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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여, 닭을 키워라”의류업체 CEO 출신 양계 농장주의 이 한마디

 

www.jadam.kr 2005-11-19 [ 오현주 ]
이레농장의 농장주 안건정 씨 부부. 부부가 닭 7,500수를 키우고 있다.

 

서울에서 의류업체 CEO로 잘 나가던 안건정 씨. IMF 이후 사업을 정리하고 빈손으로 충북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 내려와 빚을 얻어 양계를 시작했다. 자연농업 원칙을 충실히 지키며 4년여 닭을 키운 끝에 이제는 생활의 안정도 되찾고, 마음의 여유도 가지게 됐다. 안씨 부부가 들려주는 양계 사업, 시골 생활 슬기롭게 극복하는 법.
지난 11월 18일 오후 늦은 시각, 기자가 안건정 씨(54)의 농장을 찾았을 때 안씨는 하루의 작업을 막 끝낸 참이었다. 작업복에 지푸라기가 붙어 있고, 땀에 젖은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안씨는 장화와 모자를 벗으며 기자를 집 거실로 안내했다. 안씨의 집은 계사 바로 옆에 있었다. 겉에서 보기와 다르게 안은 널찍했다. 34평이라지만 도시의 아파트로 따지면 45평 규모는 될 것이다.

 

따뜻했다. 거실과 주방 곳곳이 깨끗했다. 이 집 주부의 부지런하고 깔끔한 성격이 느껴졌다. 농장 일을 하며 집안까지 청소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얼굴을 씻고 나온 안씨는 소파에 앉으며 “방금 일을 끝냈습니다. 오늘 내보낼 달걀을 막 실어 보낸 참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 하루 종일 땀 흘린 얼굴이 아니었다. 생기 있고 밝았다.

 

 

www.jadam.kr 2005-11-19 [ 오현주 ]
이레농장 전경. 모두 58칸이다. 한 칸에 120마리를 넣었다.

 

안씨에게 해가 지기 전 사진부터 찍고 얘기하자고 하자, 안씨는 “농부라고 아무렇게나 작업복 차림으로 사진 찍고 그러는 게 맘에 안 들더라고요. 깨끗하게 입고 찍어야지요”라고 대답했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안씨의 부인 이창기 씨(53세)도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와 안씨 맞은 편에 앉았다.

 

안씨 부부는 2001년 이곳 충북 음성군 생극면으로 내려왔다. 안씨의 “이레농장”은 야트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밭 한쪽에 있었다. 계사와 밭이 높은 둑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둑이 겨울에는 바람막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 같았다.

 

안씨의 농장은 1,600평. 계사는 총 58칸으로 평수로 따지면 약 510평이다. 한 칸의 크기는 가로 3.6m 세로 8.1m이다. 거친 환경에 적응을 잘한다는 하이라인브라운종 7,500수를 키우고 있다. 서울에서 살다 쉰 가까운 나이에 시골에 들어와 양계를 하게 된 계기부터 들었다.

 

“우리 부부는 서울토박이들이에요. 농사의 농자도 몰랐지요. 처조카가 이곳 음성에 교회 목사로 있어 오게 됐어요. 무작정 내려온 거지요.”

 

안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나왔다. 대기업과 외국인회사를 다니며 중산층 생활을 누렸다. 97년 경 의류사업을 시작했으나 IMF 직격탄을 맞았다. 3년여를 끌다가 결국 2000년 회사를 정리하고 무일푼 신세가 돼 시골로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안씨는 이곳에서 1년 여간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지냈다. 어느날 처조카의 소개로 괴산의 자연농업 연찬을 듣게 됐다. 안씨는 기본 연찬 122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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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상자. 안씨는 계사 안에 들어가 촬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질병 감염 우려 때문이다.

 

“양계를 하게 된 건 첫째, 동물이 작으니까 수월할 것이다, 두 번째 자금회전이 빠르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에서 선택했습니다. 육계가 초기 시설비는 많이 들지만 유통만 확보되면 승부가 빠르지 않습니까.”

 

그러나 닭을 우습게 보았던 것이다. 작아서 수월하기는커녕 소보다 더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웃었다. 안씨는 인근에서 자연농업으로 양계를 크게 하는 김모씨를 찾아가 양계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처음 김씨는 만나주는 것조차 꺼려했다. 여러 차례 부탁을 하자 나중에 비로소 김씨는 “땅을 사서 새로 계사를 지으면 망한다, 양계장을 싸게 인수해 시작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때 마침 마을에 버려진 농장이 하나 있었다. 농장주가 경영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포기하고 떠난 농장이었다. 안씨는 충주법원을 찾아가 관련 서류를 뒤져 농장의 권리 관계를 따져보았다. 몇 차례의 유찰 끝에 진천상호신용금고로 낙찰된 사실을 발견하고 관계자를 만났다. 농장을 버려두는 것 보다는 자신에게 넘겨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뜻을 비추었다. 상대도 좋다고 했다. 안씨는 신용금고에 농장을 담보로 잡히고, 명의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1억4,500만 원의 빚으로 어엿한 농장 소유주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론 현금 한 푼 들이지 않고 농장을 얻은 것이기도 하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엉망이었어요. 이불과 살림 도구가 흩어져 있고, 부탄가스통이 뒹굴고... 집사람하고 함께 쓰레기를 푸대 자루로 몇 번을 날랐는지 몰라요.”

 

석고보드를 안팎에 대고 도배를 했다. 도배값만 3백여 만 원 들었다. 덕분에 보온은 잘 됐다. 물은 모터를 돌리자 금방 쏟아져 나왔다. 전주인이 공병대 출신이라 농장을 튼튼하게 지어놓았다고 한다. 기둥과 지붕이 말짱했다. 집과 농장을 고치고, 사료통을 사들이고, 계사에 병아리를 넣는데 새로 1억여 원이란 돈이 또 들었다. 그 돈 역시 빚을 얻었다. 그래서 지금도 빚을 갚아 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저는 바닥 기초공사하고, 계사 창고 짓고, 물 전기 끌어들이고, 집 짓는 거 그런 일들을 안 해도 됐어요. 그런 점에서는 거저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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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농장의 닭들은 건강했다. 황토와 팽이버섯 등 자가 발효 사료를 먹고 자란다.

 

안씨는 병아리 3천수로 시작했다. 마리 당 1천 원을 주었다. 병아리들로 가득 찬 계사를 보자 그동안의 고생스런 순간들이 한순간 설레임으로 바뀌었다. 2001년 4월 15일의 일이다. 안씨의 실수로 밟혀 죽은 것을 빼고는 모두 잘 자라서 닭이 되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4개월 후 첫산란을 했다. 크기는 작았다. 그러나 달걀을 본 순간 안씨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온몸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다.

 

“과연 달걀이 나올까 긴가 민가 했거든요."

 

안씨는 철저히 자연농업으로 배운대로 했다. 한 칸에 130마리를 넣었다. 평당 14마리인 셈이다. 남들은 기계로 사료를 주지만 안씨는 일일이 손으로 포대에서 꺼내 넣어준다. 앞으로도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다할 거라고 한다. 닭도 그런 사람의 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안씨는 토착미생물 활용, 계사 바닥 관리, 사료의 차별화, 닭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 일 등으로 남보다 맛 좋은 달걀을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사료를 보자. 안씨는 항생제를 넣지 않고 만든 특별 사료를 사료업체로부터 구입해 자가 발효 사료를 섞어 넣어 준다. 바닥은 왕겨 볏짚을 썰어 7cm 정도 깔아 놓고 토착미생물 천혜녹즙 바닷물 미네랄A를 정기적으로 뿌려준다. 자연농업은 바닥을 그대로 두라고 하지만 안씨는 질병을 우려해 1년에 한 번은 바닥 청소를 한다. 그게 힘들다고 한다.

 

“가장 효과를 보는 건 황토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황토를 사료에 섞어 먹이면 닭들이 건강해져요. (자연농업) 조한규회장님이 황토를 구할 수 있는 대로 구해놓으라고 해서 덤프트럭으로 100짝이나 구해서 쌓아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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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겨를 바닥에 깔아주었다.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안씨는 체로 거른 황토를 깔고 그 위에 천혜녹즙 바닷물 미네랄A 등을 뿌린 다음 다시 황토를 까는 식으로 해서 20cm 높이로 만들어 발효시켜 사료에 섞어 먹인다. 인근 지역에서 쉽게 구하는 팽이버섯 폐상자재를 넣기도 한다.

 

“그리고 물이 중요합니다. 음수는 한방영양제, 달걀껍질을 현미식초에 녹여만든 천연칼슘과 바닷물을 희석해 줍니다. 바닷물도 효과가 엄청나요. 천연광물질이 풍부해서지요. 아들에게 회 먹으러 동해바다로 가자고 합니다. 플래스틱 통에 담아 한 차 가득 떠오면 3개월을 먹입니다.”

 

양계 농사 가운데 가장 힘든 건 무거운 걸 드는 일이라고 안씨 부부는 입을 모은다. 안씨는 특히 손으로 모든 것을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고. 자그마한 체구의 부인 이씨는 산란장에서 달걀을 꺼내 세척한 다음 선별 과정을 거쳐 판에다 넣는 작업을 한다. 달걀 30개가 담긴 한판을 여러 개 겹쳐 들면 그 무게도 상당하다.

 

안씨는 하루 12박스(박스 당 300알)의 달걀을 얻는다. 연수익이 약 1억 원 선이다. 물론 순수익이다. 생산비는 30% 이하. 전량 풀무원으로 납품한다. 아마 안씨가 서울에서 속은 속대로 썩으면서 계속 사업을 했더라도 이 정도의 수익을 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첫산란의 기쁨도 잊지 못하지만 농부로서의 보람은 역시 우리 달걀을 드셔본 분들로부터 맛 있다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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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를 체로 걸러내 입자가 고른 것을 사료에 섞는다. 안씨는 황토의 효능이 놀랍다고 말한다.

 

안씨에게 남은 숙제는 산란율을 일정하게 하고, 카니발리즘으로 인한 닭들의 자연사를 줄이는 것이다. 대개 산란율은 8, 9월에 피크를 이루었다가 점차 떨어진다. 6개월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그때마다 매출의 변화가 생긴다. 그 차이를 가능한 줄이려는 것이다. 양계에서 카니발리즘이란 닭들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몰라도 상대의 급소를 쪼아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일컫는다.

 

“닭들의 세계도 인간과 똑같아요. 약한 놈을 도태시켜요. 일 못하는 놈 즉, 알을 못 낳는 놈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죽이는 거 같아요. 그렇게 자연도태 되는 숫자가 약 3% 됩니다. 제가 뭘 잘해서 그 숫자가 줄어드는지는 모르지만 2%, 1%대로 더 줄이려고 합니다.”

 

안씨의 농장은 겨울에 기온이 상당히 내려간다. 충주보다 4~5도 낮다고. 그렇다고 특별한 난방 장치는 하지 않는다. 지금 그대로 둔다. 그게 바로 자연농업이라는 것이다.

 

안씨 부부는 양계 사업은 잘 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시골 생활엔 적응하기가 힘든가 보다. 시골의 문화적 공백 상태가 가져다 주는 소외감이나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 서울을 다녀온다.

 

“농촌은 역시 농촌입니다. 음악회 같은 문화 공간을 찾아 서울을 갑니다. 밤에는 여기서 서울까지 2시간도 안 걸려요. 하루 저녁에 밀레오레까지 갔다오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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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이창기 씨는 상품화 못되는 달걀들을 앞으로는 불우이웃에 나눠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자녀들도 적응을 못했다. 딸(중 1)은 그 정도가 덜했지만 아들(고 2)은 견디지를 못했다. 서울에서 자란 아들은 초저녁부터 사방이 깜깜하고, 불빛이라곤 건강원 네온사인 하나뿐인 시골 마을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들은 가출해 서울 친구집에 가 있기도 했다. 그러면 안씨가 올라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시골집으로 내려왔다.

 

부인 이창기 씨도 이 부분에선 예외가 아니었다. 이씨는 서울의 금융기관에서 20여년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집 수리 과정에서 너무 힘이 들고, 시골 학교에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서울로 도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말다툼을 자주 했다.

 

그러나 이씨도 원래는 시골을 좋아했다고 한다. 시골에서 그림도 그리고, 하늘의 구름도 보는 그런 생활을 꿈꾸었다. 다만 현실이 그런 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게 여자의 심리인데 시골에선 그런 것들을 할 수가 없어요.”

 

특히 여자들은 더욱 힘들다. 낮에는 남자 못지않게 일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일의 연장이다. 남자들은 쉴 수 있는 반면 여자들은 밥을 해야 하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 뒷치닥꺼리도 해야 한다. 삼중고에 녹아난다.

 

그러나 이씨는 닭들이 낳은 둥글고 앙증맞은 알들을 보는 순간 일상의 피로감을 잊는다. 화가 아무리 나도 닭들을 보는 순간 잊는다. 부부싸움을 하고나서는 닭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화를 가슴에 두고 들어가면 닭들도 감정을 느끼고 달걀을 깨기까지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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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에서 사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음수이다. 천연광물질이 풍부한 바닷물을 희석해 준다.

 

이씨는 양계를 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면서 비교적 소상히 심경을 밝혔다.

 

“서울에서 살았다면 나이가 들수록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자기 위치를 비관하기도 하고 그러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아요. 닭에게서 인생을 배웁니다. 저는 산란장에서 알을 꺼낼 때 꼭 노크를 하고 알을 가져옵니다. 어미의 심정으로 대합니다. 병아리가 중닭이 되고 어른이 되었다가 깃털이 빠지고 쓸모없는 닭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내 삶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게 돼요. 남을 이해하고 관대해지려고 노력하게 되고, 되도록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맘을 먹어요. 뒤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3년, 4년... 시간이 흐를수록 양계가 무언지 알 것 같다는 안씨는 젊은 사람들에게 양계를 권하고 싶다고 한다. 잘 하면 돈도 벌고, 보람도 느끼는 일이라고. 아들이 원한다면 농장을 다른 시스템으로 만들어 물려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안씨는 닭을 15,000~20,000수까지 늘리고 싶어 한다. 그것도 자연농업으로 기계화하지 않고서.

 

“농업은 나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면 세상이 편해요. 사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아무리 내가 잘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잘못해 부도를 내면 내가 당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농업은 좋습니다.”

 

서울토박이 안건정 씨 부부는 시골에 내려간 이후 정신과 육체가 모두 건강한, 제2의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농장명: 이레농장

 

농장주: 안건정

 

재배면적: 7500수

 

재배작목: 양계

 

연락처: 011-306-2023

 

오현주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5.11.1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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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과 답글 1
  • 미소애플 2005-11-21 21:49:47

    순종의결과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는 성경말씀이 새삽스럽게 떠 오릅니다
    그분도 조회장 말씀을 순종한 결과라 보겠습니다
    대단 하십니다 번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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