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마다(島田)시의 산간지역에서 녹차를 재배하는 사이토 야스오(49)씨. 그는 이전까지는 쌀겨, 소의 배설물, 생선찌꺼기 등에 중국산 소금을 섞은 ‘혼합비료’를 사용했지만 올해는 새로운 비료를 사용해 색다른 녹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가 사용할 비료는 ‘해양 심층수’를 주요 성분으로 한다. 시즈오카현이 시험 급수하는 스루가만의 687m(수온 4∼5도)와 397m(수온 9∼10도) 지점에서 끌어올린 것이다. 이 바닷물은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다. 가까운 해상의 표층수와 비교하면 박테리아가 10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고, 인이나 질산 등은 훨씬 많아 퇴비의 발효를 촉진한다. 이처럼 해양 심층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생리활성물질 구실을 하며, 심해에 서식하는 생물종은 귀중한 유전자원으로 대접받기에 손색이 없다.
극한의 상황 견딘 능력을 치료에 활용
해양은 생명을 최초로 탄생시킨 모태로 생물 진화의 보금자리 구실을 하고 있다. 오대양을 이루는 바다의 평균 수심은 4천m에 염분 35%, 연평균 온도 5도 안팎이다. 이런 환경 특성으로 인해 해양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어떤 극한의 조건에서도 특유의 생명력을 발휘한다. 미생물은 빙하 밑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발견된다. 실제로 많은 빙하 아래에서 지열과 마찰로 인해 형성된 얇은 수층에 박테리아들이 서식하고 있다. 미생물들은 심해저의 열수구나 엄청난 압력이 짓누르는 심해저 등을 가리지 않고 생명활동을 이어간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대부분 태양에너지에 의지하고 일차 생산자인 광합성 생물에서 영양분을 얻는다. 이에 비해 해저에서는 ‘화학무기 자가 영양세균’이 광합성 식물을 대신한다. 무기물이 산화하면서 생체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내뿜고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스스로 합성하면서 생명활동을 주도하는 것이다.
지구 표면적의 70%를 덮고 있는 대양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미생물이 생활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많은 해양생물들은 바다 속에 그들의 몸 속에 있는 특이한 물질을 쏟아내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살균력이 있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치료하는 효과가 탁월한 물질이 수두룩하다. 만일 해양 미생물이 의학적으로 거듭난다면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을 극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해양연구원 해양미생물다양성 국가지정연구실 이홍금 연구원은 “해양 미생물을 이용한 생체 고분자 물질은 독성이 낮고 생분해성이 뛰어나 의학이나 산업적 효용성이 뛰어나다”고 가능성을 제시하며 “해양생물을 단순한 식량자원이나 비료, 사료 등의 소재로 이용하는 데 머물지 말고 생물공학을 접목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육지에 사는 미생물에서 발견한 생리활성물질은 1만6천여종. 이 가운데 120여종이 치료물질로 개발됐다. 이제 육지에 서식하는 미생물에서 찾을 만한 치료물질은 거의 바닥이 난 상태이다. 그래서 이제껏 어류 공급원으로만 여겼던 바다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해양의 생체고분자는 인간생활에도 이용되고 있다. 해조류에서 나오는 한천(agar), 알긴산(alginase), 카라제난(carageenan)이나 갑각류에서 나오는 키틴, 키토산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남조류의 생체고분자는 미백효과가 뛰어난 무독성의 화장품 첨가제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물질은 경제적 효용성도 탁월하다. 알긴산의 경우 해마다 상업적으로 3만여t이 생산된다. 염료고정제, 제제첨가제, 응집제 등 일반 상용화 제품의 가격은 1kg당 20달러 안팎. 의료용 물질로 거듭나 면역촉진제나 겔형성제 등으로 쓰이는 고순도 알긴산은 1kg당 4만달러에 이른다.
해양 생물자원은 의학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미국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과학자들은 해양에서 군락을 이루는 태충류가 생성하는 물질로 세포분열을 방해하는 ‘브라이아스태틴’(Bryostatin)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미국 국립암센터(NIC)가 임상실험을 벌이고 있는 이 물질은 암세포의 분열을 방지하는 항암제로 개발될 전망이다. 카라비안 해협의 산호초에 살고 있는 포도알 크기의 작은 멍게에서 나오는 물질은 백혈병 세포는 죽이지만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해 미생물을 제거하는 데 쓰이는 이 물질은 기존 항암제보다 효능이 수백배나 강력하다. 또한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멍게의 정자에는 난자의 화학적인 단백질이 있어 불임 남성의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양에 서식하는 해면동물에서 찾아낸 새로운 항진균제는 에이즈 환자와 암 환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진균 감염증을 독성 부작용 없이 치료하기도 한다. 먹이를 마비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뿔 달팽이의 독은 간질병 환자의 치료제로 쓰일 전망이다.
이렇듯 의학적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해양 미생물들은 공학적으로도 유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굴껍질에서 발견되는 초강력 흡수물질은 생명공학 제품으로 개발되고 있다. 만일 이 물질로 중합체를 만들면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거나 물을 정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유용성을 인정받는 해양생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지만 아직까지는 가능성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게 대부분인 탓이다. 심해 생명체에 접근하는 수중로봇도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정도여서 ‘하늘의 도움’을 기대해야 할 형편이다. 우리나라처럼 조류가 세고 시계가 불량한 지역에서는 고성능 중작업용 수중로봇이 필수적이다. 설령 온갖 난관을 뚫고 유용물질을 찾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해양 합성물이 너무 복잡해서 대량으로 배양 생산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해양생물에서 유래하는 신규 생리활성물질을 개발하는 것은 육지에서보다 훨씬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가능성 무궁무진… 대량 배양 어려워
현재 임상에 적용하는 식물성 항암제 약물들은 성공률이 낮고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해양 미생물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적조 유발 미생물을 비롯해 단세포 미생물인 미조류가 생산하는 생리활성물질은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물질은 의학은 물론 환경 폐기물 제거, 에너지 생산, 산업공정, 농업 등의 분야에서 산업적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국가적 생물자원으로 보호받기도 한다. 만일 독자적 생물소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오는 2005년에 발효되는 ‘유전자원 접근과 이익배분 협약’(ABS: Access and Benefit Sharing)에 따라 비싼 기술료와 자원이용 부담료라는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연근해는 물론 남극과 열대 태평양에 서식하는 해면, 강장, 원색동물 등의 군체동물과 해양 방선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해양 미생물 중에서 실험실 배양이 가능한 종은 1% 미만, 나머지 99%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라도 현실화한다면 ‘해양대국’은 꿈이 아닐 것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운영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3.07.1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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