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 풀 속에서 발견한 참외 |
"유 서방, 거기 참외 있으니까 먹고 해."
난데없이 철 지난 참외 말씀을 하시나 하며 예취기로 풀을 깎는데, 아니 이게 뭐야? 풀 속에 진짜 참외가 있다. 노랗게 익은 큼직한 참외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 살펴보니 파란 참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러고 보니 철이 지난 건 하우스 참외지, 노지 참외는 지금이 제철이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배도 출출하기도 해서 예취기를 끄고는 노란 참외 두 개를 땄다. 하나는 어머니 거, 하나는 내 거다.
감자밭 옆 도랑물에 참외를 씻어서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삭하고 달콤하다. 요새 노지 참외는 거의 없이 하우스 참외뿐인데 바랭이가 어깨까지 자란 감자밭 한 편에서 제 맘대로 자란 참외 맛이 기막히다. 노지 참외를 새참으로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감자 캐는 어머니를 바라본다.
▲ 흙 묻은 참외가 감자밭 옆 맑은 개울에서 목욕재계 하니 가을 햇살에 반짝거린다. |
어머니는 언제 참외 한 포기를 심어 놓으신 걸까? 55년 농사지으신 노하우로 새참 거리를 심어 놓으신 거라고 어림짐작한다. 어머니는 옛날에 가난하고 먹을 거 귀한 시절을 모두 겪으며 평생 농사일을 하고 다섯 남매를 키웠다. 본능적으로 논밭 자그만 빈자리엔 무어라도 심어 놓으신다. 얼치기 농사꾼인 나는 흉내조차 못 낸다. 그 자그만 자리에서 거두는 수확이 쏠쏠하다. 서리태며 들깨, 호박, 오이, 참외, 옥수수, 밤콩 등등. 반찬으로, 새참으로 알맞은 풍성한 먹을거리가 나온다.
농촌에서 10년간 농사지으며 보니 여자 농사꾼이 진짜 농사꾼이다. 통계로도 257만 농민 중 여성 농민이 51%로 남성 농민보다 많다. 어머니 같은 여성 농민은 아이 키우기, 가사 노동 등을 다 하면서 농사일을 해내왔다. 힘쓰는 일이나 농기계 운전이야 남자들이 해도 그 외 오만가지 몸으로 하는 농사일은 여성 농민들이 훨씬 잘한다.
▲ 풀과 함께 자란 노지 참외는 씨앗이 담겨있는 속까지 탱글탱글하다. 새참으로 하나 먹으니 든든하다 |
감자밭 한 귀퉁이 풀 속에 숨어있던 참외 한 알에 이 땅을 지켜온 진짜 농사꾼인 여성 농민의 지혜와 가치가 담겨 있다. 수렵채취를 하던 선사 시대에도 사냥 다니던 남자들보다 온갖 열매와 땅속 먹을거리, 약초를 모으던 여자들이 공동체의 지도자였다. 아이는 남자의 소유물이 아니었고 공동체 모두의 자식이었다. 지금 같은 가부장제 사회보다 그 시절이 평화로웠지 싶다.
농촌은 옛날보다 덜 하다 해도 여전히 여성 농민이 남성 농민에게 짓눌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머님도 평생 장인어른이 살아계실 때 경제권이 없었다. 내가 마늘밭 300평 소출을 팔아서 어머님께는 꽤 큰 목돈을 드리는 이유는 남성 농민의 잘못에 대한 속죄와 사과의 표현이기도 하다. 농사일과 살림을 도맡은 여성 농민이 모계사회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를 바란다.
* 본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동시 게재 됩니다. http://omn.kr/o3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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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문철 기자 단양한결농원 블로그 http://blog.naver.com/mcryu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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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철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7.09.0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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