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밤나무 이야기
지난 9월 중순 펜실베이니아 주 중부 York County에 있는 Nixon Park에 답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Hanover라는 도시 동쪽 커다란 호숫가에 자리 잡은 Codorus 주립공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이 공원 안 캠프장 주변에 밤나무가 많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랐는데, 누군가 그 곳에 많이 심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곧바로 이곳이 미국 밤나무 연구 지역이라는 것을 그 곳에 서 있는 안내판을 보고 알게 되었다. 안내판에는 미국 밤나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게시되어 있는데 대충 이곳에 옮겨 적음으로써 미국 밤나무에 대한 둘째 이야기로 삼고자 한다. 더구나 작년에도 미국 밤나무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추석 때여서 고향 생각이 간절하였기 때문이었는데, 공교롭게 금년에도 추석이 가까워 오니 해마다 추석 먹을거리 가운데서도 유독 밤을 잊을 수 없어 여기 고향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밤나무와 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풀어 보고 싶은 것이다.
작년에 썼던 미국 밤나무 이야기에서도 잠간 언급한 것처럼 밤나무줄기마름병(chestnut blight)이 돌기 전까지 미국 밤나무는 미 동부지역 숲의 가장 중요한 나무들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 밤나무는 토종으로 동북쪽 메인 주에서부터 저 남쪽 조지아, 앨라배마 주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서쪽으로 오하요 주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라고 있었다. 미국 동부 지역의 저 유명한 등산로 Applachian Trail이 통과하는 2175 마일=3480km 산마루마다 온통 밤나무로 덮여 있었고 6월 경 밤나무 꽃이 피면 마치 산에 눈이 와서 덮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특히 펜실베이니아 주 전역에 밤나무가 많았고 전체 삼림의 25%(4분지 1)가 밤나무였다고 한다.
이 밤나무는 미 동부지역의 오래된 수종(樹種)으로 성숙한 나무는 그 나이가 600년이나 되고 보통 지름이 1.7m에 높이가 33m나 되었다. 미국 동부지역 토종 동물들 가운데 곰, 사슴, 칠면조, 다람쥐 등은 영양분 많은 밤을 주로 식량 삼아 살아왔지만 밤나무줄기마름병 뒤에 그 개체수가 격감하여 다시는 이전 개체수치로 되돌아 가지 못하였다.
미국 밤은 농촌 경제의 중심에 있었다. 다른 어떤 견과류보다 맛이 좋아 동부지역 대도시로 실어 날랐고 대도시 길거리마다 군밤 장수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조리사들에게 밤은 특히 추수감사절 칠면조 속 채워넣기 식재료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열매였다. 또 밤나무는 목재로도 우수하다. 곁가지 없이 16m 이상 곧게 자라기 때문이다. 밤나무 목재는 곧고 가벼우며 짤 썩지 않아 그 쓰임새가 다양하였다. 기둥, 대들보, 철로 침목, 지붕널, 패널링, 가구, 악기 등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고 한 때 미국 전신 전화 전주의 20%가 밤나무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밤나무를 쪼개서 만든 울타리는 지금도 남아 있어 그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자 밤나무줄기마름병이 들이 닥쳤다. 아마도 외국에서 들여오는 밤나무 목재나 밤나무에 묻어 온 것 같다. 이 치명적 병균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04년 뉴욕 브롱스 동물원에서였다. 이 병균은 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미국 토종 나무들은 저항력이 없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일년에 80km씩 번지는 속도로 미국 동부지역을 휩쓸었다. 이 병균이 휩쓸고 간 지역에 남은 것이라고는 죽은 나무 그루터기와 야생동물 개체수의 급감소였다. 1900년대 중반까지 미국을 강타한 생태계의 가장 큰 재앙이었다. 그 결과 미국 최초로 식물방역법이 제정되었다.
1950년에 이르자 미 동부지역 산림 가운데 뉴욕주 크기 면적의 숲이 사라졌다. 밤나무 몸통이 마르는 이 병의 특징은 줄기에 주황색 섞인 갈색 궤양이나 돌기가 생기면서 살아있는 밤나무 껍질을 죽임으로써 나무에 필요한 양분과 수분 공급 통로가 차단되어 결국 나무가 죽게 된다. 그러나 뿌리는 병균의 공격을 받지 않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지만 7-10m 높이 밖에 자라지 못한다. 그나마 미 동부지역에 남아있는 밤나무는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와 자란 것들이다. 허지만 이 나무들조차 밤나무줄기마름병의 위협을 벗어날 수는 없다.
미국 연방정부에서는 이 밤나무줄기마름병의 확산을 막고 이 병균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밤나무 품종 개발을 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최근에 와서 유전학과 식물병리학의 발달로 미국 밤나무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이 병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려고 노력한 끝에 어느 정도 밝은 전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1983년 저명한 과학자들로 구성된 비영리 연구단체인 미국밤재단(American Chestnut Foundation=TACF)이 설립되었다. 이 재단의 목적은 오직 하나 미국 동부지역 산림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미국 밤나무를 재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재단은 밤나무줄기마름병에 강한 아시아 밤나무(chinese chestnut)의 내성을 미국 밤나무에 옮겨주기 위하여 잡종 1대를 그 선대(先代)와 교배하는 식의 역교배(backcross)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6대를 걸쳐 역교배하는 동안 아시아 밤나무의 특징들을 모두 줄여 나가면서도 그 내성은 미국 밤나무에 넘겨주고 미국 밤나무의 특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 사진에서 보는 밤나무들은 미국 밤나무재단 펜실베이니아 지부와 Codorus 주립공원이 협력하여 연구용으로 심은 것이다. 이 밤나무들은 현재 역교배 중인데 이러한 역교배 방식을 통하여 미국 밤나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아시아 밤나무의 내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밤나무줄기마름병에 대한 내성을 갖춘 미국 밤나무들이 숲이나 공원, 또는 삼림 지대에 다시 우거진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
최종수(야생버섯애호가),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12.12.0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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