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화려한 얼레지 꽃을 찾아 숲속을 다니다 보면 심장모양의 넓은 잎을 가진 족도리풀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숲속 그늘에 어느 정도 습기를 머금은 기름진 땅을 좋아하는 두 식물의 자생지가 서로 겹치기 때문이다. 꽃이 피는 시기는 얼레지가 다소 앞선다. 이곳 하동의 경우 족도리풀은 4월 초순 정도에 꽃을 피운다.
족두리풀은 쥐방울덩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족도리풀은 대개 2개의 잎을 달고 나오는데, 대여섯 개체가 다발을 이뤄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비 5∼10cm의 잎에는 긴 자루가 있으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다 자라봐야 20cm 내외다.
하나씩 달리는 꽃대는 더욱 낮아 홍자색 족두리모양의 꽃은 땅에 거의 닿을 정도다. 때문에 낙엽이 두껍게 쌓인 곳에서는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설사 꽃이 낙엽 위로 나왔다 해도 어두운 색이라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그저 그런 풀인가 하고 지나쳐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엎드려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참 많다.
통처럼 생긴 꽃잎과 꽃받침은 첨엔 닫힌 채로 피었다가 점차 끝이 3개로 갈라져 뒤로 젖혀진다. 꽃통 안쪽은 열두 개의 수술이 마치 베어링처럼 중심에 보석모양으로 박혀 있는 여섯 개의 암술을 원형으로 에워싸고 있다.
족도리풀이란 이름은 그 꽃모양이 옛날 의식 때 부인들이 머리에 쓰던 족두리와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잎 표면에 흰색 얼룩무늬가 있는 것은 개족도리풀이라고 한다. 주로 남부지방에 자생하며, 잎이 족도리풀에 비해 조금 작은 편이다. 그 외에도 지역과 자생지에 따라 자주족도리풀, 뿔족도리풀, 무늬족도리풀 등의 여러 변종이 존재한다.
족도리풀은 과연 어떻게 수정을 할까.
얼레지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꽃이 땅에 바짝 붙어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으니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기에는 상당히 불리한 입장일 테니 말이다.
알려진 바로는, 벌과 나비 대신 모기류에 속하는 각다귀와 파리류의 꽃등에가 찾아와 수정을 일으킨다고 한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족도리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곤충이 있다. ‘이른봄애호랑나비’라는 긴 이름을 가진 나비이다. 호랑나비를 닮은 애호랑나비는 이른 봄철 세상에 나와 잠깐 살다 사라지는 특이한 나비인데, 이 나비는 족도리풀의 잎에만 알을 낳는다고 한다. 족도리풀 잎을 뒤집어 보면 진주알처럼 생긴 애호랑나비 알을 종종 볼 수 있다. 알에서 부화한 유충은 족도리풀 입을 갉아먹고 자라 번데기 과정을 거쳐 다음해 봄에 성충이 되어 나온다.
한방에서는 족도리풀을 세신(細辛)이라고 부른다.
약재로 쓰는 족도리풀의 뿌리가 희고 길면서 많은 실뿌리를 가지고 있는데다 씹으면 혀를 자극하는 매운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은단을 씹었을 때보다 훨씬 자극적이다. 실뿌리를 코에 대보면 시원한 향이 느껴진다.
진통효과가 있어 족도리풀 뿌리를 잘라 아픈 치아의 부위에 물고 있으면 이내 통증이 멎는다.
허준이 펴낸 「동의보감」에는,
‘성질은 따뜻하고[溫] 맛이 몹시 매우며[大辛](쓰고[苦] 맵다[辛]고도 한다) 독이 없다.
풍습으로 저리고 아픈 데 쓰며 속을 따뜻하게 하고 기를 내린다. 목구멍의 질병과 코가 막힌 것을 치료하며 담기를 세게[添] 한다. 두풍(頭風)을 없애고 눈을 밝게 하며 이가 아픈 것을 멎게 하고 담을 삭이며 땀이 나게 한다.
음력 2월, 8월에 뿌리를 캐어 그늘에서 말린 다음 노두를 버리고 쓴다. 단종[單]으로 가루 내어 쓰되 2g을 넘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 약을 많이 쓰면 숨이 답답하고 막혀서 통하지 않게 되어 죽을 수 있다.’ 고 적고 있다.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 사전>에 따르면 ‘기가 허하여 땀이 나는 데와 혈허로 머리가 아픈 데, 음허로 기침이 나는 데는 쓰지 않으며, 여로, 황기, 낭독, 산수유와는 배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걸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7.04.2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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