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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가 저물고 아시아의 시대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동북아 한∙중∙일 삼국은 국경이 가깝고 경제적∙문화적 교류도 잦지만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패권 경쟁과 민족주의적 갈등으로 그림자가 짙은 지역입니다.
한∙중∙일의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정통한 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삼국이 대립을 넘어 역사 화해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세 나라 사이에 심화되는 갈등의 원인을 짚어보고 평화공존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한 시간,
지난 9월 11일 열렸던 124차 포럼의 핵심 내용을 전합니다.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독도, 위안부 같은 문제들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동북공정 등 고대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대단히 심합니다.
왜 오늘날 역사∙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되고 있는 걸까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현재 동아시아 정세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한국이 변했습니다. 백 년 전, 대한 제국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대 열강에게서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새우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삼십여 년 사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 6∙25 전쟁, 개발 독재의
상처를 딛고 세계사의 차원에서 봤을 때, 가장 역동적인 나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중국의 변화입니다.
개혁∙개방을 주장한 지 삼십 년 만에, 작년에는 일본마저 재치고 미국 다음의 GDP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중국도 이렇게 덩치가 커지고 나니까 국제사회에서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종래에는 발톱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말 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겠다, 유소작위(有所作爲)인 거죠.
그리고 지난 백 년 동안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일본이
최근에 들어와, 특히 대진재(大震災)가 발생하면서 답보상태에 들어섰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이라는 상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큰 물결들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국제정세가 가장 격렬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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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생활상의 하이브리드 현상
그럼 이제 한∙중∙일 세 나라의 관계를 좁혀서 보겠습니다.
2010년 한국과 중국 사이 무역액은 2000억 달러, 작년에는 2200억 달러였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3000억 달러의 교류가 있었죠.
세 나라의 관계를 보면 상대방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 3위 안에 들어갑니다.
세 나라의 GDP를 합치면 세계 GDP의 20%에요. 동아시아 삼국의 세계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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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왔다갔다한다는 것은 물자, 정보, 문화들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2011년 한국과 중국 사이의 왕래는 약 650만이었고, 한국과 일본은 550만, 중국과 일본은 600만입니다.
1965년, 한∙일 협정이 맺어졌을 때 두 나라를 왕래한 사람이 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55배로 증가한 것이죠.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의 반 이상이 MADE IN CHINA이지 않을까요
중국 사람들은 그들이 쓰는 대부분의 핸드폰이 삼성이나 LG 것이겠죠. 그 핸드폰들의 핵심 기술은 모두 일제고요.
일상 속에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 저는 이것을 ‘생활상의 하이브리드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물자의 교역이나 인간왕래, 문화교류 등 여러 방면에서 대단히 상호의존적인
한∙중∙일 세 나라가 그렇다고 마음까지 주고받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상호불신과 오해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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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역사 문제
동북아 삼국에서 군사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국에서는 50%, 중국에서는 68%, 일본에서는 64%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현상입니다.
이렇게 된 배경 중 가장 큰 것은 역사문제, 그중에서도 전후 처리가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후 처리란 전쟁을 어떻게 종결시키느냐에 관한 것인데,
독일처럼 전쟁책임자를 색출해서 처벌한다든지 인적∙ 물적 피해를 구제한다든지
전쟁을 다시는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한국은 분단되었고 중국에는 국공내전이 일어나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자기 나라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는데 일본에 책임을 요구할 계제가 못 되었죠.
더군다나 세계가 냉전구조로 바뀌며 일본을 부흥시키는 쪽으로 갔고,
중립을 선언한 미국은 실상, 한국과 일본 사이의 독도 영유권이나 센카쿠, 조어 문제 등을
애매하게 처리해 각 나라 사이에 갈등의 씨앗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래야 향후에도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거든요.
역사인식 문제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이 패전했을 때 맥아더가 천황의 전쟁책임을 면책해줬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일본의 역사관이 많이 변했을 것입니다. 천황의 죄를 묻지 못하니까
일본 전체가 패전 전의 전쟁책임에 대해 지금처럼 자기 합리화하는 결과가 생겼다고 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은 전쟁배상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고 각 나라 협정문에서도 경제협력자로서
돈을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묵은 문제들 때문에 세 나라 관계가 회복이 안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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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갈등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역사관
동아시아에서 유독 지금 영토와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세 나라가 철저하게 내셔널리즘,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많이 달라지고 있긴 하지만, 저희 세대만 해도 학교 다닐 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습니다.
60년대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서는, 남에 의지하고 비하하는 일본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서
주체적인 한국인을 키우는 민족주의 사관이 필요했죠.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이미 백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고, 아이를 낳아 미래 세대를 키우고 있습니다.
역사인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가진 한국인을 다시 키워내야 한다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죠. 많은 부분이 바뀌어나가고 있는데, 상당히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거꾸로 가는 일본의 역사관
일본은 패전 전부터 황국사관이라고 해서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천황 중심의 ‘일본 제일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시켰어요.
그래도 민주주의 도입되고 4, 50년 지나고 나서는 일본 사회가 많이 바뀌었었는데,
1990년대쯤 됐을 때 패전 전의 역사 교육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그게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이어진 것이고 자민당 같은 데서 그런 일을 하죠.
각 과목의 학습 내용이 일본의 천황과 문화, 일본의 역사가 위대하다는 내용을 담는데
그러다 보면 또 한국과 부딪힙니다. 일본은 이천 년 동안 교류한 나라가 한국과 중국밖에 없기 때문에
자기 나라 잘났다고 하려면 한국과 비교할 수밖에 없어요. 결국 2001년과 2005년에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교류를 중단하겠다는 지점까지 갈등이 심화됩니다.
물러설 수 없는 중국, 분노하는 한국
그럼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은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대단히 묘한 나라에요. 세계의 중심이라고는 하는데
중국 역사를 보면 원나라는 몽골이 세웠고,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웠는데 다 중국사에요.
실제로 중국 인구 13억 중에 91%는 한족이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8~9%가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중국 면적의 반 정도 되는 영토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란이 생긴다거나 하면 중국은 분열하겠죠.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중국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내세운 새로운 역사 이론이 ‘통일 다민족국가론’입니다.
중국 안에 있는 56개의 민족들이 옛날부터 하나의 중국을 이루어왔다는 건데요,
여기에는 고구려도 들어가고 고조선도 들어가고 발해도 들어갑니다.
최근에는 중화민족이라는 민족이론도 만들었어요.
한족과 56개의 소수민족 위에 ‘중화민족’이 있어서 모두가 똑같이 중화민족이라는 거에요.
이런 식으로 국민과 영토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는 강한 집념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관이 동북공정하고도 연결됩니다.
동북공정의 관점 속에서 우리의 고대사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가 전부 중국사로 들어갑니다.
당연히 한국인들의 역사 인식과 정면으로 충돌하겠죠. 두 나라 역사 갈등 대립은 생각보다 치열해요.
중국 사람들한테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것이 뭐냐고 앙케이트 조사를 했는데, 역사표절이 1번이었어요.
우리는 중국 사람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일례로, 3년 전에는 한국이 강릉 단오제를 무형문화재로 유네스코에 등재했어요.
그러자 중국에서 자기들의 고유명절 ‘단오’를 빼앗았다고 난리가 났죠.
그걸 무마하느라 저희 재단에서 중국 민속 학회장 유력인사들을 초청해서
강릉에 데리고 가 강릉 단오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단오하고 강릉 단오는 다르다.
중국에서는 단오에 용처럼 생긴 배 타고 뱃놀이하고 떡 나눠 먹고 그러지만, 강릉은 아니거든요.
겨우 진정시켰어요. 이런 식의 문제가 계속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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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적대를 뛰어넘을 역사 화해
유럽은 이미 이런 시기가 지났습니다. 유럽도 근대국가를 만들며
국민 단합을 위해 민족주의를 부추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1차,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졌고
계속 싸우다가는 너 죽고 나 죽고 유럽 자체가 사라지겠다는 깨달음이 공유됐죠.
그래서 공동의 역사를 강조하는 쪽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동아시아에서는 하지 못했어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을 정도로 민족주의가 강한 세 나라가 서로 부딪히며 살고 있고,
그런 것을 잘 관리해야 하는 정부와 지식인, 언론은 스스로 거기에 빠져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뛰어넘을 방법은 무엇인가.
하이브리드 현상까지 나타나는 세 나라가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새로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가.
저는 역사화해라고 말하고 싶어요. 역사적으로 형성된 증오, 오해, 불신을 해소하고 서로 존중하는 거죠
여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병인요법이라고 해서 병을 뿌리 채 뽑는 것인데요.
병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거기에 맞는 약을 쓰고 섭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듯
세 나라가 얽혀있는 역사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정보, 자료를 공유하는 겁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두 번째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간 것도 정확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일종의 대중요법이라고 할까. 양국의 지식인이나 언론이 그때그때 해야 할 일입니다
세 번째는 평소에 국민의 역사의식을 향상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나눔문화포럼> 같은 것을 자주 열어서 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해요. (웃음)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괜히 열 낼 일 아니다’ 하는 판단들을 함께 해야하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평화, 인권, 인도, 민주 같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역사관으로 합치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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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체는 가능할 것인가
최근에 동아시아 공동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제가 보기엔 어렵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필요성을 못 느껴요. 그런 거 안 해도 잘 살거든요.
중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일본도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에요.
일억 삼천의 인구가 있고 경제 독립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일본은 GDP에서 차지하는 교역이 20~30%에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무역을 하지 않아도 80%는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GDP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게 90%에 가깝습니다. 결국 절박한 건 우리예요.
그뿐만 아니라,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다른 나라를 희생시킨 일본이나,
대대로 중화주의로 주변국을 지배해 온 중국보다는 비교적 신뢰를 줄 수 있는
한국이 적극 나서서 역사 대화를 추진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를 놓고 보면 동아시아가 평화롭게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오면
지정학적으로 한반도가 바로 그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서울 놓고 봐서 반경 150km, 비행기 타고 두 시간 거리에 약 칠억의 인구가 살고 있잖아요.
이런 걸 생각하면 한국인들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해요. 나 잘났다는 소리만 하지 말고
상대방도 잘나고 우리도 잘났다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죠.
서로 다른 면만 계속 보는데, 유럽 입장에서 보면 세 국가가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 재단에서는 ‘한∙중∙일 세 나라가 같이 쓰는 역사 교재’를 두 차례 개발했어요.
「미래를 여는 역사」, 그리고 최근에 나온 「한∙중∙일이 함께 쓰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이런 사업들을 통해서 동아시아 문화의 기반 속에서
한∙중∙일 세 나라가 서로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자꾸 공유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정치 레벨에서 시민이 덜 휩쓸리게 하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당히 추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한류라는 것이 일본에 있어서 일본 사람들의 반감이 덜했잖아요.
서로 이해하는 공통의 분야가 생기니까 계속 그런 것들을 찾아내고 확산시켜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단히 힘들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가야 할 방향이 이것이기에.
절대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북한이라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고요.
참을 수밖에 없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연일: 2012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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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나눔문화,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2.10.0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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