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본적으로 경쟁사회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우화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이 뭔지 기억하시나요
거북이를 본 받으라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어떤 유명한 교육철학자가 이스라엘의 키부츠에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아이들을 모아놓고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했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들이 물었습니다.
‘토끼와 거북이는 친구라고 했는데, 왜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깨워서 같이 가지 않았나요?’
교육학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토끼와 거북이의 교훈은 ‘경쟁’이에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기만 하라고 가르치는 거죠.
친구가 잠들어도 깨우지 않고 살짝 먼저 가서 깃발을 꽂아 버리면 그만 이라는 이야기죠.
한국교육철학은 1945년 8월 15일 이후로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친구이지만 속으로는 경쟁자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상대를 이겨야 자기가 올라가는 겁니다.
반대로 이스라엘의 키부츠는 협동을 가르칩니다.
이 아이들에게 친구라면 당연히 깨워서 같이 가야 하는 거죠.
협동조합은 association과 enterprise의 통일체 협동조합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association’입니다.
다시 말해 ‘association’과 ‘enterprise’의 통일체에요.
association은 ‘운동체’라는 뜻이고 ‘enterprise’는 ‘사업체’이죠.
운동과 사업이 함께 가야만 합니다.
운동에서는 가치와 이념을 추구하고 사업에서는 이윤을 추구하죠.
그래서 사업으로 번 돈으로 운동을 만들어가는 거죠.
그러면 오늘날 협동조합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장과 국가의 복합체에 의해서 식민지화된 국민생활을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주식회사를 통해 돈을 벌고 경제성장을 했죠.
돈 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일하는 공장에 연기가 가득하면 일할 수 있나요
공장에서 흘러 나온 폐수로 공장 안이 가득 차면 일할 수 있나요
공장 안에서 연기와 폐수를 뽑아내야겠죠.
그리고 밖으로 나온 매연과 폐수에 의해서 누군가는 피해를 입겠죠.
이를 경제학적 용어로는 ‘외부불경제’라고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성장은 반드시 외부불경제를 만들어서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돈을 번 거에요.
이런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국가가 규제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제 1섹터 라고 합니다.
정부규제가 가장 성공한 경우를 저는 두 가지로 보는데 그 첫 번째가 노동 3권을 준거에요.
우선 노조를 만들고 단체를 구성할 권리가 있어요.
단결권이죠. 단결이 있으면 자본가들과 마주 앉아서 협상을 할 수 있지요.
단체 협상을 했는데 사장이 말을 잘 안 들으면 파업을 할 수 있지요.
파업이 기본권이에요. 두 번째로 국가가 만들어준 정부규제로 성공한 것이 사회보장제도에요.
이를 통해서 국민들을 보호하고 외부불경제를 줄이는 거죠.
희생은 빈부격차, 지역격차, 또는 인종차별, 연령차별, 학력차별 등
여러 가지 불평등이 생기고 사회적 배제가 생깁니다.
이런 사회적 배제도 처음에는 국가가 규제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나타납니다.
앞서 얘기한 재벌과 권력과 언론과 학계와 종교가 서로 붙어서 담합을 하기 때문에
기본권이 확립된 서양 같은 곳에서 ‘도저히 못 믿겠다.
우리끼리 하자’며 시작한 것이 협동조합입니다.
사기업이 제 2섹터라면 이러한 부분은 제 3섹터로 공적부문이라고 합니다.
이때 ‘공’자는 함께 한다는 ‘共’, 영어로 쓰면 ‘common’이에요.
그래서 영어로 common sector라는 말을 쓰고 다른 말로는 협동조합섹터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을 ‘사회적 경제 섹터(Social economy sector)’라고 하고
사회적 경제 섹터의 제일 핵심이 협동조합, 가장 기초는 association이에요.
association들이 모인 것이 협동조합이죠.
EU에서는 장관에 해당하는 director general 가운데 23번째 장관이 ‘사회적 경제 장관’입니다.
유럽사람 100명 중에 73명은 사회적경제섹터에서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나머지 27명은 공무원, 군인, 회사에서 돈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위에서 이야기한 세 부문이 서로 정립되어 있는 상태가 경제민주화입니다.
협동조합은 자기통치적이고 자발적인 운동체국제협동조합연맹, ICA(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에서
1995년 협동조합의 정의와 가치, 그리고 7대 원칙을 만들어 선언문을 공표했습니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협동조합은 association이다’.
그리고 두 가지 제한 조건이 있는데 하나는 ’autonomous’ 즉 자기통치적이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 voluntary’,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자기 통치적이고 자발적인 association이라는 뜻입니다.
자기통치란 무엇일까요
가령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오늘 12시에 자고 새벽 4시쯤 일어나서
조금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죠. 시계를 맞춰놓고 자다가 알람이 울리면 깹니다.
잠은 부족하고 일어나기 힘들지만 시간이 됐으니 억지로 일어나서 세수하고 공부하는 거에요.
이렇게 스스로 하겠다고 다짐한 것을 지키는 것을 자기통치라고 합니다.
다른 예를 들면, 한미FTA로 미국에서 수입되는 쇠고기,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와 콩 사료가 합법적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유전자 조작된 사료가 우리 먹을거리 곳곳에 쓰이죠.
심지어 콜라와 사이다를 비롯한 청량음료에도 옥수수가 재료로 들어가는데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청량음료회사 사장은 값싼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씁니다.
우리는 그런 청량음료를 계속해서 마셔야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기농산물을 먹자’고 목표를 정하고 알리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조직된 사람들이 출자를 해서 협동조합을 만듭니다.
보통 주식회사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를 하지만
협동조합의 목적은 유기농산물을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뜻을 모은 사람들이 기획회의와 사업계획회의 등 경영에 참여하게 됩니다.
협동조합 조합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출자만 하고 물건만 사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협동조합 원칙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출자도 하고 경영도 하면서 열심히 참여한 목적이 무엇이죠
건강한 유기농산물을 먹는 것이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며 참여하는 것,
협동조합 원칙에서는 이것이 자기통치입니다.
이처럼 협동조합의 핵심은 출자, 참여, 이용입니다.
그렇다면 자발적인 것과 비자발적인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제가 강연 중에 갑자기 긴급한 연락이 와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러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나가야 되는 일이 있었어요. 그건 자발적인 게 아니에요.
또한 행위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 지키는 것,
그것은 규제가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진급하기 위해, 연봉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경우도 자발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협동조합의 자발적인 원칙은 출자를 하고,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협동조합의 원칙 ICA에서 협동조합을 위한 7대 원칙을 선포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협동조합은 어떠한 차별과 사회적 배제를 금지합니다.
그리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협동조합은 1인 1표제를 기본으로 associative democracy라고 부릅니다.
지금과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투표권자가 100명이고
그 중에 51명이 참석해서 또 그 중에 26명이 찬성하면 당선됩니다.
현재 민주주의는 26명이 74명을 지배할 수 있는 거죠. 협동조합은 이런 민주주의를 지양합니다.
민주주의의 조건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경계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합니다.
EU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처음에는 상당히 어려운 말로 쓰여 있던 내용이
매년 좀 더 쉬운 말로 고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꺼번에 전부 다 쉬운 말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다른 표현이 더 좋은 것 같다면 조금씩 바꿔가는 겁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선거 때만 관객을 동원하는 관객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대비되지요.
협동조합에도 대차 대조표가 있습니다.
원래 대차대조표는 주식회사에서 더 많은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만든 것이죠.
협동조합에는 자본의 이익과 달리 협동의 편익이 있습니다.
즉, 협동조합을 이용했더니 편리함과 유익함이 있다는 거죠.
아이들을 데리고 협동조합 현장 체험을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해요.
이걸 어떻게 돈으로 계산하겠어요.
하지만 협동조합 대차대조표는 계산 할 수 없는 이런 것을 담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은 아직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실정이지요.
그리고 공개된 정보는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공개된 정보를 통해 소비자의 알 권리가 충족되고 선택권이 확립됩니다.
알 권리와 선택권이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 1인1표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따라서 협동조합의 1인1표는 소비자의 알 권리 충족과 선택권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주식회사에서의 의사결정은 1주1표에요.
내가 50.001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나머지 49.999 퍼센트를 지배 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바로 돈이 왕이고 돈이 지배하는 돈의 독재에요.
주식회사가 독재라면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에요. 그런 면에서 크게 다르지요.
협동조합에도 경제원칙이 있습니다.
일반기업의 이윤은 반드시 이자보다 높습니다.
이윤이 이자보다 낮거나 같으면 사업을 하지 않고 은행에 돈을 넣어 두겠죠.
그러니 사업을 한다는 건 이자보다 높은 이윤을 내고 있다는 거에요.
그러나 협동조합은 이윤이 이자보다 낮아요. 그래서 잉여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자치와 자립의 원칙입니다.
자치의 원칙을 지켜가는 것은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해방입니다.
국가가 주는 보조금과 지원금을 오히려 경계해야 합니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은 죽음의 키스입니다.(웃음)
키스할 때는 달콤한데 나중에 보니 그 안에 독이 들어가서 내가 죽더라는 거죠.
세계 유수의 많은 협동조합이 결국 이런 이유들로 무너졌습니다.
자립이란 돈으로부터의 자립이고 해방이에요.
돈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주식회사 형태로 나타나죠.
자립의 원칙은 주식회사에 의존하지 말고 해방되라는 말입니다.
협동조합이 주식회사를 따라가거나 타협하지 말고 반드시 싸우라는 것이죠.
그리고 권력이 자꾸 기웃거릴 때 배타적으로 싸우라는 겁니다.
주식회사와 국가권력에 기대하거나 기웃거리지 말라는 거에요.
이는 과거에는 없던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Association을 통해서 사업하게 하면 잉여가 발생합니다.
협동조합에서는 잉여를 축적한 불분할적립금이라는 게 있습니다.
협동조합에 경영위기가 오면 그 돈을 쓸 수 있도록 합니다.
조합원이 협동조합을 탈퇴하게 되면 출자금을 나누어 주지만 불분할적립금은 분배하지 않습니다.
협동조합이 무너지는 경우 불분할적립금은 목적이 비슷한 다른 협동조합에게 돌아갑니다.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자본금인 거지요.
이런 방법으로 사회자본이 많이 축적되고 없어지지 않도록 해서 사회가 점점 더 좋아지도록 하는 겁니다.
이러한 불분할적립금은 주로 조합원의 발전을 위해 쓰거나 지역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쓰입니다.
재벌, 권력, 언론, 학계, 종교의 담합구조에 맞서
대안적인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 3섹터를 만들어서 경제 민주화를 이루는 거에요.
협동조합은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공동 소유의 사업체 지금까지 association에 대해서는 설명을 했는데요.
다음은 사업체로서의 협동조합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협동조합의 운영 목적은 조합원의 필요(needs)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조합원의 경제적 필요만 충족시켰다면
지금은 사회적, 문화적 필요를 충족시켜야 하죠.
하지만 필요만 충족시켜서는 안 되요.
왜냐하면 바로 ‘aspiration’,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needs와 aspiration을 함께 충족시켜야 합니다.
needs가 enterprise에 소속된다면 aspiration은 association에 소속된 거에요.
운동과 사업, 내가 바라는 것과 내가 결핍된 것 양자를 동시에 파악해야 하죠.
예를 들면, 의료생협에서는 조합원들이 어떤 의료 서비스를 받고 싶어하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과잉진료를 하고 실제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수익이 되지 않는다며
거부하는 일반 병원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사업체로서의 협동조합에는 두 가지 제약이 있어요.
첫째는 지배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경영해야 합니다.
협동조합 이사장이나 이사들이 자기 마음대로 해서도 안되죠.
조합원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해서 그것을 공급해야 합니다.
둘째는 잉여가 쌓이면 공동재산(jointly owned)으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공동의 사회재산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공동으로 소유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면 대안사회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강연일: 2013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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