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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싫어" 넘어선 동아시아! '고뇌의 연대'를 묻다윤여일/ 동아사이 사상사 연구자
"아베 싫어" 넘어선 동아시아!'고뇌의 연대'를 묻다
['번역'의 의미] <여행의 사고> 윤여일을 만나다

안은별 기자

'프레시안 books'가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산지니 펴냄)·<여행의 사고>(전 3권, 돌베개 펴냄)의 저자 윤여일을 만나게 된 계기는 지근거리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그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휴머니스트 펴냄)의 번역자 정도로 알고 있던 그가 단독 저서를 낸 사실도 몰랐던 무렵, <여행의 사고>에 대한 서평 원고가 세 번 연속 다른 필자로부터 '자발적으로' 들어온 것이다. 세 권짜리 책이긴 하나 한 지면에서 세 번이나 다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여행기에 대한 관심 치곤, 아니 한 저작에 대한 관심으로 봐서도 이례적이었다.

<여행의 사고>의 프로필을 보면 "읽고 쓰고 다니고 옮긴다"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수유너머의 일원이었고 2007~2008년 도쿄외국어대학의 외국인 연구자 신분으로 일본에서 체류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전중~전후에 걸쳐 활동한 중국문학 연구자 다케우치 요시미와 다케우치를 포함한 일본의 사상사를 연구한 중국의 쑨거(중국 사회과학원)를 한국어로 소개한 것이 지식 사회에서의 주요 이력이며, 세간에 발표한 글들은 대개 2008년 이후에 쓰인 것들이다. 올해 4월 쑨거와의 대담집 <사상을 잇다>와 쑨거의 평론집을 기획해 번역한 <사상이 살아가는 법>(모두 돌베개 펴냄)이 함께 나왔는데, 곧 <사상의 번역>, <상황적 사고>, 이후 <사상의 원점>이라는 저서가 잇달아 출간될 예정이다.

'읽고 쓰고 다니고 옮기는'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해야 할 운명에 처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겐 어떤 게 적절할까. 동아시아 연구자, 혹은 번역가 평론가나 에세이스트 출판계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결과를 낸 게 여행 책이니 여행 작가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지식세계 안에서의 영역과 위치를 직접 말해달라고 하자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그것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글 쓰는 자로서 갖춰야 할 사회적 기능성에 관한 의식은 아직 흐릿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사상의 번역, 번역의 사상
"루쉰은 다케우치 요시미를 통해, 다케우치 요시미는 쑨거를 통해 다시 한 번 사상적 생명을 얻었다. (…)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는 시대상황에 철학적인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들의 글은 불투명하다. 그리하여 좀처럼 계승하기 어려운 존재이며, 역사 속에서 아주 드물게 자신의 동요와 긴장감을 읽어줄 '사상의 번역자'를 만날 수 있다. 그 드문 '사상의 번역자'가 루쉰에게는 다케우치 요시미였으며, 다케우치 요시미에게는 쑨거였다."

프레시안 : 아직 출간되지 않은 <사상의 원점> 서문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방금 '사상의 번역' 이야기도 하셨는데, 일련의 책을 읽으면서 독특한 번역론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 책을 읽다보니 루쉰에서 다케우치 요시미, 다케우치에서 쑨거로 계승되는 어떤 흐름이 반복해서 목격돼요. 먼저 구체적인 만남의 사건들에 대해 묻고 싶어요. 2007년 도쿄에 간 목적이 쑨거 선생의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나요?

윤여일 : 저는 2007년 봄부터 도쿄에 있었고 쑨거 선생이 도쿄에서 체류하기로 결정하신 것은 2007년도 하반기이니 선생의 수업을 듣고자 일본으로 간 건 아니었어요. 대신 선생이 2008년에 체류하시기에 저도 1년간 체류 기간을 연장했어요.

도쿄에서의 교류에 앞서 2005년에 베이징의 선생 자택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말씀드렸다시피 2004년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의 짧은 강의가 그분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당시 선생의 인상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석사 논문을 마치고 이후 공부의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차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www.jadam.kr 2014-07-14

당시 저는 중국어도 일본어도 못했는데, 재일조선인 친구 김우자 씨에게 부탁해 그가 동행해 통역을 해주었죠. 쑨거 선생을 뵙고 당시의 고민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어요. 선생은 어설픈 이야기를 경청하고 애정 어린 조언도 해주셨어요. 이 사람은 스승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고, 차분히 선생의 글을 읽고자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을 번역하기로 마음먹게 된 거죠. 일본어를 배운 주요 동기도 쑨거 선생과 대화할 수 있는 빠른 길이었기 때문이에요. 중국어보다 익히는 데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사상사적 순서로는 루쉰-다케우치-쑨거겠지만 저는 반대 방향으로 접했어요. 먼저 쑨거라는 동시대 인물과 만났고, 선생의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을 독해하며 거기에 구현된 다케우치 요시미의 인물상에 매료되어 다케우치 요시미의 선집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리고 다케우치 요시미의 사상적 원점을 추적하다가 다케우치의 초점에 맺힌 루쉰 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고요. 전에도 루쉰의 글을 접한 적은 있지만, 이때부터 루쉰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어요.

프레시안 : <사상의 원점>에 "다케우치의 언어에는 불투명한 구석이 있다. 혼돈을 야기하는 사회적·역사적 먼지가 잔뜩 껴있다. 번역하려고 해도 번역 불가능한 요소가 남는다"라고 쓰셨어요. 이 번역 불가능성은 다른 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는데요. 왜 다케우치가 번역이 불가능한 사상가라고 생각하며, 그건 다른 번역 작업과 비교해서 든 생각인가요?

윤여일 : 제가 이제껏 번역한 건 쑨거와 다케우치 요시미의 글들뿐이니 다른 번역의 경험과 비교해보기는 어렵네요. 존 어리의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휴머니스트 펴냄)도 옮기긴 했지만, 그 경우는 지금 얘기하는 의미에서의 번역자란 자의식은 없었습니다.

둘에 한정해 말한다면, 제게 번역은 우선 정밀하게 읽기 위한 과정이에요. 솔직히 저는 외국어 서적 가운데 제가 번역한 책 말고는 통독해본 일이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필요한 부분만을 읽어요. 번역할 책을 고르는 경우에도 다 읽고 나서 번역을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어떤 계기로 확신이 들면 번역하며 정독합니다. 즉 애초 출간을 위해 번역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도 계약하지 않은 채 번역하고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저는 번역의 속도로 읽기 위해 번역해요. 번역의 속도로 읽는다는 건 원작을 형성되던 가상의 시간으로 되돌리는 일이죠. 원작의 작가가 한 문장을 적고 이어갈 다음 문장을 고심하던 시간을 엿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번역의 속도로 읽고 번역한다는 건, 한 문장을 번역으로 매듭짓고 서둘러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이음매로 들어가 한 문장 이후에 나올 수 있었던 가능성의 문장들을 떠올려보고 작가가 왜 저렇게 문장을 남겨야 했는지, 작가의 내적 고민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원작은 이미 완성되었으나 번역자는 번역의 경험을 통해 생성 중이던 세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실제로 다케우치 요시미의 문장은 번역하다 보면, "나라면 다음 문장을 어떻게 이어나갈까"를 자문하도록 이끕니다.

인용하신 문장에서 '번역 불가능성'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수사죠. 그건 다케우치 요시미는 번역자에게 문자적 번역 이상을 요구한다는 의미의 수사입니다. 그는 말할 때 속내를 다 내보이지 않았죠. 말할 때는 무언가를 삼키고서야 토해냈거든요. 문장을 쓸 때는 거시적 범주나 이론적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았죠. 대상을 기성의 지식에 꿰맞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상의 섬세한 결, 균열, 틈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표현을 길어 올립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관성을 따르지 않습니다.

개념을 사용할 때는 거기에 무게를 싣습니다. 지금 텔레비전을 켜보면 인간이 역사에서 힘겹게 만들어낸 개념들, 가령 정신, 혁명, 자유라는 단어들이 얼마나 헐값에 사용되는지 그 타락상을 목도할 수 있죠. 그는 개념들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겠다는 자의식이 투철한 작가였습니다.

또한 말을 신용하지 않는 유형의 작가였습니다. 말은 사고를 형상화하지만, 자신이 형상화해낸 말이 자신의 사고라고 속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용할 수 없더라도 자신의 사고가 세계와 맺어지는 일점이 바로 말입니다. 따라서 말을 최후의 거처로 삼을 수 없지만, 또한 말로서만 사고는 형상을 취해 현실에 닿을 수 있다는 역설적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죠. 다케우치는 그 점을 강하게 의식하며 집필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를 옮긴다고 번역해내기는 힘들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독자가 글을 읽는다고 그의 고민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정신적 문턱이 있으며, 독자는 자기 전환을 통해 다케우치가 남긴 문자의 의미를 자기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내야겠죠.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그의 글은 번역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비약과 섣부른 추상화를 허용치 않는 그의 지난한 사고 과정이 독자에게 오히려 보편적 물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의 언어는 타인의 삶과 내밀하게 맺어지려고 하죠.

프레시안 : '문자적 번역 이상의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가령 <여행의 사고, 셋>에서 쑨거 선생의 책을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이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그저 문자를 대응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문자가 쓰인 토양 자체를 새로 만들어 내야 하는 입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여행하듯이 말도 여행을 한다. 여행이 그러하듯이 번역되는 원작도 환경의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원작의 원어는 그것이 출현한 시대와 상황에 잔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저 단어 수준에서 말들을 대응시켜 번역해본들 그 잔뿌리들은 우두둑 뜯겨나간다. 원작의 생명력을 보존하려면 번역자는 그 원작을 낳은 토양을 지반째 옮겨야 하지만, 결국 번역에서 가필하거나 새로 쓰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번역은 원문이 지니는 가능성의 폭 안에서 그 생명력을 되살려내는 금욕적 실천이다. 번역자는 번역을 통해 다른 시대와 상황, 그리고 언어의 토양 안에서 원작을 되살려 낸다. 벤야민은 이를 두고 '원문의 사후의 삶'이라고 불렀다." (144쪽)

www.jadam.kr 2014-07-14

윤여일 : 네. 그건 '사상의 번역'이라는 문제의식에 관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범박하게 말해서 하나의 사유가 출현한 장소 바깥으로 유의미하게 전달될 때 그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을 거 같아요. 한 가지는 그것이 출현한 장소에 내리고 있는 잔뿌리를 털어내더라도 생명력을 지닐 수 있도록 번역 가능성을 내장하는 방식이죠. 이런 경우 추상도는 높아지며 대개 이론의 형태를 취합니다. 그만큼 다른 장소에서 응용 가능성도 높아지죠.

다른 한 가지는 애초 그 사유가 발화의 장소에 깊게 뿌리를 내린 경우입니다. 굳이 이론과 대비하자면, 저는 이걸 사상이라고 불러요. 사상은 자신의 시대와 함께하며, 이론과 달리 자신의 시대에 쓸려 내려갈 운명입니다. 그래서 사상은 그 모습 그대로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전환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즉 번역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때의 번역은 문자적 번역이 아니죠.

사상의 번역에서 의미의 등가성이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등가관계란 경계를 넘어 동일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사상의 등가성이란 조건은 다르지만 고민의 심도가 닿을 때 발생하는 마주봄이며 대화라고 부를 수 있겠죠.

너무 추상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으니 예를 들어 볼게요. 저는 다케우치가 자신의 상황에서 내놓은 고민과 발상을 제 상황으로 옮겨보려 한 적이 있었어요. 가령 2008년 촛불이 한창이던 때 쓴 글은 다케우치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1960년 안보투쟁 시기에 제출했던 '체험의 일반화'라는 테제를 저의 상황으로 이식해보고자 한 것이죠.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어요. 일단 달아오른 운동은 늘 분화의 계기를 품기 마련이죠. 촛불 운동처럼 여러 세대, 다양한 계층과 배경의 시민들이 참여한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운동이 절정을 지났다는 인식이 발생하면, 그 이미지는 빠르게 확산되어 실제로 운동이 힘을 잃게 만듭니다. 운동이 고양되는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목소리도 공동의 화음을 이루지만, 공동의 목표를 상실한 다음에는 같은 현실도 체감하는 방식이 갈라집니다.

저는 촛불 운동이 고양된 분위기 속에서 연대의 기초를 단단히 다져놓지 못한다면, 그 에너지가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소멸될 때 찾아올 허탈감이 두려웠어요. 그래서 앞으로 찾아올 분화의 계기를 먼저 상상하고 촛불 운동이 생산한 무형의 성과를 주목하여, 그것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보다 많은 이들의 공통된 체험으로 일반화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물론 제 글은 당시 쏟아진 숱한 글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죠. 다만 다케우치 요시미의 고민을 제 상황으로 옮겨보고자 시도했던 하나의 사례로서 말씀드립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자신의 현재 혹은 미래를 쑨거의 '사상의 번역자'로서, 혹은 번역했던 사상가인 다케우치와의 공동 생산자로서 생각하고 있는지, 그런 위치로 자리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중요한지를 묻고 싶습니다.

윤여일 : 쑨거 선생께 이렇게 물은 적이 있어요. 종종 회자되는 '루쉰-다케우치 요시미-쑨거'라는 계열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쑨거 선생은 그들과 나란히 거론되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죠. 그들이 자신에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요. 저로서도 그들의 여러 사상적 계승자 가운데 한 명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뿐이네요. 그들의 다음 세대로서 그들의 고민을 나름대로 이어받고자 합니다.

저는 일본 사회에 어떤 애착을 갖고 있어요. 그곳에서 한동안 살아서기도 하지만, 일본 사회는 제가 애정을 느끼는 인간이 출현하고 자라났던 토양이며, 일본 사회의 문제가 그 인간의 과제였기 때문이죠. 그 인간에 대한 애정이 그 사회를 향한 관심과 무관할 수는 없겠죠. 다케우치 요시미만이 아닙니다. 일본에는 지금의 열악한 조건에서 분투하는 제 친구들이 있어요.

얼마 전 총리인 아베 신조의 망언을 접하며 저는 '아베가 너무 싫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힘들게 고민하고 있을 일본의 친구들도 떠올랐습니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저는 그들과 고민을 매개해 같은 세대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들의 적은 저의 적이기도 합니다.

만약 제 친구들이 저처럼 "다케우치라면 지금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는 함께 다케우치의 다음 세대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쑨거 선생은 저보다 연장자지만, 그 각도에서는 같은 세대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종류의 세대의식에서는 생물학적 나이보다 시대 인식이나 고민의 내용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케우치 그리고 루쉰의 '고민의 계승자'가 되고 싶습니다. 함께 계승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동아시아라는 고뇌, 고뇌의 동아시아
프레시안 : 이제 동아시아라는 공간에 대해 물어볼 차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글 속에서 동아시아는 단지 지리적 공간으로만 불리고 있지 않아요. 동아시아를 지리적 공간이 아닌 공동의 사유의 공간으로, 혹은 타자의 고투를 나눠 갖는 장으로서 '번역 공간'이라고 명명하고 싶다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동아시아를 지리적 실체가 아닌 사상적 물음으로 삼는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생각의 절차란 어떤 걸까요?

윤여일 : 지난 글들을 들춰보니 제가 자주 꺼내는 화두들이 있었어요. 지금 인터뷰에서도 반복된 것 같은데 지식의 윤리성, 사상의 번역, 고뇌의 연대, 맥락의 전환과 같은 것들이죠. 제게 동아시아는 이것들이 모두 함유된 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지역을 살아가는 이들이 '동아시아'를 인식하려면 그것은 자기 인식 그리고 자기와 관련된 타자 인식을 요구합니다. 동아시아라는 사유공간에서는 인식 주체와 대상 혹은 타자가 매개 없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유동적 상황 속에서 한데 얽혀 있죠. 대상에 대한 인식이 대상을 거쳐 자신에게로 되돌아오죠.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윤리성을 시험하는 장일 수 있습니다.

'사상의 번역'에 관해서는 방금 말씀드린 것 같으니 '맥락의 전환'과 '고뇌의 연대'라는 문제의식과 관련해서만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맥락의 전환'은 한 사회에서 올바른 주장, 일국의 논리가 다른 사회에서는 그대로 통하지 않기에 고민해야 할 주제죠. 이 지역 내의 국가들은 함께 동아시아 공동체를 입에 담지만, '공동 번영'이라는 수사로는 감출 수 없는 적대 관계가 잠재해 있죠. 무거운 역사 기억, 영토 문제, 근대화를 향한 각축 가운데 각 사회 사이에 적대성이 어지러이 깔려 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정치적 올바름과 정형화된 이론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바로 동아시아는 단일 사회라면 등장하지 않았을 '맥락의 전환'이라는 문제가 발생하는 공간이죠.

도식적인 정리이긴 한데,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는 '고뇌의 연대'를 모색해야 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의 연대는 '동아시아 공동의 인식'을 모색한다는 섣부른 기대로 성사될 수 있는 일이 아닐 겁니다. 지리적·역사적·정치적 규모와 사회 체계의 차이로 말미암아 각 사회의 표상은 그대로는 교환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렇듯 각 사회가 처한 현실이 다르다면 기도할 수 있는 연대는 '조건의 연대'가 아닌 '고민의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즉 같은 조건을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한 연대가 아니라 조건은 다르지만 서로의 고투의 농도 그리고 심도가 닿는 연대입니다. 그리하여 중요한 과제는 공동의 조건을 확인하거나 이념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타자의 고투를 나눠 갖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투의 내실을 그대로 나눠 갖는 일은 비대칭성, 적대성, 몇 겹의 분단선으로 인해 불가능하죠. 따라서 서로의 고투는 서로에게 번역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다보니 다시 '사상의 연대'로 돌아오게 되는군요. 결국 저 용어들이 각각 어떻게 다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동아시아를 '맥락의 전환' '고뇌의 연대' '사상의 번역'을 기도하기 위한 장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그 방향으로 노력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 '동아시아가 지리적 실체라기보다 사유의 공간이다'라는 지금의 말은, 소위 동아시아론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요. 학계의 주류 관점과는 다른 건가요?

윤여일 : 한국 학술계 내에서 동아시아가 이토록 회자되는 건 지역적 범주 이상의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겠죠. 동아시아는 이념적 가치를 띠고 운운되기도 하며, 제도적 권역의 한 가지 이름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구상해나가야 할 미래상인 '기획의 동아시아'가 있다면,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과제와 관련된 '기억의 동아시아'도 있겠죠. 또한'지역 패권' '지역 질서'로서의 동아시아가 있다면, '지역 연대'로서의 동아시아도 있습니다.

동아시아를 사유공간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저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께서 노력하고 계십니다. 다만 그 사유공간을 이해하는 각도는 다를 수 있을 테며, 저는 저러한 몇몇 화두들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www.jadam.kr 2014-07-14

프레시안 : <사상을 잇다>를 보면 도쿄에 있을 때 만나게 되었다는 물음이 하나 있어요. 일상의 번역 감각과 관련된 건데, 외국 생활이나 적어도 해외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조금씩은 느껴봤을 문제입니다.

"도쿄에서 지내며 학회 등의 자리에서 만난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화제가 국가주의나 계급갈등 등 사회 문제로 번져가곤 했다. 그때 상대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들추면 나도 그런 문제가 한국 사회에 있다는 식으로 맞장구치곤 했다. 물론 비슷한 문제가 양측 사회 속에 있을 수도 있지만, 실은 양상이 다른데도 상대와의 우호를 위해 혹은 대화의 소재를 끌어내고자 그렇게 말하곤 했다. (…)

맥락이 다른데도 양측 사회의 문제를 비슷하다고 전제하는 이런 대화에서는 미묘한 대목이 가려지며, 말의 위상에서는 같은 용어를 주고받지만 결국 문제 상황의 무게는 서로가 공유하지 못하고 만다. 여기서 나는 타국인과의 교류에서 '나'라는 개체가 모어사회의 상황이나 역사를 얼마만큼 동일시해서 대화 속 소재로 활용해도 되는가라는 물음과 만났다." (9쪽)

이른바 '국제 교류'의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어사회의 역사나 현실을 자신의 재산처럼 사용해 상대와 교환하는 감각"에 대한 얘기인 것 같은데요. 이 문제와 관련된 대화 속에서 쑨거 선생은 "자국에서 태어났다고 모어문화 안에 있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모어문화에 진입하려면 만만치 않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한 진입은 대표성을 무너뜨림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국가라는 큰 정치의 전제 위에서 아무것도 매개로 삼지 않은 채 자신의 언동을 결정하기란 한 개인으로서 거의 불가능" 함도 지적하고 있어요.

어쨌든 이런 순간에 누구나 '한국인'으로서 대표성을 갖고 발언할 수밖에 없는데, 한편으론 이걸 무너뜨리지 않으면 모어사회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역설로도 들려요. 대표성을 무너뜨린다는 건 어떻게 가능한지, 또 이런 모순된 상황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윤여일 : 대표성을 문제 삼는 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상호 단순화를 경계하기 때문이죠. 여행도 마찬가지인데, 모어 사회에 근거해 여행지의 실상을 단순하게 이해한다면, 실은 모어 사회에 대한 이해 방식도 단순해지죠. 역의 각도에서 말하자면, 타지의 사건에 대할 때 단수가 아닌 복수의 맥락을 의식하며 접근해야만, 자신이 속한 사회 내부의 간극과 틈새로 진입하는 민감함도 길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국제 교류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국제 교류'라는 말이 지닌 함정이 있죠. '제(際)'라는 말을 사용하니 교류는 나라 단위로 발생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쑨거 선생은 그 '제'를 나라 안으로 내재화시키려 하셨죠. 그게 <아시아라는 사유공간>(김월회·최정옥 옮김, 창비 펴냄)을 끌어가는 중심축입니다.

제 경우 여행은 타지를 거쳐 제 사회 속으로 진입하는 행위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다니며 '어떻게 상호 단순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문제의식의 개발을 얻기도 하죠. 또한 이를 위해서는 타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멋대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진정 애정을 갖는다면, 그 대상은 자신의 사고를 초과한다는 걸 인정하는 수밖에 없죠. 애정을 갖는 대상이야말로 진입해야 할 대상이지만, 진입하기 어려운 대상이기도 합니다.

중국 연구자로서 다케우치 요시미는 '내재하는 중국'이라고 표현했어요. 중국이라는 대상은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 그리고 자기 안의 고통으로 존재할 수 있을 때에만 중국은 진정한 대상일 수 있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대상 속으로 자신을 투입하고 또 끄집어내는 왕복의 과정을 반복하며, 대상의 변화는 자신할 수 없지만 자신이 변화할 때 진정 교류라는 게 발생했다고 할 수 있겠죠. 동아시아의 교류도 그러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나눔 문화 : http://www.nanum.com

제공:나눔문화,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4.07.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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