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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주황색을 가진 Jack O'Lantern 버섯의 아름다운 모습. 갓이 피어나기 전 이 유균 버섯은 잔디 위에 돋았는데, 실은 땅에서 돋는 것이 아니고 땅 속에 묻힌 썩은 나무뿌리에서 돋는 것이다.)
(다시 알려드립니다: 연재되고 있는 이 글은 순전히 아마추어 야생버섯 애호가의 버섯 관찰과 버섯에 관한 명상의 글입니다. 혹시 야생버섯을 채취하여 식용하시려는 목적으로 이 글이나 이 글과 함께 실린 버섯 사진들을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최대한의 노력으로 정확하게 버섯을 동정해 내고 그 이름도 되도록 한국 버섯이름, 영어 속명, 학명을 모두 기록하려 하지만, 잘못 기재된 경우도 있을 것이오니 독자들의 조언이나 바로잡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편의상 한국이름을 모르는 경우 제가 임시로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사람이 미국 동북부 지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이 지역에서 만난 버섯과 그 사진들을 주로 실을 것이오니 사정을 참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 동부지역에는 해마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무성하게 돋는 독버섯 가운데 Jack O'Lantern이라고 부르는 버섯이 있다. 할로윈 때 모든 미국 가정에서 집 앞에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주황색 호박의 색깔을 가진데다가 밤이면 유균 주름에서 야광을 낸다하여 붙여진 영어속명이다. 미국 가정에서는 10월경에 이 호박을 사다가 속을 파내고 눈 코 입을 도려낸 다음 그 안에 불을 켜 둔다. 10월 31일 만성절(萬聖節) 전야에 아이들이 온갖 할로윈 의상을 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과자 안주면 장난칠 태야!) 하고 외친다. 그러면 그 집에서는 과자나 사탕 초콜릿 등을 나누어 준다. 옛날 한국에서 음력 정월 보름 날 밤 집집마다 다니며 "제웅이나 보름 줍쇼!" 하던 기억이 새로운데 그 비슷한 풍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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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버섯은 내리주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잘못하면 역시 내리주름을 가진 식용버섯인 꾀꼬리버섯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꾀꼬리버섯은 지상생이며 색깔이 노란 색이고 주름이 무딘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독버섯의 독성분 가운데 Illudin S를 화학적으로 약간 변형시킨 것이 Irofulven인데 이 물질이 새로운 암치료제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01년 미국 식약청(FDA)에서는 새로운 암치료제로 임상 실험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Irofulven은 DNA의 하나로 급속하게 자라는 악성종양 세포분열을 방해함으로써 암세포 증식을 차단하여 마침내 그것을 소멸시키는 물질이다. 2002년 텍사스 대학교 암치료연구센터에서 실험 연구한 결과 Irofulven의 세포 파괴 작용에 정상세포는 최저한의 근소한 반응을 보이지만 악성종양 세포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 연구의 결론은 이러한 Irofulven의 독특한 이중적 반응 작용이 항암치료제 개발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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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I Pharma 제약회사와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에 의하여 실시된 제 1, 제 2 단계의 임상실험에서 Irofulven은 약물저항적인 암을 포함한 악성종양을 축소시키는 희망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특별히 항암치료제에 대한 반응이 정지된 췌장암 환자들에게 놀라운 결과를 나타냄으로써 치명적인 췌장암 환자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다. 이러한 좋은 결과를 바탕으로 췌장암 치료를 위한 제 3단계 Irofulven 임상 실험이 시작되었다. 식약청의 신속한 검토와 승인은 항암치료제 개발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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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은 지 오래된 노균이다. 색이 변해서 갈색이 되었다.)
Irofulven은 그 발견역사 또한 특이한데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학교의 화학 교수인 Trevor McMorris와 같은 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 교수인 Michael Kelner가 공동 개발한 것이다. 본래 약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독성을 가진 독버섯의 Illudin S 라는 독성분을 변형시켜 얻은 반합성 물질이다. 또 Illudin이라는 독성분들은 50여 년 전 뉴욕식물원에서 당시 Clitocybe illudens(영어속명 Jack O'Lantern. 현재 미국 록키산맥 동쪽에서 돋는 것은 Omphalotus illudens, 서쪽에서 돋는 것은 오렌지색에 올리브색이 섞여있어서 O. olivascens라고 한다. 미국에서 돋는 이 두 버섯이 유럽에서 돋는 O. olearius라는 버섯의 북미형인지 아닌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이라고 부르던 독버섯에서 추출한 것이다. Illudin 독성분들 가운데 항생물질(1950), 항바이러스 물질(1963), 항암물질(1979)이 들어있다는 것이 계속 발견되었다. Illudin 독성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에 1950년 뉴욕식물원에서 Marjory Anchel, Annette Hervey, William Robbins 등 세분이 Clitocybe illudens(Schw.)라는 독버섯으로부터 Illudin S와 Illudin M이라고 하는 두 독특한 항생물질을 추출 보고함으로써 시작 되었다. 뉴욕식물원에서는 흥분된 순간이었는데, 1963년 뉴욕식물원에 합세한 Trevor McMoriis 교수는 Marjory Anchel과 더불어 Illudin S와 Illudin M에 대한 화학구조를 제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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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균인데 잘못하면 뽕나무버섯부치나 뽕나무버섯으로 오인하기 쉽다.)
이 일이 있기 몇 달 전 일본의 독버섯인 화경버섯(Lampteromyces japonicus[Kawamura] Sing.으로부터 “Lampterol"이라는 물질이 추출되었다. (물론 이 화경버섯은 한국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 물질은 미국의 Jack O'Lantern 버섯에서 추출된 Illudin S와 똑같은 물질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화학적 분류와 비교형태학이 정통 분류학의 주요주제라고 할 때, 미국 Jack O'Lantern 버섯과 일본의 화경버섯에서 똑같은 Illudin S가 발견된 것은 이 두 버섯종(種)에 대한 분류학적 운명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1983년 Nair 외 두 사람은 Mycologia라는 버섯잡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두 버섯이 같은 Illudin을 포함하고 있어서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 분류된 Omphalotus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1999년 Kirchmair 외 두 사람은 호주에서 돋는 Omphalotus nidiformis와 북미 서부지역에서 돋는 O. olivascens var. indigo에서도 Illudin 독성분들이 포함되어있다고 보고하여, Omphalotus 속(屬)을 위한 Illudin 독성분들의 분류학적 특성을 확인하였다. 또 Thorn 등은 분자적 연구방법을 사용하여 Omphalotus속과 화경버섯속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제시하고 독성분을 포함한 다른 이유를 들어 두 버섯이 모두 Omphalotaceae에 속한 단일발생적인 것임을 주목하였다. 2004년 Kichmair등은 DNA 검사에 기초하여 Omphalotus 속의 계통발생론을 발표하였다. 두 버섯 사이의 계통발생학적인 관계를 규명한 이들은 화경버섯과 Omphalotus에 속한 버섯들 모두 그 안에 Illudin 독성분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화경버섯을 Omphalotus 속 안에 포함시키는 일에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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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 그루터기 주변에 무성하게 돋아있다. 한국에서 돋은 화경버섯 사진은 Daum 카페 "버섯골" 가운데 "한국의 버섯"에 보면 광릉수목원에서 찍은 화경버섯의 모습과 함께 밤에 발광하는 모습도 보실 수 있다. 물론 일본의 화경버섯 사진도 보실 수 있다.)
1987년 Trevor McMoriis 교수가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학교로 간 뒤 Michael Kelner 교수와 함께 Illudin 독성들을 항암제로 평가 발표하였다. 특별히 Illudin S는 인간의 암세포에 대항하여 높은 암세포 죽이기를 보여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Illudin S가 시험관 안에서와 생체 안에서 뚜렷한 항암성을 보인 반면에 치료지수는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치료지수란 치료효과를 내는 용량과 중독효과를 내는 용량을 비교 평가해 보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전에는 가장 희망적인 것이었지만 딱딱한 암덩어리의 경우 Illudin S의 치료지수는 별로 높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Illudin S로부터 반합성 항암제인 새로운 acylfulvenes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딱딱한 암 덩어리에 대항하여 눈에 두드러지는 항암성을 지속하면서 Illudin S 보다 훨씬 더 강력한 치료지수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그 치료지수를 계속 개선하면서 좀 더 효력 있는 항암제로 입증될 것이다. Trevor 교수는 이 물질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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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어난 모습이다.)
2001년 미국 식약청은 Irofulven에 대한 국제적인 임상실험을 승인함으로써 제 3단계 임상실험에 진입함과 동시에 더욱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약물저항성을 가진 암도 억제하는 희망찬 모습을 보여 주어 특히 더 이상 달리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제한된 치료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치명적 암에 대헤서도 희망적이다. 부작용은 다른 화학치료제와 다를 것이 없지만 앞으로 항암 치료에 높은 효력을 나타낼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Irofulven 임상실험 승인 몇 달 뒤 MGI Pharma 제약회사는 제 3단계 임상실험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환자들 눈의 망막에 이상이 오는 부작용이 예상보다 심했기 때문이다. 2005년 보스톤 암센터에서는 Irofulven 용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Irofulven은 여러 종류의 암을 치료하는 임상실험 결과를 계속 평가 중이다. 다른 항암 치료제와 병행할 때 좀 더 호의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어느 항암치료제나 인간에게 사용할 때 그 효력과 안전 둘 다 갖추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Jack O'Lantern 이라는 독버섯의 독으로부터 추출한 Irofulven이 암 치료약으로 완전 승인 받기 까지 멀고도 힘든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오직 시간과 임상실험 노력이 그 일을 조속하게 해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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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여기 저기 무더기로 돋아 있다.)
"암흑가의 독버섯, 흑사회." 이 말은 최근 뉴스의 헤드라인이다. 우리 사회에 슬그머니 스며들어 갑작스럽게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범죄조직의 불법도박, 마약, 매춘 등 사회악에 대하여 독버섯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좋지 않은 것이 갑자기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면 그것이 생물이든 생각이든 "독버섯처럼 돋아난다"고 한다. 우리 속에 잠재한 버섯두려움증(mycophobia)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경계해야 할 대상에 대한 의인화한 버섯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독버섯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 야생버섯에 대한 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둘째 글 가운데 이 Jack O'Lantern 버섯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인데 이 버섯이 무서운 독버섯이라는 생각이 들자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독버섯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이젠 독버섯도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면서 다시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된다. 독버섯이지만 더욱 사랑스러움과 경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필자 주: 이 글은 Fungi, Vol. 1, No. 1: Spring 2008, pp. 18-20에 실려 있는 Elinoar Shavit, "Irofulven-Halloween Trick or a Beacon of Light을 초역하면서 다른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최종수(야생버섯애호가),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8.06.01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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