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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시대, 누가 내 시간을 빼앗는가강신주(철학자)
11월 8일, 오늘은 수능날입니다.

3년을 견딘 아이들이 오늘 이렇게 외치겠죠.

“이제는 내 시간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면 다시 4년을 담보 잡힐 겁니다.

졸업하고 나면 ‘취업하면’으로 바뀔 거고요.

직장 다니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진정한 고뇌는 거기부터잖아요.

오늘 주제가 ‘누가 내 시간을 빼앗는가’죠. 시간은 이렇게 빼앗깁니다.

호흡 하나하나가 마지막인 듯 숨 쉬며 사는 그 순간을 잃어버립니다.

오늘 그 시간들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함께 나눌 이야기입니다.

www.jadam.kr 2013-01-21 [ 나눔문화 ]

시간을 훔치는 자들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모모>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Michael Ende)가

1973년 집필한 흥미진진한 동화로 우리에게도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소설입니다.

독일 어느 마을 원형극장 유적지에 말라깽이 소녀 모모가 살았는데

그녀에게는 타인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외롭거나 우울할 때, 혹은 삶에 지쳐 피곤할 때,

그녀에게 달려와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습니다. 모모에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앞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얻곤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과 모모 앞에 아주 강력한 적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시간도둑들입니다.

그들은 효율적인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설교하러 다니는 자본주의적 삶의 가치의 전도사들이었습니다.

잠시 모모가 마을을 비운 사이에 마을 사람들은 시간도둑들에게 설득되어 버린 것이죠.

이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모모를 찾아오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들에게는 모모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前자본주의의 시간은 영원회귀의 시간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 개념이 만들어진 지 불과 2~300년 밖에 안 됩니다.

자본주의적 시간관념을 주입시키면서 시간도둑들이 우리의 시간을 훔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합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죠.

살아가면서 향유하는 시간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소비되는 시간 관념이 우리들 마음에 똬리를 틀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의 시간은 ‘영원 회귀의 시간’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시간은 계속 순환하는 거에요.

‘아버지가 살았던 삶을 내가 살 거야.’ 혹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삶을 살았어’ 정도의 느낌이랄까

이 때는 나이 많은 사람이 존경을 받았죠. 순환의 주기를 더 많이 경험했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까지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또 사람이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시 나무가 되고 뿌리가 된다고 생각했죠.

www.jadam.kr 2013-01-21 [ 나눔문화 ]

인간을 소외시키는 기계문명의 시간
반면 자본주의 이후의 시간은 일직선의 시간입니다.

발터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의 삶은 일방통행로 같아요.

살아가면서 향유하는 시간이 아니라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윤을 위해 소비하며 그저 앞으로만 갑니다.

무섭게 변하는 산업자본의 속도에 휘둘리면서요.

이전의 시대와는 다르게 자본주의의 시간은 청소년과 젊은 사람을 가장 존중합니다.

새롭게 발명되는 문명의 이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비자들이기 때문이죠.

산업자본이 만들어내는 것들에 적응하거나 접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도태됩니다.

낡은 것들이 계속 폐기처분 되듯이 나이가 들면 세계와 접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예전의 시간은 좌우지간 인간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오래 경험한 사람들이 지혜의 담보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신제품을 쏟아내며 적응할 것을 강제로 요구하죠.

영원한 현재를 살듯 몰입하기
그렇다면 이전의 시간, 영원회귀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것도 맞지 않아요. 나이 많다고 어린애를 무시하는 사회나

나이 많다고 도태시키는 사회나 똑같이 시간도둑이잖아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이를 테면, 보르네오 사람들이 해충을 피해서 나무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요.

과거로 돌아갈 수도, 현재에서 무조건적으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고장난 것을 고쳐야 하죠.

보르네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 지혜를 배워, 양쪽이 다 극복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은 둘의 관계다, 둘을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배경으로 물러나는 것이죠. 몰아(沒我)입니다.

저는 이렇게 모든 일정이 잊혀질 정도로 사랑할 때,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적 시간관념 하에서 시간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는 것이죠.

이렇게 구원하는 시간을 ‘영원한 현재’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확보된 시간을 다른 것과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영원성을 확보합니다.

과거 혹은 미래에 살면서 젊은 사람을 중시하거나 나이 든 사람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죠. 황지우 시인의 시 중에 ‘여기서 조금만 더 머물다 가고 싶다’는 시가 있어요.

그런 순간입니다. 이건 자본주의에도, 전 자본주의에도 없던 시간이에요.

특히 지금처럼 인간관계가 붕괴되었을 때는 순수한 시간을 가지기가 더 힘들지요.

만나자 그러면 “용건이 뭐야?” 부터 물으니까요.

www.jadam.kr 2013-01-21 [ 나눔문화 ]

도둑맞은 시간을 지켜내는 용기가 필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시간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안정적 직장을 허용하지 않아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자본가,

살인적인 경쟁 교육으로 아이들의 시간마저 빼앗는 교육 당국자들,

근본적으로 사랑할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 아니라 분배를 더 늘리겠다는 정치가들,

자본주의 체제가 과거보다 진보적이라고 역설하는 지식인들까지 수많은 시간도둑들이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천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후에도 없을 절대적인 사람, 단 하나뿐인 존재입니다.

내가 죽으면 한 세계가 닫힙니다. 나 자신을, 혹은 시간을 상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이런 저런 핑계가 생겨나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칫하면 끌려다니게 됩니다. 용기있는 자가 자기 시간을 가진 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 이제, 사랑할 시간을 지킵시다.

강연일: 2012년 11월 23일

나눔 문화 : http://www.nanum.com

제공:나눔문화,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3.01.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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