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선생님은 20세기 새로운 철학의 문을 연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를 인용하시면서 강의를 시작하셨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대해 '집짓기, 거주하기라는 건축법적인 방법을 통해 존재한다'고 답했다. 즉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
2. 독락당(獨樂堂)
독락당은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이 중앙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경주로 낙향하여 칩거한 곳이다. 이언적이 본처가 아닌 첩들이 사는 집을 개조해서 지었다. 선생님이 독락당에 대해 설명해 주신 건축적 특징은
①4개의 산을 경계로 삼고 8개의 바위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②안채와 공수간(음식을 만드는 곳)이 모두 똑같은 크기와 모습으로 지어졌다.
③사랑채인 옥산정사(玉山精舍)는 밑에 1개의 기단만이 놓여 있어 높이가 매우 낮아 마당과의 높낮이 차이가 거의 없다.
④작은 마당이 집안 곳곳에 마련돼 있다.
⑤통상 사당은 경배의 장소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데 반해, 독락당은 사당조차도 높이가 매우 낮다.
⑥집 전체의 높이가 매우 낮아 땅으로 꺼질 듯한 모습이다.
⑦정자(pavillion)가 독립돼 있지 않고 벽채 일부로 쓰이고 있다. 정자는 단지 마당을 한정하는 역할로만 쓰이고 있다. 집 바깥 외부에서 정자를 보면 정자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여기서 공간의 문제가 대두된다. 조선시대 집주인인 건축주는 직접 건축설계를 했는데 회재 이언적은 공간의 조직에만 관심이 있었다. 공간이 설계의 핵심이며 기와와 벽 등의 장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기서 선생님은 건축설계에 있어서 핵심은 “공간”을 보는데 있으며 장식, 모양, 크기에 있지 않음을 강조하셨다.
독락당과 비슷한 시기 서양에서는,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비첸자에 은퇴한 카톨릭 사제를 위한 집을 지었다. 건축사적으로는 서양 주택의 기원이 된 매우 중요한 건물로 현대까지 서양건축의 교본이 되고 있다. 이 집의 특징은
①건물 중앙에서 사방을 통제 및 지배하고 관찰할 수 있도록 세워졌다.
②건물 돔 안에 만신(萬神)이 조각돼 있다.
③작은 집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위용이 느껴지도록 설계돼 있어 집주인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④집의 내부는 집의 외부와 철저히 단절돼 있고 집 중앙을 점거한 주인이 세상의 중심임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4.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유토피아(utopia)는 라틴어 유(eu: well 혹은 ou: 없다)와 토피스(topos: 장소)가 합쳐진 단어로‘이상향’ 혹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상반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토피아의 책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유토피아는 섬으로 고립돼 있다. 입구는 하나고 배로밖에 들어갈 수 없다. 유토피아의 한가운데는 봉건영주가 살고 있다. 이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적인 도시 모델이 되어 급속도로 퍼져 서양건축의 주류를 이루게 된다. 베니스의 팔마노바에 지어진 중앙에 봉건영주의 성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의 도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서양건축은 기하학을 바탕으로 설계가 되는데 기하는 인간의 머리 속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그 설계구조상 평지에만 건설이 가능하므로 근본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5. 르 코르뷔지에
1922년 르 코르뷔지에라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가 파리의 급격한 인구증가, 비위생적 주거환경을 극복하고자 설계한 도시가 있다. 300만이 사는 것을 계획하고 설계한 것으로 르 코르뷔지에는 '이것이 우리의 미래다'라고 제시했다. 이 도시계획은 설계에만 그치고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이 도시설계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세기 건축의 교본이 되었다. 요즘 도시설계도에는 보라색, 노란색, 빨간색 녹색 등의 갖가지 색칠이 돼 있다. 상업지역은 보라색, 공업지역은 빨간색, 주거지역은 노란색으로 땅에 색칠이 되면서 땅이 인간에 의해 계급화된다. 색에 따라 땅의 등급, 즉 가격이 달라진다. 원래 땅에는 계급이 있을 수 없는데 인간이 땅에 계급을 매긴 것이다. 인간이 내세운 합리와 이성의 위용이 땅을 철저히 계급화하였다.
6.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 이고우(Pruitt Igoe)
미국계 일본 건축가인 미노르 야마사키는 1950년대 세인트루이스에 11층 33개동의 아파트로 이뤄진 ‘프루이트 이고우 아파트 단지’를 설계 및 건축하였다. 이 건물은 당시 모더니즘의 절정을 이루며 건축상을 휩쓸었다. 균질화, 위계적 질서, 조직화라는 모더니즘의 표준적 어법이 적용된 계획도시다.
그런데 이성의 조직에 의해 지은 집에 거주하는 이 신도시에서 살인과 마약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결국 사람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 유령도시가 된다. 정확히 1970년 7월 15일 15분 32초에 시 당국에 의해 이 아파트 단지는 폭파된다. 찰스 쟁크스라는 도시학자는 이 신도시의 붕괴 시점이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20세기 도시건축의 역사적인 종말 시점과 일치한다고 보았다.
7. 19세기 서울지도 vs 20세기 서울지도
19세기 서울의 지도에는 산과 물과 집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로움을 자아내고 있다. 반면에 요즘 서울의 지도에는 건폐율, 용적율만 있고 산과 물이 없어 평화로움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서울의 지도에서는 단지 서민아파트, 단독주택, 상가라는 이질적이 건물들이 절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
8. 투시도법
투시도법은 르네상스 시대 브르넬레스키에 의해 처음으로 생겼다. 투시도법은 투시자의 앵글로만 대상을 볼 수 있다. 다른 사람과는 앵글을 공유할 수 없다. 투시도법에 표현된 세계는 내 것이다. 투시자가 주시하는 한 점으로 모든 세계의 사물이 소실된다. 투시도법의 그림에서 투시자는 세계의 주인이며 전능자다.
반면에 책의 서가를 그린 19세기 한국 민화를 보면 세계의 중심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만화를 그린 이는 다원적 세계관을 지닌 사람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적 가치관에 보다 더 근접한 것은 투시도법으로 그린 아테네 학당이 아니라 책의 서가를 그린 19세기 한국 민화다.
9. 이상적 도시(달동네)
제3세계 도시는 서양건축과 달리 벌집같이 돼 있다. 모로코의 도시를 보면 10채의 집이 빵집 1개, 우물 1개를 중심으로 한 개의 그룹으로 독립된 단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굳이 공업지역, 상업지역, 주거지역으로 나눌 필요가 없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철학자는 소설 <율리시즈>를 좋아했는데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더라도 전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 혹은 개체가 전체와 맞먹는 도시가 이상적인 도시다. 이상적 도시의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 국가의 도시는 알라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이 건축에까지 도입돼 모든 집의 모양과 형태가 비슷한 반면, 기독교 국가의 도시는 역설적으로 유일신 사상이 건축에서 강조돼 중앙집중식의 도시형태를 띠고 있다. 지속가능한 도시는 사회생태가 지속될 때 가능하다. 우리 달동네가 건축의 진실에 더 가깝다. 달동네 중심에 나있는 길은 공공의 영역으로, 이 길을 통해 공동체가 무르익을 수 있다. 승효상 선생은 스승인 김수근 선생이 55세의 나이로 요절하신 후, 우연히 1992년 금호동 달동네를 지나다가 ‘빈자의 미학’이라는 선생님의 건축철학을 정립하셨다.
에게해에 위치한 세계적인 관광도시인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보면 아랫집이 윗집의 벽이 되고 있다.
금호동 달동네는 재건축의 광풍을 타고 모두 철거되어 현재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선생님은 재건축 전과 후의 사진을 보여 주시면서 이것은 건축도 건설도 아닌 범죄라고 선언하셨다.
10. 불확정적 비움(교토 료안지 vs 한국의 전통마당, 종묘 월대)
Less Aesthetics More Ethics.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 서양건축에는 윤리가 빠져 있다. 서양건축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학의 한계를 느끼고 건축에 윤리를 도입하고 있다.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스 홀라인은 일본 교토의 료안지라는 절 마당을 그대로 옮긴 건축 작품을 선보였다. 윤리는 아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임을 자조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료안지(龍安寺) 마당에 있는 비움은 동결된 비움인 반면, 한국의 전통 건축에 있는 마당이 진정한 비움(불확정적 비움)이라고 하셨다. 한국의 마당은 잔치, 제사, 놀이 등을 하고 언제든지 다시 비울 수 있는 마당인 반면, 교토의 료안지 마당은 절이기 때문에 언제나 깨끗함을 유지해야 하고 외부인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종묘를 매우 좋아하시는데, 종묘는 아직도 조선 왕을 제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월대가 매우 낮아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루이스 칸은 샌디에이고에 생물학연구소인 ‘솔크 연구소’를 설계하면서 시심(영성)이 가득한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었다. 연구원들이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 공간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를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영성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1. 사람을 만드는 건축
‘건축(建築)’은 일본인이 만든 용어다. 일본인은 이전에 조가(造家)라는 단어를 썼다. 건축에 해당하는 architecture는 arch(으뜸, 근본)와 tect(구축)로 조합된 단어다. 즉 으뜸이 되는 학문이다. the Architect는 조물주, 즉 창조주인 신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영조(營造)라는 단어를 썼는데 가꾸어 만든다는 의미다. 세우는 집, 짓는 집이라는 의미로 건축의 본질에 더 적합하다.
"We shape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윈스턴 처칠이 한 말로 우리가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는 의미다.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 왜냐하면 그 공간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검소하고 소박한 공간이 사람을 좋게 만든다. 좋은 건축에 살면 사람이 좋게 되고 나쁜 건축에 살게 되면 사람이 나쁘게 된다.
12. 묘역
인류 최초의 집이자 마지막 집이다. 사는 공간에 묘역이 있어 죽음을 가까이 해야 삶이 경건해 진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묘역을 도시에서 추방했다. 그 대가로 삶이 삭막해졌다. 일본에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묘역이 있다.
베니스 산 미켈레 묘역은 완벽히 죽은 자의 도시다. 묘역에 빌라, 아파트가 있다. 죽음을 완전히 삶의 공간으로 환원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묘역은 스웨덴의 우드랜드 묘역이다.
13. 맺으며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 밖으로 내밀어 경계 안을 감시하는 자'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경계 밖으로 밀어낸 분이다. 선생님은 묘역을 만들면서 종묘 월대를 설계에 이용했다.
제공:나눔문화,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3.03.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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