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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은 사람으로부터 자연과 인간 사이에 교감되는 감성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고 단순히 기계적으로 행해지는 의술이나 각종 제약품 같은 것에 굴종하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 건강관리란 사람이 스스로 찾아야 하고 자연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영역에서 벗어나 특정 전문가 집단이 관장하는 독점 영역이 되고 말았다.
사람은 이제 건강을 의료 서비스에 전적으로 의뢰해야 하게 되었다. 사람은 건강에 필요한 정보를 의료전문가들로부터 받아야 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자기 몸의 건강관리의 주인이어야 할 사람은 이제 기술 서비스를 받아야 할 종속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의료 서비스가 첨단화되어 가면 갈수록 사람은 더욱더 스스로 건강을 살피며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현대 의학의 발달은 사람들로부터 치료의 자신감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 권한이 거의 없게 되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건강을 관장하는 특수 계급이 형성되고 그들이 그 사람들로부터 물적 이득을 징수하는 변의사회가 출현되었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의문이 일어난다.
건강관리란 원래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이며 각 사람이 자기의 건강을 지켜야 할 것을 자연이 가르쳐준다고 믿는다. 사람의 몸은 자연계의 일부이며 자연에서 치료와 치료 자원들을 찾을 수 있는 존재이므로, 자연으로 돌아갈 때에 사람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사람은 다시금 자연을 배워야 하며 자연계가 준비하고 있는 각종 채소와 과일, 나무 열매, 약초와 그 엑기스를 찾아야 한다. 자연건강에 관하여 동양 철학은 무엇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를 우리는 다시금 살펴보기로 하자.
I. 도법자연(道法自然)
“도법자연”, 노자의 도덕경 25장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이 실천해야 할 도(道)를 자연에서 본받아야 함을 일깨우는 구절이다. 자연건강을 희망하는 사람은 이 말을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건강생활을 하다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자연에게 물어본다. 사람의 몸은 자연계의 일부이며 또한 한 친족과 같은 것이므로 문제가 있다면 가족이나 친구에게처럼 자연스럽게 물어볼 수 있다. “나는 어떻게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겠소?” “나는 어떻게 장수할 수 있겠소?”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하겠나이까?” 등등 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 시대에 자연건강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계에서 건강 원리를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류 건강을 위한 이상적 식품이란 살생하여 얻은 동물 고기가 아니라 신선한 과실, 곡물, 나무 열매, 푸른 잎채소, 견과류, 씨앗 등과 같은 자연계의 소산물에 있음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공업발달과 함께 대기오염, 물 오염, 지구 상토 층의 황폐 등 자연계가 파손되는 문제들이 초래되었다. 한 과학적 조사에 의하면 1930년 이래 근년까지에 75000여 화학물질이 대기에 주입되었으며 사람의 몸에서 독소들이 검출되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농업은 더욱더 석유 화학에서 파생된 농약들, 화학비료, 제초제, 살충제 등에 의존하여 토지는 더욱 황폐되었다. 거기에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목축업은 동물들에게 성장 호르몬과 항생제 등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은 토양의 미생물들을 파멸시켜 토양을 황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심히 해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자연식품의 질은 더욱 부실해 가고 병들어 가는 사람의 영양소들을 온전히 채울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자연 농토에 의존하여 살도록 그 몸이 형성된 만큼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에 각종 질병들과 변태적인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특히 지난 50여 년 동안에 자연건강 과학자들이(Alternative medicine) 자연계에 숨어 있는 치료를 탐구해왔으며 건강에 유익한 자연 자원들을 발굴하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들 자연 과학자들이 의식하고 못하고를 막론하고, “도법자연”의 사상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II. 자타일체(自他一體)
자타일체는 나와 남을 하나로, 나와 다른 생명을 하나로, 혹은 같은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문구로서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있다. 즉 사람의 몸과 흙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라는 뜻이다.
내 몸은 흙이다. 왜나 하면 사람은 흙에서 나온 존재이며 흙에서 생산된 자연식품으로 그 영양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와 흙, 그리고 작물은 하나이다. 이와 같이 “자타일체”의 뜻을 좀 더 크게 확장시켜 가면 지구의 모든 인류와의 화합하는 관계에 도달된다.
사람은 자신을 온전히 알게 되면 자기 이웃을 알게 되는 것이고, 하나의 도를 온전히 깨우치면 만고의 도를 품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 41장에 “문 밖을 나서지 않고 세상을 보게 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나의 고질병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이웃의 고질병과 고통을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게 된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질병을 몸에 담고 산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우리는 자신의 신병을 해결하지 못하고 무력해져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내 건강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오로지 전문가의 손에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으므로 더욱 문제가 커져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진지하게 자신의 신병을 살피고 자신의 병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이웃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리고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몸에 안 좋은 “나쁜 음식”을 즐기는 것, 그리고 “순환기 장애”로 혈액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것, 이 두 가지만 해도 많은 질병들을 다스릴 수 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약 100조 개쯤으로 추정한다. 각 세포마다 생존을 위해서는 매일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고 배설을 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몸은 동맥과 정맥으로 이어지는 고도로 복잡한 순환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맥은 모든 세포에 영양을 조달하는 일을 맡고 정맥은 배설물을 빼내는 역할을 한다.
인체 혈관의 길이는 약 96,000km 정도로 지구 두 바퀴가 넘은 길이를 가지고 있으며, 심장을 중심으로 하루에 천 번 정도 순환한다고 한다. 이 순환계의 정상적인 흐름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수분 섭취량으로 우리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
오줌색이 노랗게 나오지 않을 정도의 수분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 물의 섭취량은 체내 독소를 배출하는 데 결정적 영양을 미친다. 이것만 잘 실천에 옮겨도 건강은 많이 개선된다. 여기게 가볍게 걷는 운동을 병행하는 것도 건강을 더욱 좋게 한다.
영양의 균형은 무엇일까 간단히 생명에 필요한 유기 영양과 무기 영양의 균형을 말한다. 어떻게 하면 그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껍질과 알맹이를 동시에 섭취하는 것이다. 그리면 저절로 생명이 요구하는 영양의 균형을 자연스럽게 잡아줄 수 있다. 껍질을 벗겨낸 흰쌀밥은 우리 몸을 산성화시켜 골다공증 그리고 당뇨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간단한 몇 가지를 가지고 건강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첫째로, 현미잡곡밥을 주식으로 한다. 둘째로, 양지 질은 치약 대신 천일염 가루로 한다. 셋째로 물은 오줌색이 노랗게 나오지 않을 만큼 마신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건강이 호전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으며, 우리는 건강문제로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자타일체”의 동양철학에서 우리는 자연건강의 참 정신을 배워야 한다.
III. 성속일여(聖俗一如)
“성속일여”는 종교적 삶과 세속의 삶을 분리할 수 없다는 종교 논쟁에서 쓰여 진 문구이기도 하였다. 이 문구의 사상을 문자 그대로 극단적으로 확장시킨다면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음과 그릇됨, 선과 악, 천국과 지옥이 하나이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포용성을 가지고 확장시킨다면 “악이 있는 곳에 선의 가능이 있을 수 있으며 선이 있는 곳에 악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논리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악인이 선인으로, 선인이 악인으로 변화 된 실지 경험들을 가지고,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성속일여”을 “약과 독은 같은 물질이다”라고 한가지로 결단하기보다 자연건강을 구하는 사람은 포용성을 가지고 “약도 과하면 독이 되고 독도 적당하면 약이 된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특효가 있는 약일지라고 그 한 가지만 지나치게 가치를 두고 과하게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고, 또한 그와 같이, 독이라고 해도 전연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것은 자연이 아님을 말한다. 그래서 어떤 물질이나 어떤 생명에게 절대적인 선과 악의 꼬리표를 붙이는 일은 현명한 일이 아님을 가르친다.
서양 학문과 과학이 판을 치게 된 이래 사람들을 건강관리자로서의 자리를 잃게 되었으며 전통적인 농업기술이나 농업 생산품들까지도 가치가 하락되어 갔다. 자연을 사랑하고 노래했던 동양철학은 멸시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특별히 지나간 50여년에 있어서 자연계의 극심한 오염과 파손 그리고 새로이 경험한 병 증상들은 서양 과학과 의학에 대한 의문과 재평가의 필연성을 가지게끔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동양철학의 가치와 재발견을 유도케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건강관리에 있어서도 “성속일여”의 관점에서 건강관리의 기반을 세워야 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우리는 다시금 동양의학이라는 극단으로 달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속일여”의 근본 취지는 극단을 피하고 중용(中庸)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자연식품이라 해서 모두 선이 될 수 없으며 서양의학이라 해서 모두가 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 한 쪽에 지나치게 치우치며 다른 한 쪽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데에 악이 있는 것이다.
자연식품의 선택에 있어서나 혹은 자연식품의 대용으로 영양보조 식품을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도 우리들은 건강관리의 주인이며 중용의 원리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주인이 된다는 일이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도 깨달아야 한다.
건강관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돈벌이 이상의 분투노력이 있어야 한다. “성속일여”는 우리에게 중용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중용의 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선입견이나 지식을 버려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며 혹은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던 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아량과 민첩함 그리고 겸손도 필요하다.
IV. 산야초 공생(山野草 共生)
“산야초, 풀과의 공생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 산야초와의 공생이 아니면 극복할 수 없는 아주 심각한 문제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산야초가 작물과 수분 경함과 양분 경합을 일으키거나 병 발생을 조장할 수 있어 작물 생장에 좋을 것이 없다는 단편적 사실에 이제 그만 연연하자”하며, 조영상 대표은 그의 저서를 통해서 호소한다.
2012년, 조 대표는 농산물 수입개방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농업 초강국으로 이끌리라는 대망을 품고 ‘친환경 유기농업, 초저비용으로 가는 길’(Ultra Low Cost Agriculture ULA Korea!)이라는 근대 농업혁명의 불을 붙이는 대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날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산야초는 원수의 자리에 서는 존재이다. 산야초와 대항하고 그것을 전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사람은 화학 제초제를 개발하였다. 석유 화학에서 파생된 농약들, 화학비료, 제초제, 그리고 살충제 등을 가지고 산야초 항전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산야초의 종자가 농토에 떨어지는 것을 아예 막아버리기 위해서 비닐로 땅을 덮어버리는 작업들까지도 감행되고 있다.
토양에 제초제와 화학 비료를 뿌리는 일, 비닐로 토양을 덮어버리는 일, 그리고 그 화학물질을 이겨낼 수 있는 GMO식물(유전자 조작 농작물)을 심는 일이란 토양의 생리나 사람의 건강을 전연 무시하고 오로지 편리성 하나만으로 농업을 바라보는 결과이다. 그것은 “도법자연”, “자타일체”, “성속일여”, 그리고 “산야초 공생”의 사상에서 멀어진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농약의 사용량에 있어서 한국은 세계에서 1워를 차지하고 있음이 발표되었다. 영국의 2배, 폴란드의 16배, 캐나다의 21배 이상을 소비하고 있는 형편이다. 화학비료의 사용량도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축산과 육류 생산에 사용하고 있는 항생제의 양도 전 세계의 1위를 차지고 있음이 보고되었다. 한국이 경제대국을 달성했다고 자랑스럽게 되었지만, 어쩌다 국민 자신들의 건강에 직결되고 있는 토양의 질을 세계 나라들 중에서 극악으로 황폐케 만든 지경까지 전락하게 되었는가!
이러한 농업세계를 구하고자 조영상 대표는 “산야초 공생”의 철학을 시범해 보이는 여러 농업기술과 농약들의 모델을 제시하였다. 편리를 구하는 농민들에게 산야초는 멸종시켜야 할 것으로 보였지만, 조 대표는 바로 그 산야초가 현대 농업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음을 발견했다.
산야초는 깊은 땅속의 미네랄을 지상으로 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온난화로 인하여 일어나는 조기 개화와 동해와 냉해의 문제 등을 해결해 주는 자연계의 해결사임을 그는 증명해 보였다.
“자타일체”, 사람의 생리란 크게 봐서 토양의 생리와 다를 봐가 없는 것이다. 토양의 영양을 흡수하는 산야초를 제거할 목적으로 혹은 토양의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려는 목적으로 개별적으로 화학약품들을 투입하는 일은 토양 생리를 해치는 일이며 작물이 원하는 영양의 균형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케 한다. 이와 꼭 같은 일들이 사람의 몸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암을 정복하기 위해서 항암 약품과 라디에이션 광선치료가 실시된다. 오늘날 비만증은 날로 증가일로에 있다. 골다공증과 관절통, 당뇨병과 고혈압, 우울증과 치매증, 위병과 피로, 전립선과 발기불능, 수면 문제 등을 위해서 제약회사들은 갖가지 화학약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그 약품들 가운데서 그 하나도 부작용이 없는 약이 없다는 사실이 이제 공개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그것은 건강 생리가 파괴되고 영양적 불균형이 초래된다는 말이다. 화학약품과 영양소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종류의 물질이며, 화학약품은 우리 몸에 긴요한 영양소들의 결핍을 결코 메울 수 없다. 우리는 “산야초 공생”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야 하며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자연이 준비한 산야초에서 우리의 질병들을 치료할 수 있는 영양소들을 찾아야 할 시대가 도래 한 것이 아니겠는가?
조영상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2.10.1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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