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4월은 잔인하다.
산 아래 마을이 매화며 산수유, 벚꽃 축제로 돌아가며 떠들썩할 때도 높고 깊은 지리산의 4월은 여전히 겨울 풍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잿빛 산자락에 띄엄띄엄 소나무나 구상나무 등의 상록수가 퍼런 멍자국처럼 물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계곡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만 흘러가는 물소리는 봄을 찾아 내달리는 아우성 같고, 산길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진달래는 붉게 충혈된 그들의 눈망울 같다.
진달래꽃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산을 오르며 몇 송이를 따서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시큼한 맛이 어릴 때와 다르지 않다. 벌거숭이산이 많았던 그때에는 진달래가 지천이었다. 딱히 먹을 만한 것이 드물던 때라 진달래꽃을 참 많이도 따 먹었었다.
산에 나무가 많아지면서 햇볕을 좋아하는 진달래꽃이 산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들 가까이에서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대신 국적이 불분명한, 각양각색의 화려한 개량 철쭉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오고 있다.
조금 더 오르자니 지렁쿠나무로 보이는 것과 산괴불주머니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지렁쿠나무라 하지 않고 지렁쿠나무로 보이는 것이라고 한 것은, 털딱총나무, 털지렁쿠나무, 딱총나무, 덧나무 등의 유사종과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땅에서 새순이 나오는 것도 있고 가지 끝에 꽃차례를 달기 시작한 것도 있다. 잎 양면에 털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안으로 구부러진 톱니가 있으며, 잎에서는 다소 역한 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화약 냄새와 닮았는지는 모르겠다(딱총나무 이름의 유래가 그 냄새 때문이라고 하니 말이다). 한방에서는 통틀어 ‘접골목(接骨木)’이라 하여 타박상, 뼈가 부러진 데, 류마티스성 관절염, 배에 물이 고이는 데, 신장염, 통풍, 목안이 아픈 데, 여러 가지 출혈 등에 쓴다.
산괴불주머니는 노란꽃차례를 가진 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바위가 흘러내린 경사지의 너덜지대에 무리를 이뤄 피어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아이 주머니 끈 끝에 차는 세모 모양의 조그만 노리개’를 예전에 괴불주머니라 불렀다는데 거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깃 모양의 초록 잎과 층층이 높게 달리는 노란 꽃차례가 대조를 이루어 눈에 금방 들어온다. 너럭바위를 터 삼아 무리지어 햇볕을 즐기는 모습에선 한껏 여유로움이 베어난다.
유걸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8.04.23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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