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겨울비가 내린다. 안개까지 가세해 봄비처럼 촉촉하다.
구례 산동면에 있는 산수유마을을 찾아 나섰다. 평사리 들판의 소나무 한 쌍은 밤새 더욱 가까워진 모양이다. 어깨가 서로 맞닿아 있다. 구례로 향하는 길의 섬진강은 모처럼 풀린 날씨에 긴 하품을 내품는다.
먼저 구례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19번국도, 밤재터널 아래에 있는 산동면 계천리를 찾았다. 구례군에서 지정한 우리나라 최초의 산수유 시목(始木)이 있는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천 년 전 중국 산동성(山東省)의 한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오면서 산수유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며 산동이란 지명도 거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신라 제48대 경문왕(재위 861∼875)조에도 산수유나무가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졌는데 이를 알고 있던 복두장이란 신하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도림사 대숲에 들어가 이 비밀을 발설했다. 그때부터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란 소리가 났다. 이에 경문왕이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아주 오래전부터 산수유나무가 재배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
산수유나무는 층층나무과의 키큰나무이다. 인가 부근에서 주로 재배하며 보통 높이 4~7m에 이른다. 구례군 산동면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산수유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다. 자료에 따르면 약 28,000여 그루의 산수유나무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수백 년 이상 된 고목들이다.
산수유나무는 이른 봄,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때에 벌써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매화나 진달래, 개나리꽃에 앞서 3월이면 일제히 만개해 산동면 일대가 노오란 산수유 꽃으로 일대장관을 이룬다. 이때를 기해 산수유축제가 열리고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산수유 꽃과 비슷한 것으로 생강나무 꽃이 있다. 피는 시기도 거의 같다. 잎을 보면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지만 꽃이 필 땐 잎이 없으므로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꽃에서도 차이가 난다.
산수유 꽃은 자잘한 꽃의 대가 길어 방사선 형태를 띠지만 생강나무 꽃의 경우는 대가 짧아 뭉친 모양을 하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산에 자생하는 경우가 드물어 인가 주변이 아닌 야산에서 이른 봄 노란 꽃을 만나게 되면 십중팔구 생강나무라고 보면 된다.
산수유나무 잎은 잎맥이 뚜렷하다. 층층나무과의 다른 나무들, 이를테면 층층나무나 말채나무, 산딸나무처럼 잎 모양이 난형이면서 가운데 잎맥을 중심으로 물살모양을 나타낸다.
수피는 회갈색이며 불규칙하게 벗겨져 너덜너덜하게 보인다.
늦여름부터 길이 2cm 내외의 장타원형 열매가 달리는데 10월이 지나면서 붉게 익는다.
지리산 온천랜드를 지나 산수유마을 맨 위에 위치한 상위마을로 올라갔다.
상위마을은 성삼재~만복대~정령치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부능선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이곳에선 돌담 좁은 골목길 어딜 가나 보이는 게 산수유나무다. 모두 기 백년은 되었음직한 오래된 나무들이다.
대부분 수확을 끝낸 상태지만 아직 수확하지 않은 나무들도 종종 눈에 띤다. 나무 전체가 크리스마스 트리 불을 밝힌 것처럼 빨갛게 반짝인다.
상위마을에서 산수유를 좆아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대음, 평촌, 상관마을과 맞닿는다. 넓은 암반이 자리한 계곡 양옆으로 이른 봄이면 노란 산수유 꽃이 계곡과 어울려 장관이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는 여순사건 때 백부전이란 처자가 가계를 이어야 하는 남동생을 대신해 처형장에 끌려가며 불렀다는 ‘산동애가’란 슬픈 노래가 전한다.
‘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간다 / 열아홉 꽃봉우리 피어보지 못한채로
가마귀 우는골에 병든다리 절며절며 / 달비머리 풀어얹고 원한의 넋이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없이 쓰러졌네’
산수유는 산수유나무 열매를 가리키는데 산동마을의 주작물이다.
이곳 산동에서만 우리나라 산수유의 60%를 생산한다고 한다. 산동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식들 공부며 시집 장가를 산수유 농사로 다 해결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근자에는 중국산 산수유가 수입되면서 소득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수확철이면 여전히 나이 드신 분들이 오래된 나무를 타고 직접 열매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손을 구하기가 어려워 수확을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수확한 열매는 어느 정도 물기를 말린 다음 안에 든 씨앗을 제거하고 다시 말린다.
예전에는 산동여자들이 산수유를 입에 넣고 일일이 씨앗을 발라냈다고 한다. 그래서 산동여자들의 앞니는 많이 달아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를 보고 산동여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젊은 처자의 입을 거친 산수유는 약효도 더 좋다 하여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기계가 대신 씨를 발라낸다.
「동의보감」은 산수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성질은 약간 따뜻하다[微溫]. 맛은 시고[酸] 떫으며[澁] 독이 없다. 음(陰)을 왕성하게 하며 신정[精]과 신기(腎氣)를 보하고 성기능을 높이며 음경을 딴딴하고 크게 한다. 또한 정수(精髓)를 보해 주고 허리와 무릎을 덥혀 주어 신[水藏]을 돕는다. 오줌이 잦은 것과 늙은이가 때 없이 오줌 누는 것을 낫게 하며 두풍과 코가 메는 것, 귀먹는 것을 낫게 한다.
열매 살은 원기를 세게 하며 정액을 굳건하게 한다. 그러나 씨는 정(精)을 미끄러져 나가게 하므로 쓰지 않는다. 음력 9-10월에 따서 그늘에서 말린다.’
산수유는 어디서든 재배가 가능하다. 요즘에는 조경수로 공원에도 많이 심겨지고 있다.
마당이나 터가 있다면 산수유 한 그루 심어보자. 봄에는 노오란 꽃으로 가을에는 빨간 열매로 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고 한 그루 열매면 넉넉히 수시로 차처럼 끓여 먹어 부부금실을 더욱 좋게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나무가 있겠는가.
유걸 기자, 다른기사보기기사등록일시 : 2006.12.08 11:25
<저작권자 © 자닮,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산야초