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 때 뭍으로 유학을 떠나와 대학까지 마치고는 나주시 노안면 처가에서 농사를 지은 지 어느덧 16년. 50살이 코 앞인 김경호 자닮 연구원은 마을에서 여전히 가장 젊은 주민이다.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로 역사가 오래된 이 마을에도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갔다. 김 연구원은 절대로 농사를 포기하지 않고 이 마을에 뼈를 묻기 위해 지난해 새 집을 공들여 지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되살려 내어 하나 뿐인 아들이 대를 이어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새 집에 담겨있다.
10년 전 사서 유기농 벼 농사를 지었던 논 값이 그 사이 두 배로 뛰었다. 쌀값은 떨어지는데 농지값이 올라가는 기현상이 마뜩찮았지만 오른 땅값은 새 집 짓는데 큰 도움이 되기는 했다. 온마을이 다 내려다 보이고 뒤로는 병풍산이, 앞으로는 나주 넓은 들이 내려다 보이는 명당(?)에 집터를 잡았다. 천주교 신자인 김 연구원은 주일마다 마을 신자들을 차로 모시고 오고 집에 데려다 준다. 그런데 해마다 작은 승합차에 타는 신자들 수가 줄어드니 속이 이만저만 상하는 것이 아니다.
2015년 11월 광화문 전국농민대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은 김 연구원이 감사를 맡고 있는 가톨릭농민회 광주교구 대선배다. 백남기 농민이 농촌을 살리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다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은 그에게 농촌을 살리기 위해 남은 삶을 오롯이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가슴 깊이 심어주었다. 지난 달 말 백남기 농민 기념사업회 사무실 개소식을 다녀오면서 그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김 연구원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 현재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을 살리기다. 마을에 농사를 이어갈 사람들과 농사일이 아니라도 마을에 들어와 살아갈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보다 다급한 일이 없다. 사람 없는 농촌이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이기 때문이다. 농사 짓는 일이 더 이상 고되고 먹고 살 방법이 없는 천직이 아니라 그 어느 일보다 행복하고 보람있는 직업임을 보여주기 위해 댤걀 농사와 배 농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우스개 소리이긴 하지만 온갖 궂은 일에 앞장서면서도 '나주 농민 재벌'이라고 이웃 농민들이 그를 일컫는 것이 그의 진실한 삶을 입증한다. '백남기 농민'을 삶의 지표로 삼은 김경호 농민을 뒤따를 농민들이 노안면을 가득 채울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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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철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20.07.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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