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이런 일이 십대의 골칫거리인 여드름을 일으키는 세균이 포도나무에 안착(安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에게 질병을 초래하는 세균이 다른 생물계(界)의 숙주를 감염시킨 것으로 밝혀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은 새로운 계열의 Propionibacterium acnes 세균을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이 세균은 포도나무 세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연구진은 여드름균의 이 같은 적응(adaptation)이 야생 포도나무를 유실수(有實樹)로 길들이는데 보탬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연구진은 새로운 세균의 이름을 Propionibacterium acnes type Zappae(간단히 P. Zappae)라고 지었는데, 이것은 연구진 중 한 명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프랭크 자파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달 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에 실렸다(참고 1).
세균, 바이러스, 기타 미생물들은 종종 종간장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그네 세균이 새로운 숙주와 공생하게 된 사건은 대부분 근연관계가 있는 종에 한정되어 왔으며(참고 2-4), 근연관계가 없는 종 간의 사례는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참고 5-7). 더욱이 P. Zappae의 경우, 세균이 새로운 숙주에 완벽하게 적응하여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한 사례로 여겨진다.
사실 이번 연구결과는 예기치 않은 것이었다. 연구진은 본래 포도나무(Vitis vinifera)의 DNA를 연구하던 중, 갑자기 포도나무의 것이 아닌 유전자 시퀀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P. Zappae가 새로운 계열의 세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것이 정상적인 여드름균(P. acnes)이며, 뜻하지 않은 사고(예: 실험실에서의 샘플 오염)로 인해 포도 속으로 침투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이번 연구를 지휘한 Edmund Mach Foundation의 오마르 로타-스타벨리 박사(진화생물학)는 술회했다. 그러나 심층분석 결과, 포도에서 발견된 세균의 시퀀스는 포도에 상주하는 천연 세균의 것이 아닐 뿐더러, 전혀 새로운 계열의 세균의 것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인간의 피부에 서식하는 세균과 근연관계에 있지만 유전적으로 먼 친척뻘에 속하는 세균이었다.
연구진은 다양한 포도나무로부터 채취한 세균의 DNA에 근거하여, P. Zappae가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 포도나무에 침투한 것으로 추정했다. " P. Zappae가 포도나무에 침투한 시기는 인간이 처음으로 포도나무를 길들이기 시작했던 때와 얼추 비슷하게 들어맞는다"고 연구진은 말했다. P. Zappae가 종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포도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많은 가지치기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인 것 같다. 고대의 농부들이 가지치기를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손에 있던 세균이 포도 속으로 침투한 것으로 보인다. "포도나무가 전세계로 보급되는 과정에서, P. Zappae도 함께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리 놀랍지 않다"고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안드레아 캄피사노 박사(미생물학)는 말했다.
P. Zappae는 유전적으로 독특할 뿐만 아니라, DNA 회복장치가 부분적으로 비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DNA 회복장치가 비활성화되는 현상은 공생관계를 선택하는 세균에게서 종종 나타나는데, 이 경우 공생균은 숙주세포의 회복 메커니즘을 이용할 수 있다. 한편 P. Zappae의 인간 버전인 P. acnes는 인간의 피부에서 지방(예: 중성지방)을 먹고 사는데, 이것은 P. Zappae가 포도나무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포도는 많은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피지(sebum)를 먹고 사는 P. acnes가 침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로타-스타벨리 박사는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가 대단한 것은, 인간과 포도나무 간의 유전적 거리가 엄청나게 멀기 때문이다. 병원체들은 다른 생물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종종 어마어마한 적응력을 발휘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하나의 세균이 계통수의 가지들을 훌쩍 뛰어넘어, 동물에게서 식물로 침투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프랭크 지긴스 교수(진화생물학)는 논평했다. (지긴스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가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P. Zappae가 숙주 포도나무에게 - 공생세균을 보유하지 않은 야생 포도나무가 가질 수 없는 - 미지(未知)의 이점을 제공함으로써, 포도나무의 길들임 과정에 도움을 줬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연구진은 여드름균이 생성하는 물질(프로피온산: propionic acid)이 포도나무에게 모종(某種)의 이로움을 줬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향기로운 와인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은 여드름 덕분인지도 모른다"고 캄피사노 박사는 말했다.
※ 참고
1. Campisano, A. et al. Mol. Biol. Evol.
http://dx.doi.org/10.1093/molbev/msu075 (2014).
2. Walter, J., Britton, R. A. & Roos, S. Proc. Natl Acad. Sci. USA 108, 4645?4652 (2011).
3. Russell, J.A. & Moran, N. A. Appl. Environ. Microbiol. 71, 7987?7994 (2005).
4. Van der Merwe, N. A. et al. Plant Pathol. 62, 642?648 (2013).
5. Neuhauser, S., Kirchmair, M., Bulman, S. & Bass, D. BMC Evol. Biol.
http://dx.doi.org/10.1186/1471-2148-14-33 (2014).
6. Chaverri, P. & Samuels, G. J. Evolution 67, 2823?2837 (2013).
7. Nikoh, N. & Fukatsu, T. Mol. Biol. Evol. 17, 629?638 (2000).
키워드 : 포도, 여드름, Propionibacterium acnes type Zappae
출처: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원문:
http://www.nature.com/news/how-grapevines-got-acne-bacteria-1.14812 제공:kisti,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4.05.12 10:34
<저작권자 © 자닮,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kis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