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버섯이다. 식용인 이 버섯은 일 년을 꼬박 기다렸다가 딱 한 번 늦가을에 돋는다. 만일 조건이 맞지 않으면 해를 넘긴다. 그러나 때가 오면 지체 없이 돋아나 할 일을 다 마친다.)
버섯은 기후조건이 맞지 않으면 해를 넘길 때가 많다. 몇 년이라도 기다린다. 어떤 버섯의 포자는 몇 십 년 아니 백년이라도 잠복해 있다. 전혀 흔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죽은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습도와 온도가 맞으면 갑자기 무성하게 돋아난다. 버섯처럼 인내하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생장조건이 맞을 때까지 얼마나 잘 참고 기다리는지, 때를 기다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러나 때가 오면 지체하지 않고 돋아나 버섯을 피우고 포자를 날려서 할 일을 마친다. 버섯이 그렇게 빨리 돋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버섯의 수분흡수력 때문이라고 한다.
(민자주방망이버섯, 영어속명 Blewit, 학명 Lepista nuda)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인내하다가 갑자기 돋아나도록 만드는 계기(trigger)는 무엇일까 어느 학자는 영양분 부족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여러분들도 화초가 각박한 땅에서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을 만나면 더 일찍 꽃을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어느 학자는 기온의 급강하가 그 계기라고 한다. 식용버섯 가운데 민자주방망이버섯은 늦가을이나 초겨울 눈 속에서도 돋는 버섯인데,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면 돋는다는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영지버섯도 그렇지만 이 버섯도 칼로 줄기를 베면 또 돋아나서 일 년에 몇 번 딸 수 있다고 한다. 대체로 버섯은 한 번 베면 다시 돋는 법이 없다. 물론 그 균사는 땅 속이나 나무속에 오래 살아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버섯을 채취할 때 되도록 버섯이 돋은 죽은 나무나 땅 주변을 파헤치거나 건드리지 말고 버섯의 생장환경을 잘 보존해 주는 것이 좋다.
(잔나비걸상 또는 잔나비불로초[신칭]. 갓 표면에 나이테를 볼 수 있는 다년생 버섯의 하나이다. 맛이 좀 쓴 약용버섯이다.)
우리가 보통 버섯이라고 부르는 것은 식물의 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버섯은 그 생주기(生週期, life cycle)에서 포자를 만들어 번식시키는 기관인 것이다. 구멍장이버섯에 속하는 잔나비걸상 또는 잔나비불로초(Ganoderma applanatum, 영어속명 Artist's Conk) 같은 다년생도 있지만 대체로 버섯은 돋으면 순식간에, 짧으면 반나절, 길어야 일주일 정도 사이에 사라져 버린다. 이처럼 버섯은 반드시 다른 생물이 합성한 영양 유기물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고, 기후 조건이 안 맞으면 몇 년이라도 숨어 기다려야만 하다가, 버섯을 피우고서도 금방 사라지고 마는 부서지기 쉽고 여린 취약성(vulnerablity)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의 무상함과 생명의 덧없음을 가르쳐 준다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지체하지 않고 때가 되면 할 일을 다 마치는 모습에서 배우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홀로 외롭게 돋은 붉은점박이광대버섯, 학명 Amanita rubescens, 영어속명 Blusher. 외롭지만 저 할 일을 하고 있다. 이 버섯은 식용버섯이지만 적혈구를 파괴하는 용혈독소가 있다고 하니까 절대로 생식하면 안 된다. 맛이 좋다고 하는데 맹독버섯이 많은 광대버섯의 일종이어서 혼동하기 쉽기 때문에 시식조차 해 보지 않았다. 해마다 8, 9월에 비 내린 뒤 여기저기서 이 버섯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다.)
(붉은점박이광대버섯의 붉은 점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마치 연지 바른것 같기 때문에 영어속명 Blusher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버섯은 잘 돋으면 엄청나게 많은 수의 많은 양이 돋는다. 뽕나무버섯은 그 균사(菌絲)가 100km까지 뻗고, 450년, 길게는 1500년이나 된 것도 있다고 한다. 어느 해 가을에 산 속 숲에 들어갔다가 기절할 만큼 놀란 적이 있다. 작은 것도 있었지만 손바닥만한 뽕나무버섯이 온 산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리지어 온통 산을 뒤덮을 듯이 무수히 돋아 있는 것을 볼 때, 그 버섯이 식용일 경우 정말 푸짐하게 채취할 수 있다. 실제로 가을(9월 10월)에 참나무가 많은 산에는 언제나 뽕나무버섯 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참나무를 베어 낸 등걸마다 엄청나게 많이 돋고 있다. 또 어떤 버섯은 그 크기도 엄청나서 잎새버섯의 경우 다발(多發)로 돋은 한 송이가 얼마나 큰지 지름이 60-70cm에다가 무게가 약 15k이나 되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 버섯으로 찌개를 끓여서 30명이나 되는 청년들을 대접하였다.
(잎새버섯은 주로 죽은 참나무[Red or Black Oak] 등걸 밑에 많이 돋는데, 엷은 갈색이나 회색을 가지고 있다. 버섯 뒤에 죽은 나무가 서 있는데 많이 돋으면 그 나무를 삥 둘러싸고 여러 덩이가 돋는다. 오래 되어서 지름이 상당히 굵은 살아있는 참나무라도 그 둘레에 많이 돋는다. 가을에 한번만 돋는다. 이 버섯은 엷은 갈색이다.)
(잎새버섯 은 주름이 없는 구멍장이과에 속한 버섯이다. 학명은 Grifola frondosa. 항암성분이 높아서 약용과 식용을 겸하는 버섯으로 그 맛과 향기가 매우 좋다. 잎새를 한 장씩 떼어내어 밀가루를 입혀서 튀겨내면 영락없이 닭고기 튀겨낸 것처럼 맛이 좋다. 암탉의 뒤 깃털모양 같다하여 영어 속명이 “Hen of the Wood” 이다. 지방에 따라 "Sheep's Head"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린 것은 이렇게 진한 회색이다. 인공 재배할 수 있는 버섯이다.)
시장에서 흔히 보는 느타리버섯도 자연산인 경우 한 송이의 크기가 큰 접시만하여, 수십 송이가 중중첩첩으로 죽은 아름드리나무에 함빡 돋아 있어서 채취하였다. 집사람에게 전화로 오늘 딴 느타리버섯으로 이번 내 생일에 온 교인들(아이들 포함해서 약 150명)에게 대접하면 좋겠다하니, “아니 얼마나 많이 땄기에 그러느냐?”고 믿지 않았다. 실제로 그렇게 잔치를 벌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이어서, 사실 시중 가격으로 환산한다면 엄청난 액수일 것이다.
(느타리버섯)
버섯을 푸짐하게 채취할 때마다 신의 풍성함, 자연은 정말 넉넉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버섯에는 욕심을 내지 않게 된다. 언제나 필요하면 여러 종류의 식용 버섯을 항상 풍성하게 채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만나가 버섯의 일종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였다. 아침에 돋아나서 곧 사라지고 마는 만나, 하루 필요할 만큼만 채취해야지 욕심을 내어 더 많이 따서 저장하면 금방 부패하여 악취를 풍기는 만나, 나는 그 만나가 버섯이었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으나, 지금도 만나는 버섯의 일종일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신구약 성경은 버섯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그러나 학자들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만나가 버섯과 해조(海藻)류 사이의 복합체인 이끼종류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산느타리)
최종수(야생버섯애호가),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7.11.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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