훌륭해 보였다.

이씨 어머니는 수 년 전 고향에서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지금 사는 집이 바로 제가 태어난 집입니다.

자식들이 도시에 나가 있는 동안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살고 계셨어요.

당시 집 그대로 흙집입니다.”

이씨는 순천친환경농업단체 컴엔씨 회원이고, 송광면 친환경협의회 총무로

있으며, 순천시 친환경농업대학 과정을 밟고 있다.

도라지밭을 경작하는 이씨가 친환경 도라지 재배법을 짤막하게 들려주었다.

“1년 동안 소나 염소 똥으로 두엄을 만들어 두었다가 파종 한 달 전

비료와 함께 넣고 밭을 갈아서 땅을 만들어놓습니다.

도라지는 수분이 증발하지 않도록 차광막을 쳐줍니다.

싹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풀도 자랍니다. 9월까지 풀을 뽑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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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밭. 2년 동안 꼬박 풀을 뽑아야 수확할 수 있다.

도라지는 12월 말이 되면 잎이 모두 말라죽는다. 줄기는 걷어내고 퇴비를 주고

복토를 해준다. 이듬해에 다시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한다.

도라지는 2년 만에 캐낸다. 항암에 좋고 천식 기관지 계통에 약재로 쓰인다.

이씨에 따르면 시중의 도라지는 거의 중국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도라지는 3년 째 되면 썪어요.

4년, 5년 된 도라지는 밭을 옮겨서 키운 겁니다.”

그에 비해 더덕은 3년 만에 수확한다. 더덕은 줄기로 뻗어나간다.

30cm 자라면 줄기가 위로 뻗어 올라간다.

그러면 지줏대를 올려주고 그물막을 쳐준다. 더덕은 10월에 수확한다.

“우리는 특별한 기술이 없어요. 인내 뿐입니다. 산나물은 병충해가 거의 없어요.

오직 잡초와의 싸움이죠. 벼농사도 하지만 농약을 안씁니다.”

이 마을이 농약을 사용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상수원 보호 차원에서다.

주암호가 오염되면 바로 먹는 물이 문제가 된다.

참취나물과 함께 둥글래 차도 재배하는 강오순 씨(53세)는 월은마을에

시집와서 나물 하나로 자식 다키우고 대학 보내고 시집도 보냈다고 한다.

“여기는 취나물이 보통 취나물이 아니요, 곰취하고 다르지.

참취나물이요. 향이 좋아요. 연하고 부드럽고 변비에도 좋고...

다이어트도 되고...”

강씨에게 다이어트한 몸매는 아닌 것 같다며 웃자, 강씨는

“취나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제”하고 받아 넘겼다.

“취나물 박사” 강씨가 참취나물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참취나물은 매년 2월20일부터 딴다. 4월 초까지 나오는 것이 가장 좋다.

맛있게 먹는 법은 살짝 데쳐서 소금하고 간장 참기름에 무쳐서 먹는 것이다.

쌈채로도 먹는다. 5월과 6월 사이에 가장 많이 나오고 7월이면 끝물이다.

4월부터 하루가 다르게 값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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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타고 마을회관에 나타난 할머니.

하루에 박스 당 1,000원씩 떨어진다고 한다.

월은마을은 이처럼 각종 산나물을 재배해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다들 여유있게 산다고. 이 마을 주민 홍성옥씨(65세)는

“뭔가 사업한다고 벌인 젊은 사람들 빼고는 우리 마을엔 빚이 없어요.

다들 잘 살아요”라며 웃었다.

공기 좋고, 물 좋고, 영양 만점인 산나물만 먹으니 주민들은

당연히 오래 살 것이다.

월은마을 이장 이경재 씨는 “마을 사람들이 특별히 아프거나 하지 않아요.

대부분이 80세 90세 이상 사십니다”고 말했다.

월은마을의 친환경 농사는, 설사 인증제가 흐지부지 되더라도,

주암호가 있는 한, 조계산이 무너지지 않는 한,

월은사람들의 두 손이 멀쩡한 이상 변하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

오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09.2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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