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포도밭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류기봉(38세) 님은 『장현리 포도밭』이라는 시집을 펴낸 시인이다. 그의 과수원에서는 철마다 시와 자연이 함께 하는 다채로운 문화축제가 열린다. 시인은 단지 일개미처럼 일만 하는 농군이길 원치 않는다.
도회지 사람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포도밭을 가꾸고, 문화생활에 소외되어 있는 지역주민들도 기꺼이 그 자리로 불러들인다. 시인의 심성은 자연의 포근한 숨결을 그대로 닮아 있다.
포도밭에서 다채로운 문화행사 열어
저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늘 자연을 접하며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포도농사를 택했답니다. 부모님은 이곳에서 30년 이상 포도농사를 지어오신 분이라, 처음엔 부모님의 일손을 거두는 정도였지요. 이곳 장현리는 한때 제법 큰 포도단지여서 포도농가가 수십 가구 몰려 있었지요.
저는 포도밭을 갖가지 문화축제의 마당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단지 농사만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문화행사를 엶으로써 농촌과 도시사람을 자연스레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요. 유럽 국가들은 포도철이 되면 마을 단위로 시화전이나 음악회, 연극 등의 공연을 열어 축제를 즐기고 있는데,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의 농촌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축제에는 평소 문화를 접할 수 없는 마을 주민들도 함께 참여해 즐기는 유쾌한 축제의 장이 됩니다. 일개미처럼 생산밖에 모르는 한국의 포도밭 주인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활력을 보태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 해 6월에는 포도밭에서 시낭송회를 열었습니다. 원로시인 김춘수 선생님을 비롯하여 박남철, 이문재 등 유명시인들과 문학에 관심 있는 도시인들이 100여 명 참석했지요. 과수원 곳곳에는 시를 곁들인 걸개그림도 걸어 시화전도 열었답니다. 굳이 6월을 택했던 것은 사람들한테 포도꽃 구경을 한번 시켜주겠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포도꽃향기 축제’라고 붙였지요.
여러분은 포도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대개는 없으실 겁니다. 포도는 잎과 줄기가 다 나오고 가지가 제 자리를 잡은 후에야 꽃이 핍니다. 그래서 그 꽃은 잎과 줄기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고, 복숭아나 배꽃처럼 매혹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흰 줄기의 연노란색 꽃은 아주 단아해 마치 수줍은 아가씨 같답니다. 꽃이 진 자리에는 틀림없이 포도알이 눈물처럼 박힌답니다. 향기도 아주 기막히지요. 이처럼 꽃 내음 맡으며 시를 음미하는 기분을 세상 어디에다 비할까요. 이런 문화 행사는 1998년부터 매년 해오고 있습니다.
이 행사 말고 도시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주말농장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한 그루씩 분양해 각자의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주지요. 물론 자기 나무에 열린 포도는 맘껏 따 먹을 수 있지요. 행사의 프로그램도 아주 다양합니다. 미생물들이 꿈틀거리는 흙의 감촉을 느끼게 하는 ‘맨발로 흙 밟기’, 포도나무 안아주기, 포도밭에 자라고 있는 풀꽃이름 알기 등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호흡하게 해주지요.
그리고 유치원이나 학원들을 대상으로 ‘포도나무 학교’를 운영해 살아 있는 자연학습장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자연농업협회 차원에서 이런 문화행사를 적극 권장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어떤 식으로든 노동과 삶의 휴식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포도밭을 가꿔주실 것을 전국의 포도밭 주인님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자연농업과의 만남은 필연
제게 있어 자연농업식 포도재배는 필연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이런 문화행사를 개최하면서 제초제나 농약을 뿌려댈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1995년에 자연농업 교육을 받고 곧바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처음엔 아버님과의 마찰도 적잖았습니다. 아버님은 30년 동안 길들여진 방식이 있으셨으니까요. 어쨌든 제 고집대로 밀고 나갔는데, 처음엔 실패도 많았습니다. 제대로 준비도 갖추지 않고 너무 욕심을 부려 급작스럽게 모든 걸 바꾼 탓이지요.
토양과 나무의 상태는 고려하지 않은 채 천혜녹즙과 한방영양제 등 자연농업자재를 과용하다보니 질소과다 현상이 생겨 꽃에 열매가 맺지 않는 화진이 왔습니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농약을 1년에 서너 차례밖에 안 뿌리다보니 병충해 피해도 많았습니다. 물론 제초제도 전혀 안 쓰고 풀을 베어내느라 땀 꽤나 쏟았지요.
이런 실패 과정을 거쳐 스스로 많은 걸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자연농업협회에 수시로 전화해서 질문을 했고, 그걸 바탕으로 하나하나 원칙대로 실천하다보니 차츰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응용하는 기술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산더덕으로 술을 담가 한방영양제와 같이 5월경부터 여름까지 엽면시비를 하고 땅에도 뿌려주었더니 생장이 빨라지고, 당도도 높아졌습니다. 더덕술은 5월경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사용하는데, 처음에는 1000배로 희석해서 쓰고, 나중에는 700배로 희석해 사용합니다. 재작년에는 협회의 조 회장님이 다녀가셨는데, 과수원을 둘러보시고는 천연칼슘을 만들어 시비를 하라고 권하셔서 당장 실천했더니 포도알이 훨씬 굵어지고, 비가 와도 열과현상도 없이 튼튼하게 잘 자라더군요. 잎이 튼실해져서 병충해에도 강해졌습니다.
천연칼슘을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소뼈나 돼지 뼈를 현미식초에 담가두고 이틀이 지나면 녹기 시작하는데, 1주일 후면 제조가 완성됩니다. 그것을 500배로 희석해서 엽면시비도 하고 바닥에도 뿌려주면 됩니다.
병충해 방제는 유인살충주로 주로 합니다. 효과도 아주 좋고, 특히 주말농장 행사 때에는 인기가 대단합니다. 줄기에 매달려 있는 그것의 용도를 설명해주면 사람들이 아주 신기해하거든요.
저희 집 포도나무는 재래방식으로 키웁니다. 현대방식은 ‘―자형’으로 줄기형태를 유도하지만 저희는 줄기가 자연스런 형태로 자라도록 그냥 둡니다. 그리고 이랑 따라 줄기 위로 비닐로 ‘간이 비 가리개’를 해두는데, 이 방식만으로도 병충해 예방에 큰 도움이 됩니다.
바닥에는 늘 호밀을 심었는데, 2001년에는 호밀을 구하지 못해 부직포를 덮어 잡초를 억제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이, 2001년 여름에는 무척 가물었는데 부직포를 덮어두었더니 수분이 증발되지 않아 가뭄에 효과를 보았습니다. 저희는 생산된 포도를 주로 단골들과 전자상거래를 이용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농산물 전자상거래전문업체인 ‘도시와 농촌’을 통해 판매되고, 저희 과수원 홈페이지(www.poetpodo.co.kr)로도 판매합니다. 저농약인증을 굳이 받지 않아도 모두들 신뢰하고 찾아주고 있습니다.
포도 수확은 늘 아침 6시부터 8시 사이에 합니다. 해 뜨기 전이 영양상태가 가장 좋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수확을 할 때에는 봉지를 열어보고 냄새를 맡아보는데 향기만 맡아도 익은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포도는 한 알이 익기까지 수백 수천의 빛깔을 보여줍니다. 9월초가 되면 마침내 먹물처럼 검은 빛깔을 띠는데, 저는 그 과정을 ‘포도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수백 번 립스틱을 고쳐 바르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포도로서는 봉지를 걷어내고 세상에 첫 모습을 보이는 그 순간이 얼마나 가슴 설레겠습니까.
끝으로 자작시 한 편 띄웁니다.
포도의 아이
포도나무는 나에게 있어/어머니이고 누님이고 처이기도 하지만,/또한 아무 것도 아니고/밭에 서 있는, 그렇고 그런 나무이기도 하다./포도나무는 또 내 계집의 몸이고/내 뒤통수이다./나는 봄이고 여름이고 또 추운 겨울에도/내 몸짓을 들고 찾아간다./달빛에 비친 포도나무가 날 기다린다./서 있기도 하고 쪼그려 앉아서/날 기다린다./나는 나무의 몸짓을 잊지 못해 또/밭에 간다./내 눈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널 기다리지만 네 손은 쉴새없이/움직이고 온몸을 반복해서 비틀어/포도산을 잉태하고 있다./나는 그 여자의 살 냄새를 맡는다./그 여자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아이가 내 아이라는 걸/나는 알고 있다./이제 노란 화관이 터져/아이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햇빛 좋은 유월 초순이다.
■ 정리, 사진 · 최익근
조영상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4.01.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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