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ww.jadam.kr 2006-09-04 [ 류기석 ]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알리는 커다란 걸개 그림이 앙증 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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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만에 얻은 쉼을 위한 시간, 이른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광릉 숲 동쪽 끝자락에 걸쳐있는 텃밭으로 향했다.
진벌천과 검단천이 만나 남쪽으로 흐르다가 또다시 마명천과 부평천이 만나고 이윽고 봉선사천이 만나 커다란 하천 왕숙천을 이루는 광릉내를 가로질러 달리다가 잠시 평촌상회에 들러 고추와 배추에게 먹일 막걸리와 사과식초를 샀다. 시꺼먼 봉지에 담긴 막걸리와 식초를 달고는 자전거의 두 페달을 열심히 밟고 접동농장 쯤에 이르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오늘 장현리 포도밭에서 작은 예술제를 준비하는 형님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위한 손님맞이로 2시쯤 구리역에서 모시기로 했는데 다급한 형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좀더 일찍이 포도밭으로 나와 도와 달라는 것 같다.
|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포도밭으로 오르는 부모님들과 아이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표정 또한 밝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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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텃밭에 나온 터라 곧장 달려 갈수는 없었고 텃밭 위쪽으로 꽃밭을 일군 곳의 풀들과 그 주위로 난 풀들을 일일이 낫으로 눕혀주고는 삽을 이용해 쌈지 밭을 만들고 쇠스랑으로 잘 고른 다음 달랑이 무우를 흩뿌림으로 심었다.
달랑이 무우를 다 심었다는 뿌듯함도 잠시 물 조리에다 수목원 ‘생’막걸리와 사과식초, 현미식초, 쑥 발효제, 목초액 등을 적당한 물에 섞어 고추와 배추밭에 골고루 뿌려 주니 온 밭이 막걸리 향으로 가득하다. 아랫동네 할머니는 막걸리를 가져왔기에 내심 한잔 할까하는 생각을 품으셨다가 농작물을 위해 준비한 막걸리인 것을 아시고는 실소를 금치 못하셨다.
대충텃밭 정리를 마치고 잘 생긴 오이 하나를 따다 이웃집 아주머니랑 나누어 먹고는 자전거를 이용해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와서는 몇 가지 행사준비물을 챙겨 장현리 포도밭으로 향했다.
|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포도밭에서는 시 걸개 그림이 있어 시인과 손님, 손님과 손님이 함께 마중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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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포도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이른 봄부터 한일이 많다. 농약이 들어있는 주사기를 가지고 일일이 해충을 잡고, 포도의 순을 따주고, 가지를 쳐주고, 포도밭에 들어가 일일이 풀을 뽑아주고, 포도봉지를 씌워주고, 잘 익은 놈을 찾아 하나씩 따서 바구니에 담고, 상품으로 유통시키기 위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야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포도나무 밑에 제초제를 써서 풀을 없애고, 시설비를 들여 비 가림을 해주고, 각종 농약을 치고 성장을 조절하기 위한 인위적인 방법이 동원되면서 자연과는 멀어지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찾는 시장물건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포도나무와 함께 평생을 일해오신 포도밭 지킴이 부친 류용희(69)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농부시인 류기봉(42)님은 자연농업의 길로 들어섰다. 화학약품이나 비료를 써서짓는 농사에 비해 소출이 30% 가량 떨어진다는 유기농업으로 포도나무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주변의 한약재 찌꺼기와 방가지똥풀 같은 독초를 발효시켜 살충제로 쓰는가 하면 어떤 때는 바닷물과 천연재료를 뿌려주기도 한다. 그린음악을 한답시고 바흐의 음악을 틀어주거나 자신이 쓴 시를 마음으로 읽어주기도 하면서 포도나무를 애인이자 누이로 생각하는 이는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살아온 친형님이시다.
|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올해로 9회째를 맞는 '포도밭 작은 예술제'는 가족단위의 손님들로 가득 메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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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월이 오면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의 한 포도밭이 시인들의 발길로 북적인다. 이 포도밭 행사는 1998년 (고)김춘수 선생님 제안으로 지금까지 9회째 시인과 독자와의 만남을 가져왔다. 행사시기는 매년 햇포도가 출하되는 9월 첫 번째 주말로 정했다.
유난히 맑고 높은 하늘은 낮과 밤의 기온차를 벌리고 뜨거운 태양빛에 빨갰던 포도 알은 어느새 새까맣게 주절이 익어가는 모습에서 오늘의 이 행사도 잘 치러질 것이라는 예감을 받는다. 공생농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지인과 함께 전선을 준비하고 주변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들을 치우면서 여러 시인들이 쓰고 만든 한점 한점의 걸개 천을 포도밭 사이로 써서 붙인 시인들의 이름 옆에 걸어 놓는 일로 마무리 지었다.
오후 1시가 넘어서야 포도를 가득 싫은 차를 이끌고 구리역으로 나갔다. 2시쯤 만나기로 한 것이 피차 사정이 생겨 2시30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구리역에 도착, 멋스러운 선글라스를 쓰고계신 백발의 노 시인을 만났다. 늦어 미안한 마음을 전하니 밝게 웃음으로 넘기신다.
정현종(67세) 시인께서는 요즘 농촌에 오기만하는 것으로도 만족스럽다며 "언제고 산골 오지로 여행할 때면 꼭 함께 가자"했다. 언젠가 계기가 되면 산골로 들어가 여생을 자연과 함께 보내고 싶다며 둥지를 틀 계획을 말씀하셨다. 현재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농촌지역의 아파트 난개발과 무분별한 공장증설에 대해서도 씁쓸해 하시며 살고계신 용산구 동부 이촌동 인근에 있는 용산 미군기지에 대한 정부의 활용방안을 놓고도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시인과 농부, 농부시인 류기봉님과 시인 정현종님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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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있는 포도밭에는 행사시작 30분전인데도 가족과 함께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셔서 성황을 이루었다. 포도밭 뒤쪽 야트막한 동산, 10년생 쯤 되어보이는 잣나무 군락 밑에 무대를 만들고 행사를 알리는 걸개 그림을 걸어놓고 제9회 시인 류기봉 포도밭 작은 예술제의 막을 올렸다.
1부 순서로 진행은 설태수(세명대 영문과 교수)시인께서 맡아 보았고, 신나는 통기타 음악으로 긴장을 풀어주었다. 출연 가수로는 김희진님(남녀혼성듀엣 라나 에 로스포 마지막 멤버)과 유로(김철민)가 함께 깜직하고 걸직하한 목소리로 흘러간 옛 노래와 가요, 팝송 등을 두루불러 포도밭에 열띤 흥을 돋우었다.
2부 순서는 시인 조영서님과 정진규님의 격려사가 있었고, 초대시인의 소개가 있었다. 참석하신 시인으로는 조영서, 정진규, 정현종, 이수익, 서정춘, 노향림, 조정권, 유자효, 이문재, 이승하, 박주택, 고두현, 이덕규, 김행숙, 문태준, 차주일, 심언주님과 소설가로는 이혜경, 김정산님 등이었다. 특별히 정현종 시인께서 시인 류기봉 산문집 <포도밭 편지>를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뒤이어 포도밭에서 열린 작가들의 친필 시와 소설 감상이 이루어 졌다.
|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김희진님의 감미로운 포크송이 포도밭 작은 음악회를 한층 즐겁게 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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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걸직한 목소리의 주인공 유로의 김철민님은 포도밭 작은축제에 흥을 한층 돋우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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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시, 소설을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닌, 포도밭에서 직접 시인들의 친필 시와 함께 작품을 안내받고 낭독하여 화기애애한 체험의 시간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으로 포도나무에 작가의 친필시를 걸어 놓고 작가의 나무 앞에서 생명, 흙의 감촉을 느끼면서 시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3부 포도주 만들기(진행 죽방칠현 김정산 작가), 독자가 포도를 발로 밟아서 포도주를 만든다. 여기서 만들어내는 흥은 포도주와 더불어 잔치의 세리머니가 될 것입니다. 포도와 흥은 항아리에 발효시켜서 내년도 포도밭 잔치에 쓸 것인데 시간관계상 생략했다.
이후 햇포도주와 포도, 포도즙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정담을 나누는 것으로 모든 순서는 끝이 났다. 행사를 주관한 시인 류기봉님은 "앞으로 포도밭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예술제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잔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어느새 모든 행사가 끝난 포도밭에는 사람들의 발자취가 사라지고 녹색 포도나무 평화가 찾아왔다.
|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서정춘님의 걸개 그림 시, 자연을 자연스럽게 그린 시인에게서 사람냄새가 풀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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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자연을 그리워하는 정현종 시인의 걸개 시 그림, 포도밭에 드리워진 연두빛 초록빛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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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정진규 시인의 '초록법신들' 걸개 시 그림은 정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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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포도밭에 걸린 문태준 시인의 경쾌한 우체부 시 그림은 자전거 탄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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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ww.jadam.kr 2006-09-05 [ 류기석 ] 초록의 포도밭에 주황색 빗깔이 잘 어울리는 고두현 시인의 ...사랑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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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석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09.0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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