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부터 ~ 11일까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두일리 해발800미터 오대산 숲속에 있는 원중연님의 자연농장을 방문했다.
모처럼 국도를 따라 가평과 홍천 그리고 횡성과 평창에 걸쳐 펼쳐진 오색의 단풍들의 장엄함에 유난히 눈길이 갔던 길이었다. 때마침 진부 골골에 살고 계시는 농부들의 한 해 동안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체육행사가 진부농협주관으로 진부천변 체육공원에서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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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jadam.kr 2008-10-23 [ 류기석 ]
▲ 해발800미터 오대산 깊은 숲속에 있는 원중연님의 자연농장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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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마중 나온 원중연님의 안내로 방아다리마을에서 준비한 특색 있는 점심식사를 대접받고는 각 마을끼리 단합된 마음을 엮어내기 위한 유쾌한 운동회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오대산 전체를 들썩이게 했던 이 잔치가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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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농업전도사 원중연님은 새로운 농사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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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국내통화의 대외가치폭락, 증권시장의 주가붕괴, 자본의 국외도피 및 유출, 부동산가격의 폭락, 대량실업의 발생, 대외채무에 대한 원리금상환 압박 등에 심상치 않은 조짐이 일고 있다.
한편 경기는 불황인데 대낮에도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로 호황을 누리는 곳이 '럭 비즈니스'란다. 서민들은 단순한 부의 재분배라는 사회정의 차원이 아니라 거의 분노, 혹은 증오 차원에서 과거와 반향되는 삶의 가치에 아연 실색한다.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 문화와 지식으로 쌓아온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관계는 산업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근본적으로 변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굶주리는 세계는 식량과 농업부문을 기술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결국 농산업이라는 분야를 만들어 많은 모순을 숨긴채 오늘에 이르렀다.
인류가 먹고사는 식량의 원천인 농업이 정치보다 이윤, 문화보다 경제, 질보다 양인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사회에 끼친 손실들은 환경오염과 토양의 죽음, 경관의 파괴, 에너지자원의 고갈, 생물학적 생물다양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상실을 가져왔다. 이는 특정 생태계안에서 어떤 식물을 재배하는 방식, 그것이 가진 이로운 점들에 대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농산물의 사용과 가공 및 준비에 대한 가치를 잊어버리고, 헤아릴 수 없는 지적 유산을 상실하게 만든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이후 외국 식품이 토종 먹을거리와 구별되지 않으면서 우리의 식단은 멜라민·농약·중금속·발암물질 등과 유전자 변형식품의 유해성 논란, 식중독 사건까지 안전성을 걱정해야만 할 형편이다. 더욱이 사회의 약자인 가정주부, 오염된 먹거리에 노출된 아이들, 경제적 이유로 굶주린 사람들과 한미FTA로 결정타를 입은 농민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먹거리가 생산되고 수송, 가공, 유통, 판매, 조리되는 전 과정, 즉 식품사슬(Food chain) 곳곳에서 우리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먹을 음식을 매끼마다 오염유무를 확인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식품 안전관리 능력을 발휘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 챙겨 주어야하지만 그 일은 아마도 요원하기만 하다.
우리에게는 먹을거리를 철저하게 관리 및 감독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있는데 왜 이리도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일까 결론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맡긴 격이라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도덕성이 문제일 것이다. 대안은 간단하다. 검사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공무원들을 순환보직 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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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화장실은 농산물을 완전히 유기물 발효시켜 땅으로 되돌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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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화장실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이 심상치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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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들의 생명과 직결된 먹거리는 이윤 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전락했다. 그 이윤이라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적절한 요구수준을 충분히 고려해서 만족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일방적인 상혼이다. 최고급 브랜드만을 선호하는 소비자정신과 상품 하나하나마다 생산자의 윤리적·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담겨있지 않은 먹거리가 문제다.
음식이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시대가 왔다. 쉽게 먹고 버릴 수 있는 편리성 때문에 세계를 휩쓸었던 패스트푸드의 열기가 가라앉고 웰빙 음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면서 다음 세대의 음식산업을 이끌 먹거리가 무엇일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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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한농부 프로젝트, 새길을 찾는 사람을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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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는 종교인들이 예배의식에 참가하면서도 먹거리의 안전과 복지, 친환경농업과 지역 먹거리, 공공급식 등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각자의 신앙생활에 따라 회개와 탄식을 하면서도 지역경제와 교육 그리고 사회복지나 정의, 생태적 삶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의 원칙은 이렇다. 전체적으로 생산자와 소비자를 다섯 단계로 구분한다. 비료와 농약 그리고 제초제를 쓰는 기존의 화학적 관행농산물생산자와 소비자는 5단계, 비료는 쓰지만 저농약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거나 먹는 소비자를 4단계, 화학적 농약과 비료는 전혀 쓰지 않는 단작위주의 대규모 유기농 생산자나 소비자를 3단계, 다양한 농작물들을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상태로 정성껏 키우며 이웃과 공생 공존하려는 생산자나 이것을 먹는 소비자를 2단계, 각자의 특기와 소질을 되살리고 야생의 식물을 채집, 최대한 발효하거나 방목하는 지역생산자와 그것과 연계된 공동체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소비자를 1단계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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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장 뒤편 산허리 춤에 신(神)이 빚은 단풍잎들이 매력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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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산 정체불명의 먹거리 그리고 각종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 등이 점점 더 확산되면서 외국산 먹거리의 소비 증대는 국내산 먹거리 시장을 잠식하여 농민들이 좋은 먹거리를 생산해놓고도 판매의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질 나쁜 먹거리의 섭취가 늘어나면서, 식중독도 빈발하고 있고, 먹거리로 인한 질환인 아토피, 천식 등이 늘어나고 있다. 또 고지방 식품의 소비가 늘면서 고혈압, 당뇨, 심장병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비만 인구 층도 급속하게 늘고 있다.
농민들이 겪고 있는 농업문제나 소비자들이 먹거리로 고통 받는 원인 중에는 이른바 다국적기업에 의한 세계식량체계의 작동과 관련이 있다. 가족농을 어렵게 하고, 나쁜 먹거리가 확산되는 쪽으로 전 세계 농업과 먹거리가 방향성을 틀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나라와 기업의 자본은 종자와 비료, 살충제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챙긴다. 이로 인해 생태계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고, 식량생산은 증가하나 굶주림과 영양실조는 해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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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만평에 달하는 자연농장의 새로운 농업이 절실하게 필요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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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사회적 관점에서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 생겼다. 시골사람들은 지역을 버리고 도시로 끊임없이 모여들어 문화소멸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발생했고, 전 세계의 지역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몸에는 우리 땅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좋다는 "신토불이"는 웰빙이니, 로하스니, 로컬 푸드니, 슬로우 푸드니 하는 외래적 표현에 밀리고 방송매체의 극성에 묻혀 어디론지 사라진지 오래다. 우리의 몸과 흙이 하나라는 뜻의 순수 우리말인 신토불이는 누구나 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고품격의 환경문화운동이다. 그러므로 나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자는 운동인 것이다.
한국의 "신토불이"와 더불어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지역에서 소비한다."라는 일본의 지산지소와 "우리 지역을 생각하고 지역생활자재를 사고 지역성을 살리자"라는 미국의 Think Local, Buy Local, Be Local는 뜻은 하나같이 농업대안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농업과 먹거리의 현실은 점점 더 악화일로인 WTO, 한미FTA 체제로 치닫고 있어 농부들의 영농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먹거리는 느림의 정신을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자연의 시간에 역행하지 않으면서 음식의 맛을 은근히 녹여내는 느림의 미학과 음식의 보존, 발효음식이 갖는 자연과의 상생 정신과, 절기마다 그에 가장 적합한 재료를 사용해 몸을 보양했던 음식문화다.
우리의 음식에는 모두 자연과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을 바라보았던 동양 철학의 진수가 담겨있다. 만드는 이의 정성과 손이 많이 가는 까다로운 점도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몸에 약이 되는 바람직한 문화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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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jadam.kr 2008-10-23 [ 류기석 ]
▲ 오대산 숲속에서도 언제나 세상과 교류하는 자연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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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농촌의 논과 밭에서 추수하는 농부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오히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진부면에서 두일리 산속에 있는 원가네 자연농장으로 들어서니 늦은 오후의 햇살이 상상력을 자극시켜줄 쪽빛 하늘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앙증맞은 흙집 한 채가 새롭게 치장하고는 손님을 맞는다. 손수 주변 지인들과 7일 만에 지었다는 흙집 아궁이에는 아침부터 우리들을 위해 준비한 장작불이 열심히 지펴지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역사문화연구가 이병화님과 고고학자 최삼용님이 함께 했다.
따스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는 잠시 눈을 부치다가 오대산 등줄기에 붙어있는 농장 뒤편 오솔길을 따라 쓸쓸한 10월의 가을을 만끽했다. 그곳은 산허리 춤에 신(神)이 빚은 단풍잎들이 매력적인 곳이다.
흙집 오두막에는 최삼용님이 과거 프랑스에서 맛보았던 스파게티의 진수가 오늘에 되살려지고 있었고, 이를 위해 서울에서 야심차게 장만한 찬거리와 더불어 농장에서 직접 기른 토마토가 제공되었다.
장엄하게 느껴지는 산하에서 밤을 맞는 우리들은 원중연님댁에서 마련한 특별요리와 함께 스파게티의 진수를 행복하게 맛보았다. 이어 21종의 자연농산물품목에 대한 2009년도 농사계획을 전해 듣고는 어려워지고 있는 유기농산물의 유통현실에 함께 가슴아파했다.
오늘날 바쁜 일상으로 인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빼앗기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만을 선호하는 습관으로 인해 자연과 사람 모두가 행복하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을 평창 원가네 자연농장에서 말끔히 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중연님은 뜻과 마음이 맞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정성을 기울이는 네트워크를 위해서 이제껏 유기농으로 대량생산해왔지만 앞으로는 농사방식을 바꾸겠다고 한다.
여기서 지인들은 개인 생산자는 조합을 결성하여 판매와 유통을 책임 있게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어 농산물이 약보다 좋은 물건임과 더불어 소비자 직거래의 방향성, 이야기가 있는 농업의 실현 등 특기와 보편성을 살려 도매상을 선택하고 소비자회원을 확보해야 됨을 강조했다.
다음날까지 이어진 오두막 정담은 우리들의 농촌과 농업이 처한 현실적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새로운 종류의 경작, 즉 진정으로 새로운 농업이 절실하게 필요함에 입을 모았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농산업 방식이 아직 존재하는 한 농업의 세계화 때문에 주변화 된 사람들의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들이 할 일은 이들에게 새로운 존엄성과 기회를 부여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과 먹고사는 것이 우리 삶의 중심요소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지역 안에서 소통하고 이웃과 먹거리를 나누는 문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연과 평화롭고 조화로운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는 강력한 운동이다. 우리가 먹는 것은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라야 온전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제 가족과 나의 먹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손을 뻗쳐 만날 수 있는 텃밭정원이나 베란다 화분에서 찾기를 바란다. 그래도 어려우면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유기적 먹거리를 생산하시는 착한농부와 친구로 지낸다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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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jadam.kr 2008-10-23 [ 류기석 ]
▲ 그곳에 가면 오대산의 장엄한 아침을 맞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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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기석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8.10.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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