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무덤가, 설렘과 조급함에 몇 번을 찾아가서야 비로소 산자고를 만났다.
처음엔 보리 싹 움트듯 한두 개 잎이 삐죽삐죽 솟더니만 이른 봄비에 한 뼘은 되게 자랐다. 그리곤 어느 이른 아침 찾아가니 여기저기 꽃잎을 다문 연자주색 줄무늬 하얀 꽃을 대롱대롱 매달았다. 산들바람에 꽃이 대롱대롱 흔들린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꽃대의 높이에 눈을 맞추니 종 모양의 꽃송이에 아침 햇살이 들어와 불을 밝힌다.
그러면 시나브로 천년의 잠에서 갓 깨어나는 공주처럼 꽃잎을 하나둘씩 열기 시작한다. 여섯 장의 꽃잎이 모두 벌어지고 나면 이름 모를 무덤가는 순백의 별세계로 바뀌어 버린다.
백합과의 산자고(山慈姑, 山茨菰)는 양지바른 풀밭에서 자란다. 높이 약 15~30cm이다.
이른 봄 흰빛이 도는 녹색의 잎이 2장 나오는데 줄 모양이다. 잎 아래 땅 속 깊이 숨겨진 비늘줄기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3∼4cm이며 비늘조각 안쪽에는 갈색 털이 빽빽이 난다. 잎이 한 뼘 정도 자라면 꽃줄기가 곧게 서고 1~3개의 꽃이 핀다.
길이 2.5cm 정도의 꽃은 넓은 종 모양의 흰색으로 바깥쪽에는 자주색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수술은 6개로서 3개는 길고 3개는 짧다. 암술 끝은 뭉툭하다.
열매는 삼각형 형태의 원뿔모양으로 길이 1㎝ 정도이다. 열매를 달고 나면 지상부위는 말라 없어지고 땅속 비늘줄기만이 남아 다음해를 준비한다.
산자고를 흔히 까치무릇 또는 까추리, 물구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산자고라는 한자이름보다는 까치무릇이라는 우리이름이 더 정감이 있다. 땅 속에 파 모양의 비늘줄기를 가지고 있고 2장의 줄 모양의 잎이 나는 것이 무릇과 닮은 데다 꽃잎에 자주색 줄무늬가 있어 까치무릇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을 거라는 의견이 있다.
 | ⓒ www.jadam.kr 2007-03-27 [ 유걸 ] 햇빛이 강할수록 꽃잎이 활짝 벌어져 별 모양을 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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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고는 햇빛이 있어야만 꽃잎을 연다. 이른 아침, 늦은 오후, 또는 흐린 날처럼 빛이 약한 경우에는 활짝 핀 산자고를 만나기가 어렵다. 대신 열릴 듯 말 듯 꽃잎을 오므린 자주색 줄 모양의 종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한낮 햇빛이 한창 강할 때는 꽃잎을 완전히 젖히고 별처럼 반짝인다. 그 모양이 불가사리 같기도 하다.
산자고는 땅속 비늘줄기를 광자고(光慈姑)라 하여 약용한다.
같은 백합과 식물로 약난초가 있는데, 이것의 비늘줄기를 한방에서는 산자고(山慈姑)라 하므로 구분에 주의가 필요하다.
「동의보감」 산자고(山茨菰)항목을 보면,
‘조금 독이 있다. 옹종, 누창, 나력, 멍울이 진 것을 낫게 하고 얼굴에 주근깨와 기미를 없앤다.
- 잎은 질경이(차전초)와 같고 뿌리는 무릇 비슷하다. 산 속 습지에서 난다[본초].
- 잎은 부추와 비슷하고 꽃은 초롱과 비슷하며 세모가 난 열매가 맺힌다. 음력 2월에 싹이 돋으며 3월에 꽃이 피고 4월에 싹이 마르는데 이때 땅을 파고 뿌리를 캐야 한다. 늦으면 썩는다. 그 뿌리 위에는 털이 덮여 있어 가려내기 어려우므로 싹이 있을 때에 그 땅을 기억해 두었다가 가을이나 겨울에 캐서 껍질을 긁어 버리고 약한 불기운에 말려 쓴다[활심].’ 라고 기록되어 있다.
잎이 질경이와 같다고 한 것은 약난초를, 잎이 부추와 비슷하다고 한 것은 산자고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 ⓒ www.jadam.kr 2007-03-27 [ 유걸 ] 땅 속 깊이 숨겨진 비늘줄기는 달걀 모양이며 비늘조각 안쪽에는 갈색 털이 빽빽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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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산자고의 비늘줄기에 자양강장의 효과가 있다 하여 술을 담가 마신다고 한다. 또한 인후통에 차처럼 달여 마셔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유걸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7.03.2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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