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과 맞닿은 곳에서 길은 계곡을 넘나들며 가파른 오르막이다. 계곡물은 바위 사이사이를 비집고 쉴 새 없이 흘러간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는다.
이름 모를 산새 소리, 물소리.., 자잘한 돌과 모래 위를 빠르게 흘러가는 유리처럼 투명한 물. 그 속에 구름도 실려 가고 시간도 실려 간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산을 오르느라 거칠어졌던 숨소리도 잦아들고 달궈졌던 몸도 바위처럼 차가워진다.
류시화 시인이 그랬던가.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고.
오르막 바위 곳곳에 금괭이눈이 노란불을 밝히고 있다. 발에 밟을 새라 조심하며 꽃을 사진에 담는다. 지름 2mm 내외의 자잘한 사각받침 모양의 노란 꽃 대여섯 송이를, 역시 노랗게 물든 잎이 받치고 있는데 다 해봐야 그 크기는 엄지손톱만하다. 꽃이 워낙 작다보니 10배 배율의 루페(확대경)로 들여다보아도 8개의 수술 수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노랗게 물들였던 꽃받침과 잎은 수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원래의 녹색으로 돌아간다. 다른 괭이눈에 비해 금괭이눈이 노랗게 물든 범위가 가장 넓은 편이다. 5월이 되면 그 자리에 엎어놓은 콩깍지 모양의 열매가 달린다. 꼬투리가 벌어지면 다갈색에 전체에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달린 종자 수십 개가 반짝인다. 그 모양이 마치 고양이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는 것 같다 하여 괭이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른 곳에서는 층층으로 쌓아올린 파란색 현호색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다. 15cm 남짓한 키에 파란색 꽃차례가 거의 반을 차지한다. 다 같은 파란색에 다 같은 현호색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란색의 농도가 다르고 잎의 모양새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개개 꽃의 방향도 교대로 어긋나게 피어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나선모양으로 돌아가며 방향을 달리하는 것도 있다.
워낙 변이가 많고 종류도 많다 보니 매번 보아도 정확하게 세분하여 그 종을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현호색은 인가 주변의 공터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그 외에 높은 곳에는 아직도 생강나무꽃이 샛노란 꽃망울을 달고 있다. 하산 길에 떡버들로 추정되는 키 큰 나무와 만났다. 꽃을 가득 매달고 있는데 나무가 너무 높아 꽃을 가까이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길가에 수줍게 꽃잎을 감추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한 무리의 윤판나물과 만났다.
높이 30∼60cm로 같은 애기나리속의 다른 것에 비해 키가 크고 곧은 편이다. 줄기가 대나무처럼 생겼다하여 대애기나리라고도 부른다. 가지 끝에 1∼3개씩 달린 황금색 꽃은 보일듯 말듯 녹색 포엽에 싸여 아래를 향해 달려 있다.
화피갈래조각과 수술은 6개씩이고 암술은 끝이 3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애기나리처럼 버찌모양으로 둥글고 검은색으로 익는다.
유걸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8.05.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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